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총상금 900만 달러) 4라운드 18번 홀.

구름 갤러리가 전인지를 둘러쌌다. 전인지는 캐디(딘 허든)에게 건네받은 드라이버를 쥐고 페어웨이를 바라봤다. 힘껏 스윙을 했다. 날아간 공은 벙커를 피하며 좋은 라이에 멈췄다.

두 번째 샷 상황. 전인지의 공이 그린 둔덕을 맞고 해저드 쪽으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공은 그린 에지에서 멈췄다. 퍼팅을 시도할 수 있는 거리. 버디 퍼트가 아쉽게 홀을 외면했다. 갤러리는 멈추라며 소리 질렀다. 파 퍼트, 굴러간 공이 홀에 들어갔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승이다. 3년 8개월 만의 우승이자, 3번째 메이저 우승을 기록하는 순간이다. 전인지는 허든을 찾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허든의 품에 안겼다.

허든은 아빠 미소로 전인지를 축하했다. 허든은 30년 동안 선수들과 58승을 합작한 캐디다. 한국 선수들과는 14년 동안 32승을 달성했다. 32승 중 25승은 신지애와 함께다. 허든은 신지애와 2008년 여자 오픈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이후 서희경, 김효주, 고진영, 유소연 등의 백을 멨다.
 

우승 직후 포옹하는 전인지(왼쪽)와 캐디 딘 허든(오른쪽). [사진=USA투데이·연합뉴스]

한국을 사랑하게 된 58세 호주인 허든은 사실 지난해까지 인천에서 와인 바를 운영했다. "캐디를 그만하고 싶다"면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가 어려워지자, 직원을 정리하고 혼자 가게를 운영해야 했다. 당시 허든은 "내가 지금 정말 바빠서 조금 이따가 연락할 게 미안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

가게를 정리할 계획을 세웠다. 장사도 안되고 다시 선수의 백을 메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주형, 장하나 등과도 연락을 했지만, 가게가 정리되지 않아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전인지의 백을 메게 됐다.

허든은 지난해 10월 부산 기장군의 LPGA 인터내셔널 부산에서 열린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전인지와 호흡을 맞췄다.

당시에도 이번 대회처럼 퍼팅감이 좋았다. 두 사람은 물 흐르듯 코스를 공략했다.

허든은 전인지를 위해 필요할 때는 조언을, 조용해야 할 때는 침묵을 지켰다.

이번 대회 우승 직후 전인지는 "허든이 날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코스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허든은 선수에게 영향을 줄까 입을 무겁게 했다. 대회 출전을 위해 투숙한 호텔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지만, 의연하게 행동했다.

"호텔엔 두 대의 경찰차가 있었다. 그만큼 안전한 곳이었다."

그런 허든이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경제신문사와의 통화에서 "기분이 좋지 않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상금 17억5000만원을 획득했다. 우승을 도운 허든에게는 1억7500만원을 준다.

이처럼 선수와 캐디는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함께 웃고, 울고, 큰돈을 벌기도, 벌지 못하기도 한다.

희로애락을 함께 했어도 마음이나 성격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기도 한다. 전인지와 허든은 삐걱거리는 상태지만, 오랫동안 흔들림 없는 캐디도 있다.
 

'플러프' 마이크 코완. [사진=USGA]

◆ 짐 퓨릭과 22년 동고동락한 '플러프'

짐 퓨릭은 1999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플러프'라 불리는 캐디 마이크 코완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코완은 타이거 우즈의 백을 멘 캐디로 유명했다.

퓨릭과 코완은 2003년 US오픈에서 우승했다.

그렇게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함께 호흡을 맞춘 지는 22년째. 퓨릭은 코완과 함께 US 시니어 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메이저와 시니어 메이저를 모두 석권한 셈이다.

우승 직후 퓨릭은 코완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코완은 나의 백을 22년 동안 멨다. 참 많은 것을 함께 공유했다. 그는 올해로 73세다. 이 언덕들을 함께 넘었다. 그는 괴물이다."

PGA 투어 챔피언스는 퓨릭의 인터뷰를 인용해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글을 게재했다.

글 마지막에는 이러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코완과 함께 우승한 짐 퓨릭.'
 

위대한 아마추어 프란시스 위멧과 캐디 에디 로리(왼쪽). [사진=USGA]

◆ 전설을 만든 10세 캐디

1913년 US 오픈에 20세 선수와 10세 캐디가 출전했다. 사람들은 다들 비웃었다. 선수도 캐디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웃음은 줄고, 응원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인공은 바로 위대한 아마추어 프란시스 위멧과 캐디 에디 로리다. 두 사람은 당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40세의 해리 바든을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0세 캐디는 영화와 실제에서 모두 주목받았다. 곤경에 빠진 위멧을 보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조언을 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한 번에 하나씩만 하면 돼. 읽고, 굴리고, 넣는 거야."

이후 로리는 위멧의 우승을 이끌었던 정신을 바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조언가'는 탁월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백만장자로 거듭났다.

위멧과는 1984년 사망할 때까지 친구 관계를 이어갔다. 영국 출신 엔터테이너이자, 골프를 사랑했던 아마추어인 봅 호프와도 친분을 맺고 브리티시 아마추어 골프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백만장자는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64년 US 오픈 우승자 켄 벤추리,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자 토니 레마, 1955·1956년 US 아마추어 우승자 하비 워드 등이 지원을 받았다.
 

"우리가 해냈다.", 생애 처음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한 매슈 피츠패트릭(오른쪽)과 캐디 빌리 포스터. [사진=USA투데이·연합뉴스]

◆ 30년 만에 메이저 우승 일군 빌리 포스터

빌리 포스터는 골프계에서 유명한 캐디다. 스티브 윌리엄스, 조 라카바, 브루스 에드워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허든처럼 경력은 30년 이상이다.

그런 그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바로 메이저 우승을 돕지 못했다는 것.

세베 바예스테로스, 토마스 비욘, 리 웨스트우드 같은 걸출한 선수들의 백을 멨지만, 단 한 번도 메이저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 사이 라이더컵(미국과 유럽의 남자 골프 대항전)에 9회나 출전했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2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라인의 더 컨트리클럽(파70)에서 열린 제122회 US 오픈(총상금 1750만 달러)에서 매슈 피츠패트릭과 함께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선수도 캐디도 모두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이다. 포스터는 우승이 확정된 순간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를 토닥인 것은 우승자인 피츠패트릭이다.

서로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포스터는 우승 직후 18번 홀 깃대에 걸린 깃발에 입을 맞췄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 깃발에 대한 경의다.

포스터도 포스터지만, 피츠패트릭에게도 의미가 깊은 우승이었다.

피츠패트릭은 2013년 이 대회장에서 US 아마추어 우승컵을 들었다. 9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US 오픈을 우승했다. 두 대회를 모두 우승한 몇 안 되는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피츠패트릭은 우승 소감에서 포스터를 빼놓지 않았다.

"18번 홀 티샷이 페어웨이 벙커에 들어갔다. 최근 페어웨이 벙커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캐디의 도움으로 좋은 샷을 할 수 있었고, 우승으로 이어졌다. 고맙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페이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