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이주호가 내민 '교육개혁' 말은 그럴싸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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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3-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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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연초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교육개혁 원년을 포고했다. 4대 개혁분야(학생맞춤, 가정맞춤, 지역맞춤, 산업맞춤)를 설정하고 10대 핵심정책(①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②학교 교육력 제고 ③교사 혁신 지원체제 마련 ④유·보 통합 추진 ⑤늘봄학교 추진 ⑥과감한 규제혁신·권한 이양 및 대학 구조개혁 ⑦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구축 ⑧학교시설 복합화 지원 ⑨핵심 첨단분야 인재 육성 및 인재 양성 전략회의 출범 ⑩4대 교육개혁 입법)을 추진함으로써 교실을 깨우고, 교육의 평등을 보장하고, 교육으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세계를 이끌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새 정부의 교육 분야 국정과제를 구현하기 위한 교육부의 실행 계획을 담은 업무보고인데, 장관 스스로 교육개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교육관계자들이 교육개혁안으로 받아들이며 반응이 뜨겁다. 무릇 교육개혁이라 하면 보다 근본적인 철학과 이념을 토대로 오랜 시간을 들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중대한 국가 중점사업이다. 그런데 신임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를 아무리 살펴도 뚜렷한 지향점이 보이지 않는다. 보고용 개혁 의지와 관료적 매뉴얼만 나열돼 있을 뿐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이유와 실행에 따른 여러 해결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거나 상충하는 부분도 있어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교육개혁으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 과제를 수행하려면 엄청난 재정 투여와 법령 개정이 긴급해 보이니 과연 이 정책들이 실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로 다가온다.

개혁의 필연성에 대하여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급격한 기술진보, 코로나19, 인구감소 등 환경변화에 따라 우리 사회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교육’이 사회 난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을 요구한다.” 교육부가 제시한 3가지 사회적 난제는 다음과 같다. 1. 격차에 따른 사회적 갈등 심화 2. 인구감소에 따른 지역소멸 3. 기술경쟁 심화, 산업구조 변화.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가 지적해온 사항들이라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런 여건이 지금 갑작스러운 개혁의 당위성으로 떠오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념과 철학의 부재는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현 정부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보수 정부는 경쟁 교육의 강화를 지향하고 극단적인 중앙중심적 사고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의 교육기술과학부 장관 시절에 이주호 장관은 고교 다양화 등 교육의 무한 경쟁체제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또한 보수 엘리트는 지역소멸을 외면하고 서울 집중을 부추긴다. 노무현 정부가 행정수도 건설로 지방분권화를 시도했을 때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 개념을 끌어들여 대전환의 물꼬를 틀어막은 대표적인 보수세력이었다. 지금도 정부는 반도체학과 증원으로 수도권 집중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이런 정체성과 어긋나는 맞춤형 교육모델 제시와 지방시대 표방은 보수정권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구호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여기서 당연히 교육개혁을 구현하는 정책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주호 장관은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지역 대학의 관리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겨 대학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대학의 자율성 확대는 언뜻 들으면 타당하고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자율의 주체가 대학 구성원이 아니라 대학법인이 되면 우리의 상상과 기대는 산산이 부서진다. 교육과 연구의 자율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지만, 한국 대학체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에서는 지금까지 ‘법인의 자율성’을 의미해왔다. 사학법인이 대학을 사유재산처럼 여기고 학사 및 인사·재정에 전권을 휘두르는 사립대학의 현실에서 법인의 자율성 확대는 대학의 처분을 포함한 광범위한 자율을 의미하기에 대학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방대학의 관리 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여 지방정부와 지방대학이 협력하고 지역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려는 지방대학시대(대통령 국정과제 85번)는 분명 멋진 구호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런 전환에 동반하는 산적한 현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방향도 지침도 교육부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국립대 관리 권한 이양의 법적 근거와 이양 권한의 범위, 지방정부와 대학의 협력 관계를 설정하는 법적 근거, 지방정부가 대학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및 고등교육 재정의 확보 등 대학의 생존에 결부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지방대학시대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미래상이 있는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이다.

고등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항목은 “과감한 규제혁신·권한 이양 및 대학 구조개혁”이다. 핵심은 사립대학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4대 요건, 즉 교사(校舍), 교지(校地), 교원(敎員), 교육용 기본재산에 관한 각종 기준의 완화이다. 자율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립대 법인협의회가 오랫동안 요구한 사항이라는 점이 상기되어야 한다. 이제 대학법인들은 아마도 사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규제 완화 조항들을 이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정책들이 사립대 재정개선에 도움을 줄지도 의문이지만, 교육환경의 질 저하는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보인다. 예를 들어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등 비정년트랙 교수의 비중이 전체 교원의 5분의 1에서 3분의 1로 확대되면, 대학의 정년트랙 교원 비중은 그만큼 줄어들고 그에 비례해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가 예상된다.

나아가 이제 교육부의 대학평가가 폐지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인증평가로 바뀐다. 획일적인 대학평가의 폐지를 환영하면서도 본질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학 간 자율적 협의체인 대교협이 실제로는 다수의 교육부 주요 사업을 위탁하여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교육부 2중대’라는 의혹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인증평가에 대한 형식적인 문제도 있다. 대교협은 회원교의 회비를 받아 운영되는 기관이다. 그런데 회원교를 대상으로 국가의 재정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인증평가를 수행하는 건 모순이고 이해충돌 소지가 있어 보인다. 또한 대교협의 전문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엉뚱한 지표로 대학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평가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원·학사·재정 운영에 관한 자율권 확대 조치는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을 대학 내로 끌어들이는 조치나 다름없다. 정원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사립대는 물론이고 국립대마저 인기 학과 위주로 설치하고 더 많은 정원을 배정할 게 뻔하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지방의 대부분 사립대는 어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대 학과들과 물리, 수학, 생물 등 자연과학 기초학문 학과들을 폐지하거나 통폐합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도권 대학에서도 기초학문 분야 외면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그 자리에는 물리치료, 치위생학 등 의료보건 분야 학과를 비롯하여 사회복지, 조리, 동물복지 등 취업의 단기 성과가 높은 학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중이다.

따라서 자율적 정원조정이 시작되면 기초학문 분야는 예고된 재앙처럼 고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국립대라도 기초학문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미 국회에 발의된 ‘기초학술기본법’이나 한국인문사회연합회가 제안하여 국회교육위원장이 발의를 준비 중인 ‘인문사회기본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의 몇 퍼센트만이라도 인문사회 분야에 의무적으로 할당하여 최선의 학과 존치와 후속 연구세대 양성을 위한 토대를 지켜야 한다.

또한 교육개혁 추진을 위한 입법 과제의 하나로 제시된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 도입은 교육개혁의 지향점이 교육자치의 말살이 아닌지 의심케 한다. 지역에 보다 더 다가가는 교육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명백한 억지로 보인다. 권한과 역할이 전혀 다르고 상하관계도 아닌 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을 러닝메이트로 묶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 발상의 저변에는 ‘교육이 행정의 하위에 있다’고 여기는 인식이 깔려 있다. 발상 자체가 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한 헌법 조항을 위배한다. 현재의 교육감 선거 시행의 허점을 파고들어 교육자치제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교육감이 자치단체장의 러닝메이트가 되면 교육은 정치에 종속되고 교육자치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교육부 장관이 어느 날 갑자기 교육개혁을 외치며 지난 정권의 교육정책을 무조건 폐기해버린다.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어 장관은 자율에 방점을 찍고 사학법인의 오래된 민원을 처리하듯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개혁에 대한 교육 주체들의 우려와 적응 여부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눈치다. 교육이 산업을 위하여 존재할 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의 철학에 맞게 실용적인 정책의 도입은 개혁으로 포장된다.

개혁 추진 과정의 혼란과 정쟁이 불을 보듯 훤히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국민적 지지와 교육관계자와 학교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정책마다 교육 주체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제가 예상되어 다수 야당을 설득하여 법을 개정하는 과정이 무난히 완료될지 심히 우려된다. 혹여나 야당의 반대로 교육개혁이 실패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총선에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속셈이 아니기를 바란다.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개혁이 추진되기를 바라며 ‘교육’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상기한다. 교육은 사람을 가르치고(敎) 키우는(育) 행위이다. 라틴어 e-duc-are(이끌어내다)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 ‘education’은 배우는 사람으로부터 (잠재)능력을 이끌어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모든 인간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갖고 태어나기에 그 능력이 발현되도록 가르치고 키우는 행위가 바로 교육이다. 전인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필자의 경험상 강의실의 학생은 자신들이 존중받는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집중한다. “단 한 명도 놓치지 않는 개별 맞춤형 교육”이 한 명이라도 서열에서 이탈하지 않는 기능적인 접근이 아니라 전인교육을 위한 이념적 토대로서 설정되기를 바란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해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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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시방향에 따라 우수학생도 일반고가고 과거보다 자사고 진학 열기도 줄어드는 추세인데 이주호가 과거파행적 폐단을 이어가려고 고교등급제, 절대평가로 인한 자사,특목 쏠림을 조장한다.
    폐기되어야 할 사람이 교육부에 있으니 교육현장의 목소리는 듣지도 알지도 않으려 합니다.
    자기 업적에 취해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는 이즤호를 왜 그냥 저자리에 두는지 개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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