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한동훈처럼 당당하게 '정면 대응' 하는 사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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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한라대 특임교수
입력 2022-08-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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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ㆍ조금만 반대하면 기가 죽어 '백기' 들고 말아

  • ㆍ사실과 이치 따른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 절실

김은혜 신임 홍보수석(왼쪽부터), 이관섭 정책기획수석,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김대기 비서실장 인적쇄신 브리핑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하고 홍보수석을 교체했다. 정책 혼선을 막고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국민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저부터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 부처와 대통령실 간 정책 소통과 조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정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려는지 하는 큰 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윤 대통령이 새로운 각오를 밝히고 대령실 일부를 개편한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국정 운영과 관련해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대통령실, 내각, 국민의힘 모두에  부족한 게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이다. 


정면 대응이란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 반대 세력의 공격에 사실과 이치로 당당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말한다. 반박할 것은 반박하고 설명할 것은 설명해 저항과 반대를 극복해 나가는 자세와 능력이다. 정면 대응의 목적은 단순히 정권 반대 세력과 싸워 이기는 게 아니다. 국민을 이해시키고 납득시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는 게 궁극적 목적이다. 정책을 실현하려면 국민 지지를 얻어야 하고 국민 지지를 얻으려면 설명하고 설득해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게 바로 정면 대응이다. 


사실과 이치 따른 당당한 대응 못해


사실과 이치에 따라 주장해야 설득력이 있다. 억지와 궤변은 역효과만 낸다. 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권의 억지와 궤변에 진절머리를 냈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기까지 했다. 통계나 법령 등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일반인의 상식에 맞는 주장을 하는 게 사실과 이치에 따른 주장이다. 또한 정면 대응을 하려면 당당해야 한다. 일부 반대 여론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맞서는 소신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한 예로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 대응을 들 수 있다. ‘사적 채용’은 더불어민주당이 ‘공적 채용’에 대비시켜 만든 프레임이다. 공적 채용은 공개 경쟁 시험을 통한 채용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실 직원들을 공개 경쟁 시험으로 선발한 사례는 없다.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직업 공무원들을 빼고는 모두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출신 중에서 정권 실세나 정권 주변 인물들의 연줄에 따라 선발했다. 바로 사적 채용을 한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 직원 일부를 사적 채용한 이유는 대통령 비서실 업무의 특이성 때문이다. 대통령 비서실은 정책과 함께 정치를 다루는  곳이다. 정책은 합리성과 효율성에 따라 만들고 추진하면 된다. 여기에는 직업 공무원 출신들이 적격이다. 그러나 정치는 정권의 안위를 다룬다. 무슨 일이든 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러자면  정권과 호흡을 같이하고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게다가 대통령실 직원 채용은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 중에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이뤄지는 관행도 무시할 수 없다. 일종의 엽관주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를 주고 능력에 따라 채용하는 일반적 공정과는 또 다른 잣대다. 대통령실 직원을 채용할 때 능력주의가 아닌  엽관주의를 따르는 관행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이처럼 정치적 충성과 보상을 고려하다 보니 대통령실 직원을 뽑을 때는 일부 사적 채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적 채용·경찰국 신설, 원론적 반박만 되풀이

문재인 청와대도 바로 그런 이유로 사적 채용을 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청와대 시절 소위 사적 채용된 사람들 명단을 뽑아 그들이 여당이나 대선 캠프 또는 시민단체 중에서 어디 출신이고, 누구의 추천을 받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채용됐는지를 조사해 이를 근거로 반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대 정권에서 왜 사적 채용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할 수도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사실과 이치에 따른 정면 대응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실 참모 누구도, 국민의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채용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야당이 제기한 ‘공정’ 프레임에 갇혀 ‘공정하냐 아니냐’ 하는 논란에 스스로 빠져버렸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사적 채용이 많았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통계 수치로 보여줬더라면, 그리고 대통령실에 사적 채용이 왜 불가피한지를 설명했더라면 사적 채용 논란을 보는 국민들 눈도 달라졌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 극렬 반대자들의 반응은 여전하겠지만 최소한 중도파의 반윤석열 정서는 누그러뜨렸을 수 있다. 나아가 윤석열 지지자들의 이탈도 최소화했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논란 대응도 비슷하다.  더불어민주당 등 반대 세력은 “정부조직법의 행안부 업무 범위에 ‘치안’이 없기 때문에 행안부 장관이 경찰국을 지휘·통제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행안부 업무를 규정한 정부조직법 제34조 ①항에 ‘치안’이라는 명시적 단어가 없는 것은 맞는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행안부 업무 중 하나로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을 규정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치안’의 정의는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보전함’이다. 행안부 업무로 규정된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이 곧 치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정부조직법 제34조 ⑤항에는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치안은 행안부 업무에 해당함이 명백하고 따라서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을 지휘·통제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나마 한동훈 장관이 유일하게 정면 대응


사실이 이러함에도 국민의힘 의원 중 이 같은 법 조항을 들어 더불어민주당 주장을 반박한 사람은 없다. 그저 경찰 통제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주장만 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조차도 “법적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더불어민주당 주장이 왜 사실과 다른지'를 구체적인 법 조항을 들어 조목조목 반박하고 국민에게 설명했더라면 설득력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 대응은 무기력의 극치였다. 교육부 장관이 5세 입학을 불쑥 들고 나온 것은 과정과 절차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5세 입학은 그 장단점을 충분히 논의해 볼 만한 정책이다. 정책을 처음 제기한 절차와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절차의 문제점은 인정하고 사과하되, 그것과 별개로 5세 입학 문제가 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제인지를 설명하고 지금부터라도 공론화해서 여론을 반영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나올 수도 있었다. ‘절차 문제와 내용 문제는 다르다’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내용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대응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사실과 이치에 따른 정면 대응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사람들은 반대 여론에 처음부터 기가 죽어 대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통령실 참모나 국민의힘 의원 다 마찬가지였다. 이런 무기력으로는 어떤 정책도 추진할 수 없다. 야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조금만 반대하면 ‘앗 뜨거워라’ 하고 곧바로 손을 들고 말 것이다. 


그나마 정면 대응하는 사람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정도다. 한 장관은 검찰 수사권이 ‘검수완박’으로 박탈되게 되자 시행령(대통령령)을 개정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청법은 검찰 수사 대상을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중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 장관은 이 조항을 근거로 대통령령을 고쳐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의 범위를 일부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한 장관을 맹공격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행령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법 기술자의 농락"이라고 했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법치주의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독단과 오만함의 발로로 헌정 질서를 교란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정면 대응, 저항 극복과 국민 지지 확보에 필수


그러나 한 장관은 당당하게 맞섰다. "'시행령 정치'나 '국회 무시' 같은 감정적인 정치 구호 말고, 시행령 어느 부분이 그 법률의 위임에서 벗어난 것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등 대통령령에서 정한 중요 범죄'라고 국회에서 만든 법률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장관은 "다수의 힘으로 헌법 절차를 무시하고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려 할 때 중요 범죄 수사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와 속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국민들께서 잘 알고 있다"며 "정부에 법문을 무시하면서까지 그 의도와 속마음을 따라 달라는 것은 상식에도 법에도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 장관은 사실과 이치에 따른 정면 대응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시행령 개정이 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국회가 정해준 법대로 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감정적 정치 구호'를 앞세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명백히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한 장관을 공격하는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 중 한 장관처럼 조목조목, 당당하게 반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장관은 정치인이 아니라 공무원인 검사 출신이다. 그럼에도 정치인 출신 장관이나 정치인인 국민의힘 의원들보다도 더 사실과 이치에 따라 당당하게 대응했다. 한 장관이 민주당 측 주장을 반박한 사실과 이치에  적어도 윤석열 정부에 중도적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지지하는 마음을 더욱더 굳혔을 것이다. 중도파는 지지자로 만들고 지지자는 더욱 강렬한 지지자로 만드는 게 정치의 요체 아닌가.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하고 홍보수석을 교체하는 등 대통령실 일부 개편이 효과를 내려면 대통령실 참모들과 각 부처 장관들이 사실과 이치에 따른 정면 대응을 하도록 기획하고 독려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참모와 장관들이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정면 대응을 해 나간다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저항과 반대를 최소화하고 이해와 지지를 최대화할 수 있다. 그래야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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