[이병종 칼럼] 가깝고 먼 이웃 한국과 일본 ... 미래지향적 교류 협력의 길로 나설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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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3-03-0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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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교수]


지난 겨울 오랜만에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했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는데 상당 시간을 인천과 후쿠오카 공항에서 줄 서느라고 허비했다. 엄청나게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대부분 20, 30대 한국 젊은이들이다. 비행기는 완전히 그들이 전세를 낸 듯하다. 친구끼리 혹은 연인과 함께 3년 만에 처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해방되어 해외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다. 한국과 가깝고, 날씨도 온화하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후쿠오카나 규슈의 다른 도시를 그들이 찾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후쿠오카 시내는 이들이 점령한 듯하고 유명 맛집이나 관광 명소는 한국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봄이 오자 이렇듯이 한·일 관계의 해빙 무드가 돈다. 6일 한국 정부는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오래된 현안인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제3자 변제 원칙을 통해 한국 기업이 일단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고 그 후 일본의 조치를 지켜보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것으로 65년 외교 관계 수립 후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가 회복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해결의 단초는 제공된 셈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가고 문화가 교류되는 양국 관계에서 더 이상 과거에 발목을 잡히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이다.

사실 한국 정부나 정치인에게 일본은 회피하고 공격해야 하는 나라이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다른 입장에 있다. 과거사를 왜곡하고 진정한 사과를 거부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분개하지만 일본 자체나 일본인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일본의 문화, 음식을 즐겨왔고 이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 농구를 주제로 한 ‘슬램덩크’를 비롯한 일본 만화 영화들이 한국의 극장가에서는 엄청난 흥행을 누리고 있고 일본식 ‘이자카야’는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식당 중 하나다. 정도는 약하지만 일본의 젊은이 역시 한국의 팝 음악이나 대중 문화에 심취되어 있고 한국 방문을 즐기고 있다.

실타래처럼 꼬이고 경색된 정부 관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긴밀하고 친밀하게 이어지는 양국 간 인적 교류나 문화 교류를 어떻게 봐야 할까? 흔히들 이를 소위 ‘아시아 파라독스(Asia Paradox)’의 한 현상이라고 부른다. 물적, 인적, 문화적, 사회적 교류는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공식적 정부 관계는 불편한 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를 말한다. 한·일 관계가 대표적이지만 인도, 파키스탄 관계도 한 예로 들 수 있다.

이 배경에는 물론 일본의 식민지 제국주의가 큰 역할을 한다.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한 불만, 그리고 보통국가를 꿈꾸며 군사적 재무장을 도모하는 자민당 정부에 대한 불신이 아시아 국가 간의 결속을 장애하는 큰 요인이 된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과거 서방 열강의 팽창적 제국주의에 희생이 되어 식민지 경험을 한 것도 이들을 보다 수세적으로 만든다. 역내 협력과 공생에 앞서 자신의 생존을 지키려는 본능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키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 중, 일이 포함된 동북 아시아에서 진정한 역내 협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뿐 아니라 중국의 공격적인 대외 정책 역시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동남 아시아에는 물론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 오래 전 결성되어 10개국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ASEAN은 느슨한 결속 및 주권에 대한 불간섭 원칙으로 실질적인 공동 보조보다는 상징적 연합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의 이러한 각자도생의 모습은 유럽연합(EU)을 통해 보다 결속되고 협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유럽과는 크게 다르다. 어찌 보면 아시아보다 더욱 비극적인 과거 역사를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경험했지만 이러한 뼈아픈 기억을 뒤로 하고 EU를 통해 하나의 시장,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단순한 무역, 산업, 경제에서 시작된 통합은 이제 화폐, 재정을 넘어서 외교 안보 및 사회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물론 유럽 국가들도 부채나 난민 문제 등에 있어서는 이견이 많고 불협화음도 생기지만 전체적으로 아시아와는 다른 결속력을 보인다. 또한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유사 문화, 언어를 공유하고 정치, 경제적으로도 상대적으로 차이가 적기 때문에 이런 결속이 가능하다. 반면 아시아는 문화, 종교, 언어가 상이하고 정치 형태나 경제 발전 정도에 있어 극심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통합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 간의 협력은 꼭 필요한 과제다. 유럽 같은 공식적인 정부간 연합체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일반인들의 교류나 협력이 좀 더 활성화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인이나 다른 아시아인이 부러워하는 유럽 국가 간 자유로운 국경 출입은 어렵더라도 민간 분야의 이동과 교류가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일 간 여행 활성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은 환영할 만하다. 양국 정부가 서둘러 코로나 관련 방역 조치들을 완화했고, 입국 절차를 간소화 했으며, 양국 간 항공편 역시 서둘러 확장한 것이 그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공항에서 대기하는 줄이 길어져 심히 불편하다 해도 발전적인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꺼이 감내할 일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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