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고통마저 즐기는 사람 '위버멘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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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건설노동자
입력 2023-0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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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건설노동자]


2월 들어 우리 사회에 던져진 큰 뉴스는 한 청년이 ‘나는 이제부터 조국의 딸이 아니라 조민으로 살겠다”는 선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가족 이야기나 진영에 얽혀 있는 이야기는 내버려두더라도 요즘 시대에 한 청년이 아버지한테서 독립해서 스스로 살겠다고 하는 이 선언에서 나는 2·8 독립선언서 같은 비장함을 느꼈다. 독립은 국가나 사회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라 한 인간이 인격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성숙하여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매우 중요한 매듭이 되기 때문이다. 공자도 나이 30이면 이립(而立)이라고 해서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홀로서기는 나이에 관계없이 평생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2월 들어 내 몸에 이상이 왔다. 지난달 <일상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란 전시회를 끝내고 바로 교수협회 워크숍을 진행하고 바로 이어서 부산과 광주 그리고 천안에서 대규모 시민대회를 치렀다. 늘 자랑처럼 여기던 나의 강철체력도 녹슨 철골처럼 여기저기 삐걱거리더니 지난주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코로나 시대에 감기란 예사롭지 않다. 감기에 걸리니 우선 몸이 약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의욕이 상실된다. 내 딴에는 정신이 육체를 주관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겠다고 몸을 다그치지만 몸은 스스로를 약화시키며 정신에 저항하더니 이젠 몸과 마음이 완전 무장해제된 격이다. 찬찬히 돌아보니 다 내 과욕의 산물이다. 누군가 옆에서 ‘무리하게 일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때 깊이 새겨듣지 않았다. '무리(無理)하다'는 말은 ‘이치에 닿지 않아 억지스럽거나 정도가 지나치다’는 말이다. ‘무리했다’는 것은 일도 이치에 닿게 한 것도 아니며 단지 뭔가 열심히 하려 하지만 그것은 억지스러웠고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과욕, 과식 등 과(過)자가 붙어서 좋은 말이 없다. 그것이 무리(無理)였다면 아니함만 못하다. 통렬히 반성하며 가족에게 이러한 사정을 얘기했더니 아들에게서 이런 말이 왔다.
 “자애(自愛)하세요.”

아들에게서 이런 말이나 듣고, 참 면목이 없다고 여기면서도 자애란 무슨 의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중자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라야 타인도 존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나는 나 스스로를 사랑한 적이 있을까,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이기주의와는 어떻게 다른가 등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이 떠오르며 자애와 자립은 아주 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았다.

자애에 대하여 초인이라는 말이 있다. 위버멘슈(독일어 Übermensch, 영어 Overman)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인간상이다. 위버멘슈가 어떤 초월적이고 모델적인 슈퍼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니체도 삶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지 그 자신도 실제로 인간이 위버멘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위버멘슈가 되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건 이상이기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좌절을 하고, 그 좌절마저도 긍정할 줄 알자는 얘기다. 그는 세 가지 유형의 인간을 예로 들었다. 나는 이 위버멘슈가 되는 길이 바로 자애라고 생각한다.

첫째가 낙타형 인간이다. 니체는 사람들 중에도 낙타와 같은 정신을 가진 자들, 즉 자기 삶을 스스로 고통스럽게 만들면서 그 고통을 그저 받아들이고 ‘견뎌 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노예정신을 지닌 자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말한다. 낙타는 아무리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쫴도, 아무리 무거운 짐을 싣더라도 꿋꿋이 참고 견뎌 내는 특질이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타는 주인에게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낙타의 성실함과 헌신에 감탄하지만, 사실 낙타는 스스로 자기 삶에 가혹한 고문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낙타의 삶을 의외로 우리는 선호한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주인의식을 갖자’고 말하면서 더 열심히 주체적으로 일해 주길 바라지만 주인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묵묵하게 성실하게 나에게 맡겨진 일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긴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

나는 정신이 육체를 주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육체는 언제든지 정신이 이끄는 대로 따라주어야 한다. 육체가 잘 따라주지 않는 것은 정신의 리더십이 약하기 때문이라 여기며 정신무장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몸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몸과 마음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입장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관계라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는 복종하고 따라야 하는 주종관계로 여겨온 것이다. 이것이 내 몸과 마음에만 적용했을까. 부부 관계나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이런 식의 생각이 지배하지 않았을까.
​둘째가 사자형 인간이다. 사자는 자유를 향한 열망을 가진 동물을 상징한다. 사자형 인간은 낙타형 인간과는 달리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사자는 신의 명령이나 권위, 도덕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으르렁거리며 “나는 하고 싶다”고 말하는 자다. 니체는 자유를 이루고자 한다면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옮겨가는 변신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사자의 정신을 지니려면 우리는 수많은 위협과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스스로 자신만의 욕망에 따른 가치를 창조하고 그것을 세상에 당당히 내세운다는 것은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신이나 권위, 전통과 함께하며 안정하기보다는 기꺼이 고독과 굶주림을 선택해야 한다. 사자는 낙타처럼 비굴한 노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유쾌하고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싫어하는 것을 ‘아니오’라고 부정하는 법만을 알고 있을 뿐 삶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발전 원동력이 ‘대립물의 투쟁’이라는 철학을 가지고는 상대를 긍정하거나 인정할 수가 없다. 자기 힘이 약할 때는 오직 상대를 증오하거나 약점을 이용한 퇴진을 요구하고, 상대의 힘이 약해지면 주저 없이 상대를 적폐로 몰아대며 숙청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의구현이고 공정사회를 이루는 것이라 여긴다. 본인들의 이런 노력이나 투쟁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성사되지 않을 때는 정신 승리만이라도 만들어 내 구성원을 자위한다. 
 
요즘 확증편향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자기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보편적 현상이다. 과학기술과 사회 환경 발전에 따라 매스미디어 시대에서 개인미디어 시대로 옮겨가며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병폐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조국씨의 판결이 나던 날 그의 딸 조민씨가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서 한 말과 이 말에 대한 지지자들의 두둔은 바로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조국씨 가정은 단지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 가정의 행동은 국가의 운명마저 바꾸어 버렸다. 이것은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한 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자녀를 키우고 있지만 한 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데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몰랐다. 한 청년이 대학과 의료전문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이렇게 많은 서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이 오히려 부정과 탈법을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제출한 서류는 대학에서 받은 표창장이나 대학에서 활동했다는 인턴활동, 봉사활동, 권위 있는 논문에 제1저자로서 등록 등 제출된 자료가 모두 허위이거나 조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서류를 조작한 어머니는 이미 실형을 받아 복역 중이고 아버지는 이번에 실형을 받은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도 그녀는 "봉사와 인턴을 한 뒤 받은 것을 학교에 제출했고 위조를 한 적도 없다" "주변에서는 어머니가 저를 보호하려고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들을 했다고 할 수도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조국씨는 서울중앙지법에서 공·사문서 위조·행사, 업무방해, 뇌물수수, 청탁금지법·공직자윤리법 위반, 증거위조·은닉교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아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실형을 받던 그날 그녀는 유튜브 방송에 나와 “이제 조국의 딸이 아니라 조민으로 당당하게 숨지 않고 살고 싶다”고 말하며 “지난 4년간 조국 전 장관의 딸로서 살아왔는데 아버지가 실형을 받으시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떳떳하지 못한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본인은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발언에 대해 한 진보 인사는 “의사가 되는 것은 특권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의 한 수단일 뿐이라는 한 젊은이의 맑고 단단한 목소리와 투명한 표정은 누가 승리했는지를 보여준다. 부당한 고난이 청년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조민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정의와 공정이 과장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위버멘슈가 되는 세 번째 유형은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을 상징한다. 어린아이는 사자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도덕과 법에 관심도 없고 그저 심지어 양심의 가책이란 것도 없다. 그저 재미와 놀이가 중요할 뿐이다. 니체가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본 것은 이처럼 욕망에 충실하고 도덕적 선과 악을 넘어선 긍정의 특성일 것이다. 
​직원들과 지방 순회를 다니면 아침식사를 같이 하게 되는데 호텔에서 조식 뷔페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나이 든 사람들과 젊은이들의 식습관 차이를 보게 된다. 연장자들은 보통 밥과 된장국 그리고 김치를 당연 메뉴로 선택한다. 이미 몸에 맞는 최적화된 식단이기에 다양하게 차려진 식단이 오히려 불편하고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비해 젊은 층은 역시 음식도 다양하게 즐길 줄 안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요것조것 조금씩 맛보며 평소에는 먹어보지 못한 것을 먹어보는 도전 정신도 투철하다. 우리는 이제 익숙함이나 전통을 누구나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라고 강요할 수 없다. 다양함은 혼돈으로 보이고 선택에 불안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함이나 낯섦도 즐기려 한다면 놀이가 된다. 거기에 도전 정신이 있다면 더 익사이팅하다. 이제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에 머물며 모든 대상을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어린아이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위기(危機)라는 말이 있다. 위기가 불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말이라고 여긴다면 입장에 따라 위험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사회를 보는 시각도 그렇다. 사회 구성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보고 이 둘의 관계를 모순이라고 보면서 모순의 극복을 투쟁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호의도 의심해야 하며 매사 음모론에 시달려야 한다. 반면에 사회 구성을 주체와 대상이라고 하는 상대가 없이는 나 또한 존재할 수 없다고 여기는 관이라면 상대가 누가 되든 하물며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자연물이라 하더라도 나와 동등한 파트너로 대할 수 있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특성을 가진 독립된 자아로 위버맨슈가 되는 길은 삶을 놀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해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고통마저 즐기려 하는 사람이 위버맨슈형 인간이다. 바로 절차탁마형 인간이다.
 

 
 

[그림설명: 우리는 매일, 아니 매 시간 수십 개의 카톡 메시지를 받는다. 아주 귀찮다. 보내오는 메시지가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표현물을 복사해서 보내오기 때문이다. 하루 중 나 스스로 생각한 것이 얼마나 될까. 독립적으로 서 있지 못한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나인 줄 알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아니다. 자기 독립이 안 되어 있으니 진영을 만들어 인지, 독해 능력을 그곳에 위임한다. 이제 생각도 AI가 대신 해주는 시대다. 나로 서자. ]



필자 소개 - 이두수(54)는 수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노동 현장의 삶과 애환을 그림과 글씨로 표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건설 노동자로 일하기 전 시민단체인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8년간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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