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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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입력 2022-06-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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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강남의 도마복음 풀이' 서평


『예수는 없다』로 유명한 원로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 풀이가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09년에 선보였던 『또 다른 예수』의 증보판으로,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이라 일컬어지는 <도마복음>의 주해서이다.
1945년 12월 이집트 북부 나그함마디에서 양치기 소년이 항아리에 담긴 열세 뭉치의 파피루스를 발견한다. 그런데 52종에 달하는 파피루스 문서에는 성경에는 없는 예수의 잃어버린 가르침이 들어 있었다.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든 <도마복음>이 바로 그것이다. 복음서의 저자로 추정되는 ‘도마’는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예수의 쌍둥이 형제로 불리던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무려 천 육백여 년 동안 묻혀있던 이 문서는 긴 시간만큼이나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천국’이 사후 세계가 아닌 우리 내면에 자리하며, ‘깨달음(gnosis)’으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도마복음>에 실린 114개의 ‘예수 어록’은 믿음을 넘어서 있는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궁극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믿음을 넘어 깨달음을 전하신 예수를 만나다’라는 책의 부제는 <도마복음>의 핵심을 잘 요약한다. <도마복음>은 공관복음이 다루는 예언, 기적, 재림, 종말, 최후의 심판 등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내 안에 자리한 하느님을 아는 사건으로 우리 모두가 불멸의 존재로 변모할 수 있음을 거듭 역설한다. 요컨대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지만, 대부분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붓다이지만 우리가 단지 이 사실을 깨치지 못할 따름이라는 선불교의 일갈(一喝)을 연상시킨다.
한편 심층적인 가르침을 전한다는 점에서 <도마복음>은 여러 차원에서 비밀스럽다. 무엇보다 <도마복음>은 조심스럽게 전승되던 말씀으로 이단 논쟁과 탄압을 피해 숨겨졌던 문헌으로 추정된다. 즉, 믿음이 아닌 개인의 내면에서 신성을 깨닫는 사건을 신앙의 목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종류의 ‘비전’(祕典)이기도 하다.
이 사실은 책의 제목인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에서도 확인된다. ‘살아계신’이라는 단어는 ‘예수’와 ‘말씀’을 모두 수식하고 있다. ‘비밀의 말씀’은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살아있다. 그러니 그 말씀을 전해 준 ‘예수’ 역시 우리 곁에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다. ‘비밀’ 역시 중의적이다. 말씀 자체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뜻이 쉽사리 이해될 수 없는 심층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책의 골간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마복음>의 모든 구절을 소개하면서 꼼꼼한 풀이가 제시된다. 오강남 교수는 동서양 종교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공을 넘나드는 통찰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그렇지만 변화도 적지 않다. 새 책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자료와 설명 추가를 포함해 인용문, 부록 등을 새롭게 보완했다. 구성 역시 114개 구절의 영어 문장을 병기해 그 의미를 더 깊게 음미하도록 돕는다. 책의 말미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종교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의 신비주의적 통찰을 다룬 글과 ‘공관복음에 나타난 천국의 비밀’을 덧붙였다. 요컨대 <도마복음>의 비밀을 최대한 쉽게 알리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선택의 대상이다. 또 현대는 누구나 자신이 직접 삶의 의미를 발견해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제 인간의 종교성 역시 제도화된 전통 속에서만 갇혀있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삶의 의미를 자신의 내면에서 직접 발견하겠다는 시도는 필연적이다. 그러니 <도마복음>의 발굴은 한층 더 의미심장하다. 자유로운 탐구를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는 이들에게 이 책이 필독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례없는 종교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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