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소통 없는 '혁신'에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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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기자
입력 2022-05-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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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가 SK온을 왜 선택해야 될까요?’라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대기업 화상면접을 보는 지원자가 역으로 면접관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면접관을 당황시키는 영상이다. 영상 내내 면접관이 지원자를 설득하고, 지원자는 입사 여부를 두고 고민한다.
 
단순히 한 편의 영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국내 대기업이 직면한 현실이다. 최근 포스코노동조합은 임금 및 단체협상 주요 요구안에 ‘정년연장’을 포함시켰다. 재밌는 건 사측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20~40대 노동자들의 이탈로 현장 직원이 부족해지자 정년을 연장해 이를 대체한다는 발상이다.
 
젊은 직원들의 이탈은 비단 포스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라도 입사 1~2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 등에 도전하는 젊은 직원의 사례는 이미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 같은 탈(脫) 대기업 현상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서 두드러진다. 이는 기업의 구인난을 넘어 노령화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퇴사 인력은 통계를 시작한 2012년 연간 12만6809명에서 2020년 15만8671명으로 25.13%가 늘었다. 또 잡코리아가 지난해 11월 2030 남녀 직장인 3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3명이 입사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기업 퇴사자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구성원과 소통 없는 ‘혁신’을 꼽을 수 있다. 포스코도 이 같은 딜레마에 빠졌다. 회사는 혁신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직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로만 늘어 갈등이 커진다는 의미다.

2018년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취임 이후 회사는 혁신에 시동을 걸었다. 안전문제를 뿌리뽑겠다며 전 현장에 대한 점검을 강화했으며,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 동원됐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업무 긴장감은 높아졌고, 피로가 쌓였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하면 더 나은 환경을 찾아나서는 게 순리다.
 
이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크레딧잡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포스코 퇴사자는 1507명(퇴사율 9%)으로 같은 기간 입사자 1297명을 웃돌고 있다.
 
이와 비교해 SK그룹은 어느 정도 해법을 찾은 듯하다. SK온의 유튜브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면접관은 업무적인 측면 이상으로 근무 환경을 강조한다. 회사가 혁신해야 하는 만큼 노동자에게도 편의를 제공하려고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우 근래 들어 신입사원을 포함한 임직원들과 술을 마시면서 소통하는 시간을 늘리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는 자신의 방향성을 주입하기보다는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결과 SK텔레콤은 지난해 기준 퇴사율 0.6%로 업계 최저 수준이며, SK매직은 퇴사율 1.2%로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선정됐다. 이밖에 계열사들도 업계 평균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1993년 6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내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당시에는 회사의 혁신 동력이 됐지만, 지금에 와서는 대규모 직원 이탈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4차 산업혁명, 세계적인 탄소중립 현안, 포스트코로나 등 최근 우리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혁신을 강요받는다. 다만 그 혁신이 구성원과 소통을 통해 공유되지 않을 때 구성원이 떠나고, 기업이 늙어가지 않을까 싶다.
 

김성현 기자 [사진=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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