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한국이라는 거울, 일본이라는 거울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입력 2023-02-20 05: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올해 1월부터 2월에 걸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에는 '내가 일본을 떠난 이유(わたしが日本を出た理由)'라는 연재기사가 실렸다. 간호사, 보육사, 교원, 의사, 대기업 출신 회사원, 전직 경찰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일본 젊은이들이 삶의 거점을 해외로 옮긴 이유가 소개됐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한계를 느꼈다, 가혹한 장시간 노동이나 일의 스트레스로 몸이 견디지 못하게 됐다, 학생시절에 꿈꿨던 해외생활에 도전해보고 싶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선택했다, 일본에서만 일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등 해외 이주를 결정한 사람들의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일본에서는 사생활을 희생해서 겨우 그럭저럭 생활하던 것이 해외 이주를 하면서는 사생활도 확보하고 즐기면서 생계를 꾸릴 만큼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된 사례와 코로나19 사태로 다양해진 업무 스타일에 따라 해외에 있으면서도 일본 고객과 일할 수 있고, 게다가 수입은 2배가 됐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일본을 떠난 사람들의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적으로 일본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직장 환경, 다양성이 결여된 사회구조가 지적되었다. 연구자나 기술자 등 적지 않은 젊은 인재들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사회 전반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일본은 정말 대단해!”라며 일본만의 문화 등을 자화자찬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각 방송국에서 다양하게 방영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최근 5~10년 사이의 일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좀처럼 경제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자신감 상실의 반증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일본에서의 ‘혐한 붐’을 비롯한 배외주의의 대두도 그러한 풍조 속에 있다.

그러다 일본 사회는 최근 몇 년 사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예찬의 진부함을 자각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데이터 등을 통해 일본 사회가 결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실질임금은 수십년간 상승하지 않아 이제 선진국 중에서 최저 수준이라는 것, 일본 교사들의 노동시간이 최장이라는 것, 일본 연금제도만 믿고 가만 있으면 노후자금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 여성의 사회진출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 등 일본 사회의 정체가 객관적 지표로 가시화된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기사뿐만이 아니다. 일본에 10년간 거주한 이른바 ‘일본통’으로 불리는 BBC 도쿄 특파원이 일본을 떠나면서 쓴 칼럼 '일본은 미래였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Japan was the future but it’s stuck in the past)'(2023년 1월 20일자)도 화제가 되었다.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분명히, 그러나 애정을 가지고 지적한 이 칼럼은 게재 후 2일간 전 세계 300만명에게 읽히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내에서도 적지 않은 찬반 논란이 일었다. 영국인의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견해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가 하면, 최근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니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나도 그 글을 읽었는데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는 당연한 지적이었고 새삼스럽기까지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FAX가 적지 않게 쓰이고, 많은 직장에서는 종이 서류를 통한 결재가 기본이며 거기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전자매체에 의한 교환은 신용할 수 없으니 종이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받을 경우도 아직 많다. 이메일보다 우편이 확실하다는 감각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에 오래 산 내가 일본에 돌아와서 겪어보니 답답하고, 불편한 일들이 많다. 아무리 태어나고 자란 자기 나라지만, 너무 융통성 없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내심 불안할 때도 있다.

한편, 19년이나 일본에서 떨어져 있던 나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변치 않는 일본’도 여기에는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화, 비대면화가 더욱 진행된 한국 사회에 비해 좋든 나쁘든 인간미가 느껴져 안도할 때도 있다.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동네 공원에서 해가 질 때까지 축구나 야구를 하고 뛰어노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어느 시대에도 변함없는 아이다운 아이들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일본 사회가 전혀 변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올해 2월 1일 국회에서 동성결혼제도 도입을 둘러싸고 기시다(岸田) 총리가 “사회가 변해버린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비공식 발언이었으나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보완하듯 “(성소수자에 대해) 보기도 싫다. 옆집에 살고 있다면 싫다”고 말한 총리 비서관이 여론의 반발로 결국 경질되었다. 올해 5월 히로시마(廣島)에서 개최되는 G7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장국인 일본만이 유일하게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그런 편협한 가치관을 차별이라고 단정하는 여론이 일본 사회에 형성된 것은 최근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 언급한 '내가 일본을 떠난 이유'라는 연재기사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상당수는 여성이었다. 외국 영주권을 취득한 일본인은 지난해 가을 기준 전년 대비 2만명 증가해, 사상 최고치인 55만7000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62%가 여성이었다. 일본이 여성에게 살기 힘든 사회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게 된 것 같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 고령화가 큰 사회문제인 일본에서 출산과 육아의 문제를 아직도 ‘여성만의 문제’로 보고 있는 일본정부의 정책과 태도에도 비판이 쏠리고 있다. 변하지 않는 일본의 폐해가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조금씩 자극하고, 일본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쿠맨(育メン, 육아하는 남자)’이라는 말이 있는데, 육아를 돕는 남성을 칭찬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나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친구로부터 ‘이쿠맨’이 되라는 ‘격려’를 받은 적이 있다. 한국에도 ‘육아빠’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육아엄마’라는 말이 없는 것처럼 ‘이쿠맨’, ‘육아빠’라고 특별한 듯 말하는 것이 칭찬이라고 해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하는 남성의 증가율로 봤을 때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육아를 경험했지만, 육아의 주체로서 남성의 존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실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남성들의 육아휴직은 단기간에 그치거나 실제로 제도를 이용하기에는 눈치가 보여서 쉽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성이 출산 후 경력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것도 여전하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고, 해결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에서의 미투와 페미니즘 운동의 사회적 영향력도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물론 그 반동(Backlash)이 벌어지고 남녀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보면 안 되겠지만, 한국이 일본 사회보다 몇 발짝 앞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한·일 간의 차이를 가지고 어느 쪽이 ‘앞선다’고 논의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싶다.
 
과거 한국은 특히 경제적으로 일본을 따라잡으려고 열심히 하던 시대가 있었다. 최근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자신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오히려 일본이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어떤 분야나 어떤 국면에서는 일본이 앞서고 있고, 한국이 배울 수 있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지금 일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중 한국 사회 또한 똑같이 과제로 삼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각자의 사회적 배경이 존재하는 이상 단순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저출산 고령화 문제, 경제 격차 문제,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을 둘러싼 문제, 그리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둘러싼 문제 등 조금만 생각해도 공통된 과제들은 실로 많다.

나는 이번 달 오랜 한국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소개하는 내용의 <한국이라는 거울(韓国という鏡)>이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간했다.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일본인들이 한국 사회를 깊이 아는 것이 자신의 사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일본에게 있어 한국이 그렇듯,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또한 ‘거울’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라는 사회의 양상을 알게 됨으로써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지, 이 칼럼을 한국어로 집필하면서 나 또한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