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재팬플래시] 한·일 양국을 비추는 거울 '저출산-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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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입력 2023-01-3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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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박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23일 정기국회 시정방침 연설에서 현재 일본이 처한 가장 중대한 위기는 저출산 문제이며 정부의 최우선 정책도 저출산 대책이라고 선언했다. 기시다 총리는 “급속히 진행되는 저출산으로 인해 사회 기능이 제대로 유지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벼랑 끝 상황에 놓였다”면서 “아동·육아 정책은 더는 기다릴 수도 연기할 수도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시정방침 연설은 연초 정기국회 개원 때 총리가 한 해의 국정 방침을 밝히는 연설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주요 추진 정책이 골고루 언급되기 마련이고, 올해는 그 첫 번째가 저출산 대책이 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방위력 강화, 원자력 정책, 투자 증대, 임금 인상, 코로나19 대책 등이 순서대로 강조됐다. 방위력 강화 문제만 해도 미·중 간 대결 구도와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위협 등으로 최근 일본의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이 사실상 ‘반격능력 보유’로 바뀌는 등 안보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시급한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문제가 저출산 대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어린이 최우선 사회를 만들어 출산율을 반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책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총리 자신이 전국을 돌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육아 분야 종사자 등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골고루 듣겠다고도 약속했다. 우선 오는 4월 총리 직속으로 ‘아동가정청’을 신설하고 육아 관련 예산을 두 배로 늘릴 것이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서 집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저출산 문제가 여성이나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성별과 연령대, 즉 전 국민의 문제라고 호소한 것이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저출산 문제에 주목하고 대책 강구에 나선 것은 아무리 짧게 잡더라도 30년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출산율을 잡지 못하고 있다. 대책은 고사하고 아직 정확한 원인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일본보다 출산율이 더 낮다. 한 여성이 가임 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한국이 0.81명(2021년 기준) 수준으로 세계 최저다. OECD 38개국 중 1.0 이하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은 1.30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과 일본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서 서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여긴다. 상대가 잘못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대책이라면 대책인 셈이다.
작년 말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를 찾았다. 저출산 문제와 연금 개혁 등에 관해 일본 사례를 살펴보고 배우려는 취지였을 것이다. 이 차관이 저출산 대책을 묻자 모리이즈미 리에(守泉理恵) 인구동향연구부 제1실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좋았다고 평가할 만한 정책이 없다. 저출산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특정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199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이나 저출산 대책을 연구하고 정책을 뒷받침해온 연구소 책임자가 그래도 뭔가 배워보겠다고 찾아온 외국의 고위 담당자에게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일본 정부가 그동안 실시해온 저출산 대책과 출산율 추이를 살펴보면 모리이즈미 실장의 토로가 실감 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당초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이 양육의 어려움에 있다고 보고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 집중했다. 임신부에게는 정기검진 비용을 지원하고 출산 시에는 일시금과 출산수당, 육아에는 휴직지원금과 아동수당 등을 지급해 왔다. 출산수당만 해도 현재 40만엔(약 380만원)이고 곧 50만엔으로 오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육아휴직 제도를 활성화하고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지원책들이다.
그러나 저출산 기조를 멈춰 세우는 데는 백약이 무효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1차 베이비붐 세대를 뜻하는 이른바 ‘단카이(団塊) 세대’ 때는 합계출산율이 4.32에 달했다. 이후인 1950년부터 줄기 시작한 출산율은 1차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결혼·출산을 하게 되면서 잠시 반등하기도 했지만 2005년 1.26으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2018년 1.42로 상승하는 듯했지만 지난해 1.30으로 다시 감소했다. 신생아 수는 2016년 처음으로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는데 작년에는 80만명 선도 무너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기시다 총리의 절박한 호소도 이런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여성이나 아이들에게 지원만 한다고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만큼 지금 당장 사회 전체가 총체적으로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사회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절박함 아래 총리 자신이 맨 선두에 서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저출산과 맞물린 문제가 고령화다. 갈수록 노인 인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출산율이 받쳐주지 않으면 사회의 노령화는 불가피하다. 유엔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나뉜다. 일본은 1970년 고령화사회, 1995년 고령사회, 2010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21년에 29.1%를 기록했으며 이탈리아(23.6%), 독일(22%) 등을 제치고 압도적인 세계 1위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영국은 45년, 스웨덴은 85년 걸렸지만 일본은 불과 2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뒤 17년 만인 2017년 고령사회로 돌입해 일본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50년에는 일본을 추월해 세계 최고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초고령사회가 초래하는 문제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것이다. 좀 과장하자면 일본의 모든 문제는 고령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재정 구조를 한번 들여다보자. 2020년 일본 정부의 일반회계 예산 102조6580억엔 가운데 ‘사회보장 관계비’가 35조8608억엔으로 34.9%에 달한다. 이 중 ‘고령자를 위한 3대 급부 항목(연금·의료·간호)’이 28조616억엔으로 ‘사회보장 관계비’에서 80%를 차지한다. 전체 예산에서도 29%에 달한다. 이에 비해 저출산 대책비는 3조387억엔 남짓에 불과하다. 고령자를 위한 연금특별회계 규모도 70조2899억엔에 달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노동보험특별회계 규모는 4조72억엔에 그친다. 사회보장 비용 대부분이 미래를 짊어져야 할 어린이와 현재를 책임진 노동인구가 아니라 과거 세대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가 현재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최소한 2.0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합계출산율 1.58이 인구구조 변화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일본은 1989년에 1.57을 기록했다. 이른바 ‘1.57 쇼크’로 일본 사회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일본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시기가 이 무렵이었다. 소비세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도 그해였다. 늘어나는 사회보장비 등으로 부족해진 정부 예산을 채우기 위해 도입된 소비세는 경기를 위축시켜 일본 경제를 만성적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지게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잃어버린 10년이 20년, 30년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경제가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안 출산율은 점점 더 하락했고 소비세율도 3%, 5%, 10%로 뛰었다.
일본이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달려가면서 사회보장비도 함께 증가세를 보였다. 일본은 1991년 정부 부채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62.2%였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지출이 증가하면서 2021년에는 262.5%에 달했다. 일본은 고령사회로 진입하기 직전인 1994년부터 매년 적자 국채를 발행하고 있는데 누적 적자는 1200조엔을 넘어서고 있다. 지금은 정부 예산 중 3분의 1 정도가 국채 원리금과 이자를 갚는 데 들어간다. 이 때문에 일본은 현재 세계적 추세인 금리 인상도 할 수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10년간 일본 특파원으로 일한 영국 BBC 기자는 최근 일본을 떠나며 쓴 칼럼에서 “일본은 과거에 갇혀 있다”고 썼다. 그가 일본의 문제점으로 꼽은 것은 관료주의와 외국인 배척 정서, 그리고 사회의 고령화였다. 그는 특히 지방 노년층 지배 세력이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메이지유신과 2차 대전 패전 후에도 살아남은 이 압도적인 남성 지배층은 민족주의와 ‘일본은 특별하다’는 확신으로 무장했으며 일본이 전쟁에서 침략자가 아닌 희생자였다고 믿는다”고 분석했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는 낡은 국가주의 잔재를 지속시키면서 정치와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막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상대를 보면 자기 모습이 그대로 비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제 제대로 한번 해결해 보겠다고 결의를 다지는데 한국에서는 저출산·고령사회 문제를 책임졌던 사람이 여당 내 당권 경쟁에 휘말려 이도 저도 아닌 처지가 되어 버렸다. 
 

[(左)주요국의 고령자 인구 비율의 비교(2021년), (右) 일본의 고령자 인구 및 비율의 추이(1950년~2040년)]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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