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천만 관객 시대의 귀환과 K 콘텐츠의 새로운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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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카이스트 겸직교수.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입력 2022-06-3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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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카이스트 겸직교수]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4월 18일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두 달이 지나기 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나온 것이다(‘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달성한 시점은 6월 11일이다). 그것도 국내 영화라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 기간 동안 다시 천만이 넘는 영화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렸다. 앞으로 좀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영화산업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21년 5월 438만 명이었던 영화 관객 수는 2022년 5월 1,455만 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2019년 5월 관객 수인 1,806만 명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지만 코로나로 위축되었던 영화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데이터 출처는 ‘영화진흥위원회(2022). <2022년 5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마녀2’도 2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6월 29일 기준으로 18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탑건2’는 ‘범죄도시2’에 이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6월 29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도 많은 관객을 동원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으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이 함께 출연하는 ‘비상선언’은 8월에 개봉된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미뤄진 대작들이 줄줄이 여름에 개봉하기 때문에 2022년 여름 극장가는 예년 이상의 성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이제 대한민국 영상산업의 변화는 자국 내 매체의 역학뿐 아니라 글로벌 사업자들의 투자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건이다. 영화산업의 회복은 전반적으로 영상산업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 OTT 이용량이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영화산업의 회복은 OTT 시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영화산업의 정상화는 줄어든 유료방송 VOD 매출을 어느 정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도 지금 개봉되고 있는 작품들이 OTT 플랫폼에서 유통되게 되면 콘텐츠 수급 측면에서 지금보다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작품의 경우 제작비 이상의 콘텐츠 대가를 지불해야 영화에 대한 판권을 획득하는 것이 용이하다. 반면 코로나 동안 극장 개봉이 미뤄진 영화들이 대거 개봉될 경우 OTT들도 영화 판권 획득이 과거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 극장에서 이미 수익을 확보한 영화의 경우 2차 유통 플랫폼을 통해 제작비 전부를 회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애플TV+ 등 글로벌 OTT 사업자들은 이미 대한민국과 관련된 콘텐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관련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무엇이 K 콘텐츠를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 가늠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IP 확보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던 ‘오징어 게임’의 사례나 드라마의 소재나 출연진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과의 연관성이 높지만 제작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 드라마로 볼 수밖에 없는 ‘파친코’의 사례는 K 콘텐츠의 정체성에 대한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 영화산업 회복은 글로벌 사업자들이 ‘대한민국과 관련된’ 영화의 투자를 유인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송강호가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은 ‘브로커’의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점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같은 거장이 작업하고 싶은 국가가 되었을 정도로 우수한 제작 환경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지수 옮김, 서울: 바다출판사>을 통해 한국이 부산 국제영화제와 같은 성숙한 영화제, 국립 영화대학과 같은 전문적인 교육 시스템,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아트하우스 체계의 구축 등 양질의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일본 영화산업에 대한 진단이다.
 
대한민국 콘텐츠의 높아진 위상과 해외의 거장도 제작하기를 희망하는 대한민국 콘텐츠 제작 환경으로 인해 앞으로도 주목할 만한 실험이 계속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글로벌 OTT들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국내 영화산업에 투자하거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같이 글로벌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일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이용자들이 미디어와 콘텐츠 소비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OTT 사업자들이 오리지널, 자사 플랫폼에서만 유통하는 익스클루시브 콘텐츠를 통해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용자의 지불 부담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보고 싶은 콘텐츠를 모두 보기 위해서는 복수의 플랫폼에 가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미디어 환경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영화 관람료는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있다. 또한, 복수의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콘텐츠를 이용하는 시간도 기회비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K 콘텐츠가 가진 힘은 여러 가지 계기를 통해 증명되었다.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그에 따른 문제점도 노정되어 왔다. 대한민국은 내수시장이 협소하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미디어 분야에서도 글로벌화를 지향해 왔고, 그에 따른 성과가 축적되어 왔다. 일상으로의 회복 이후 K 콘텐츠 산업은 또다른 변곡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외부적으로는 OTT 성장이 정체에 접어들었고, 영화산업은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업자의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에 대한 투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K 콘텐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역시 가중될 것이다. 변곡점은 도전인 동시에 기회다. 거리두기 해제 후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변화에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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