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국정 질문 빙자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법적으로 따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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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한라대 특임교수
입력 2022-11-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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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지난 10월 26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사실 무근으로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국회의원이 의혹을 제기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대법원은 여러 번의 판결을 통해 의혹 제기가 정당화되기 위한 조건 등을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김 의원 의혹 제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건전한 의혹 제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 

 

김의겸 의원은 지난 10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술자리에 있었다는 여성 첼리스트와 그의  전 남자친구의 대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며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그 이후에도 해당 술자리가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일각에서 계속 공세를 펴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그러던 중 이 여성 첼리스트가 지난 11월 23일 경찰 조사에서 “그 내용은 다 거짓말이다.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하면서 사실 무근으로 드러났다.  

 
공직자 대상 의혹 제기 가능하나 표현 방식·내용이 문제


대법원은 공직자에 대해선 일반 개인에 대해서보다 폭넓은 의혹 제기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된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경우에는 이와 달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5도3112 판결, 대법원 2011. 9. 2. 선고 2010도17237 판결 등).

 

일반 개인의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 보호가 우선돼야 하지만, 공직자에게는 명예 보호보다 표현의 자유가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은 대표적인 공직자이다. 따라서 김 의원이 그들에 관해 의혹을 제기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무리 공직자에 대해서라도 의혹 제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우선 표현 방식의 문제다. 대법원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의혹을 제기할 때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 형식을 취했다. 김 의원은 “제가 제보를 받았습니다. 7월 19일 밤인데요. 그날 술자리를 가신 기억이 있으십니까”라고 한 장관에게 물었다. 이어 “청담동에 있는 고급스러운 바였고요. 그 자리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있었고 첼로가 연주됐습니다. 기억나십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김 의원은 “제보 내용에 따르면 그 자리에 김앤장 변호사 30명가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도 이 자리에, 청담동의 바에 합류를 했습니다. 기억나십니까”라고 물었다. 

 

김 의원은 "국정과 관련한 중대한 제보를 받고, 국정감사에서 이를 확인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다시 그날로 되돌아간다 해도 저는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술자리가 있었다’는 단정적 표현을 쓰지 않고 ‘술자리를 기억하느냐’고 질문을 한 것이라 문제 될 게 없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단정적 표현' 쓰지 않았다고 면책될 수 없어


김 의원 발언을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분석해 보자. 그는 술자리의 구체적인 모습까지 들어가며 마치 술자리가 사실인 것처럼 전제하고 그런데도 기억나지 않느냐는 식으로 질문했다. 이쯤 되면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술자리가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곧 술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술자리가 있었다고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고 해도 듣는 사람들에게는 술자리가 있었음이 사실인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아무리 질문 형식이라도 전체적인 취지로 보아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암시하면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하고 그러면 면책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의혹 제기의 내용상 한계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국가 기관에 대한 감시·비판을 벗어나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경우”에는 의혹 제기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표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에 대해 대법원은 “표현의 내용이나 방식, 의혹 사항의 내용이나 공익성의 정도, 공직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정도,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의 정도, 그 밖의 주위 여러 사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3. 6. 28. 선고 2011다40397 판결 등 참조)고 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심야 술자리 여부가 공익에 관한 사안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혹이 허위 사실이라면 대통령과 장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정도는 매우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만큼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도 커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김 의원은 의혹을 제기하기 전 과연 사실 확인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서 가장 궁금하고 의문스러운 내용은 문제의 첼리스트가 실존 인물인지, 그렇다면 이름이 무엇인지, 해당 술집 이름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이다. 김 의원은 최소한 이런 내용들은 확인하고 의혹을 제기했어야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아무런 자료도 제시하지 못했다. 첼리스트 전 남친의 제보가 의혹 제기의 유일한 근거였다.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의혹 제기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 사실 확인 노력을 성실히 했으면 면책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이다. 김 의원은 면책될 정도로 사실 확인 노력을 성실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 

 
면책특권 뒤에 숨은 의혹 제기 남발, 정치 혐오 부추겨


그렇다면 김 의원의 의혹 제기는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경우’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결국 김 의원은 질문 형식을 빌려 의혹을 제기했다고 하지만 술자리가 사실일 것이라는 전제 아래 질문을 했다. 그 때문에 마치 술자리가 실제 있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줬다. 그나마 의혹 내용이 사실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게 대법원 판단 기준에 비춰본 김 의원 문제 제기의 문제점이다. 김 의원은 국회 공식회의에서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 면책특권을 누린다. 거짓으로 드러나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일반인이었더라면 명예훼손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의혹이 제기된다. 건전한 의혹 제기는 공직자의 국정 운영과 업무 수행의 문제점 여부를 따지고 견제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아니면 말고’식의 무분별하고 정치 공세적인 의혹 제기는 부작용만 가져온다. 특히 국회의원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의혹 제기를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더 크다. 정치를 혐오스럽게 만들고 증오와 갈등을 부추긴다. 의혹을 제기한다면서 최소한의  검증도 거치지 않는 정치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 사건이 의혹 제기의 기본이 뭔지를 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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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유감스러운 '유감' 표현 남발

'유감'은 상대방 잘못 지적할 때 쓰는 말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했다. 김 의원은 11월 24일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 문자에서 ‘청담동 술자리’를 봤다고 말한 당사자가 경찰에서 ‘거짓말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며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 의혹을 공개적으로 처음 제기한 사람으로서 윤석열 대통령 등 관련된 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유감(遺憾)의 한자어를 뜻풀이하면  ‘남길 유(遺)’에 ‘섭섭할 감(憾)’이다. 국어사전에는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설명돼 있다. 한자사전에는 더 명확하게 ‘언짢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돼 있다. 이처럼 ‘유감’은 상대방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거나 언짢게 여기는 마음이란 뜻이다. 내가 상대방의 잘못된 언행으로 마음이 상했을 때 상대방을 향해 쓰는 말이지, 나의 잘못을 인정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김 의원의 의혹 제기로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난데없이 자정을 넘은 한밤중까지 변호사들과 술이나 마시는 사람처럼 그려졌다. 마음이 상해 ‘섭섭하고 불만스럽거나 언짢은 느낌’이 남아 있을 쪽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 쪽이지 김 의원이 아니다. 유감을 표시한다면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김 의원에게 해야지, 김 의원이 윤 대통령 등에게 할 일이 아니다. 김 의원이 할 말은 ‘죄송하다’ 또는 ‘송구하다’이다. 이게  어법에도 맞고 상식에도 맞는 말이다. 정치인들의 ‘유감’ 표현 남용과 남발이야말로 유감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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