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에 바란다 - 4강 외교 이렇게] ③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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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전 주일대사
입력 2022-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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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얽히고설킨 한일관계, 대화와 소통으로 하나씩 풀어야

                   

<편집자 주> 아주경제신문은 다음 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새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뜻에서 ‘윤석열 당선인에게 바란다 - 4강 외교 이렇게’라는 시리즈 칼럼을 마련했다. 시리즈 칼럼은 ① 중국편 박승준 논설고문 ② 미국·북한 편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③일본편 신각수 전 주일대사 ④ 유럽·러시아편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 순서로 연재한다.

                                         
                                  

[신각수, 법q무법인 세종 고문, 전 주일대사]]


 
 
5월 대통령 취임식 때 기시다 총리 축하 訪韓 성사부터
곧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외교 문제에서 새 정부는 완전한 백지 출발(clean slate)을 할 수 없다. 전임 정부의 정책을 변경하겠지만 여건은 물려받은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므로, 연속성 속에서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가 새 정부에 물려준 외교 환경은 역대 어느 정권 교체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대북 정책에 축을 두고 중국을 배려한 외교정책을 구사하면서 미국, 중국, 일본, 북한 모두와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고립무원의 형국이다. 따라서 새 정부는 자체의 대외정책을 펼치기에 앞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세계 10위 경제력을 가진 중견국가로 성장한 한국은 항공모함 같은 강대국보다는 구축함 정도로 유연성이 있겠지만 과거의 경비정급이었던 시대와는 다른 무게감을 가진다. 나라가 커진 만큼 관련된 국가들과 이해관계도 복잡다기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외교 방향을 바꾸는 일이 예전처럼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일 관계는 새 정부의 대외정책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가장 어려운 분야라 할 것이다. 한·일 관계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할 만큼 외교관계 수립 이후 가장 악화되었다. 대립 사안이 다양하고 배경에 복잡한 구조적 요인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에서 복합 다중골절 상태다. 한·일 관계가 양국 공히 3개 정부에 걸쳐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는 사실은 비정상을 깨고 본격 회복 궤도로 진입하는 데는 상당한 외교적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욕과 의지만으로 쉽게 정상화되지 않을 만큼 양국 관계의 상처는 크고 깊다. 과거사 문제 외에도 지정학 문제, 영토 문제, 국민감정 등 대립 전선이 넓고, 갈등이 정치 분야를 넘어 경제, 안보, 교류 분야 등 거의 전방위로 확산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부정적 요소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양국 국민의 상호 신뢰 자산을 고갈시켰다. 한·일 사회가 모두 양국 관계를 냉정한 이성의 관점이 아닌 반일·혐한이라는 굴절된 감정으로 접근하다 보니 현안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확산시키고 기존 현안을 더욱 꼬이게 하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 정부의 출범은 꼬일 대로 꼬인 양국 관계를 풀어갈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5월 윤석렬 정부의 출범은 지난해 10월 출범한 보수 중도 성향의 기시다 정부와 협력을 통해 꽉 막힌 한·일 관계를 리셋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캠페인 당시 한·일 관계 개선을 주된 외교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고, 3월 28일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 면담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대일 관계 공약에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기본 정신과 취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호혜적인 한·일 미래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한·일 정상 셔틀외교를 복원하고 고위급 협의 채널을 가동하여 제반 현안에 대해 포괄적 해결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과거사와 주권 문제는 당당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미래 세대 중심으로 양국 국민 간 열린 교류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전체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조울증적 대일 정책에서 완전히 방향 전환하겠다는 취지다.

문재인 정부는 당초 대일 정책으로 과거사와 한·일 협력을 분리하여 각각 진전시키겠다는 투 트랙 방침을 천명하여 방향을 옳게 설정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내 정치적으로 ‘토착왜구’ ‘죽창가’와 같은 반일감정을 동원하여 야당의 정통성을 공격하는 데 대일 관계를 활용하였다. 그리고 과거사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외교 해법 마련에 소극적으로 임하여 한·일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2015년 어렵게 성사시킨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한·일 합의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기하지는 않았지만 그 핵심인 화해치유재단을 2019년 해산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무력화시켰다. 물론 관계 악화의 배경에는 아베 정부가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한·일 간에 암묵적 합의였던 정경 분리의 벽을 허물어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LCD 3개 소재에 관한 통관 절차를 강화하고 한국을 백색목록 국가에서 제외하는 일방적 통상 규제를 한 탓도 있다. 이에 한국 정부가 대응 조치로 한·일 군사비밀 보호협정(GSOMIA)를 종료하겠다고 하여 한·일 간 격돌은 일파만파로 확산되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개입으로 수습이 되었지만 아시아에서 단 2개국밖에 없는 OECD 회원국으로서 기본 가치를 공유하고 미국의 아시아 동맹체제의 핵심인 양국이 이러한 우치(愚痴)의 행진을 벌인 것은 양국에 큰 상호 손실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한·일 간 이간을 바라는 주변국들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듯이 양국의 과거를 둘러싼 감정 대립은 2020년대의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동아시아 정세의 안정과 평화적 발전을 책임져야 할 시대적 요청을 저버리는 것이다. 결국 현재와 미래의 밀려오는 다양한 복합 대전환기 과제 대처에 매진하여야 할 한·일 관계가 과거사 현안에 발목을 잡혀 퇴행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법치·약속 위반으로 공박하는 공수 역전 현상이 벌어져 피해자로서 도덕적 우위에도 상처를 입게 되었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172석 야당 협조 끌어내야

따라서 새 정부는 이런 총체적 위기 상황을 전제로 새로운 한·일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다행히 일본에서도 윤석열 정부 출범과 대일 정책에 대해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을 둘러싼 제반 환경은 녹록지 않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국회의 특별입법이 필요한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는 현재 172석의 압도적 의석을 가진 야당의 협조가 필수다. 또한 과거사 관련 피해자 지원 단체들도 원칙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기시다 정부도 7월 참의원 선거까지 우파 성향의 다수 파벌인 아베, 아소, 다케시다 파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정치권도 사도금광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에서 보듯이 정부 간 틈새를 메워주는 역할이 아니라 정부를 몰아세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 여론도 최근 NHK 조사에서 한·일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견해가 25%에 불과하여 우호적이지 않다. 새 정부로서도 다양한 국내 이해당사자들 의견을 조정하고 한·일 협의를 통해 해결안을 도출하는 작업이 쉽지 않은 형국이다.

日 기업 압류재산 현금화 막을 잠정 조치가 발등의 불

이런 맥락에서 새 정부는 당장 발등의 불인 일본 기업 압류재산의 현금화를 막는 잠정 조치부터 시급히 취해야 할 것이다. 대전·울산지방법원에서 현금화 명령이 내려져 조만간 사법절차가 끝나고 실제 현금화 과정에 들어갈 상황이라는 점에서 잠정 조치로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을 통해 현금화를 막아야 할 것이다. 이 조치는 일본의 의심을 해소하고 한·일 협력 재개를 위한 기초가 될 상호 신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안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민관위원회가 이해당사자들과 협의·조정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고 한·일 협의를 거쳐 특별입법을 한 뒤 이를 정부가 시행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이다. 구체적 대안은 다양한 방식이 이미 제시되어 있는 만큼 정치적 결단으로 가장 실효적 방안을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기시다 총리가 당사자로서 관심이 큰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한·일 합의의 취지를 살리는 방식으로 해결을 꾀하면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도 마중물이 될 것이다.

동시에 각종 현안들로 인해 정상회담이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5월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총리가 축하차 방한하여 큰 부담 없이 관계 개선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금년 하반기에 주요 현안에 관해 일정한 진전이 이루어지면 셔틀외교를 복원하여 관계 개선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세계 공급망 재편, 유가 앙등,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 미·중 대립 등 양국 협조가 긴요한 사안이 꼬리를 물고 있다. 고위급 전략대화를 조기에 복원하여 정책 협조를 꾀하고 구체적 성과를 바탕으로 점차 어려운 현안에 대한 해결로 옮겨가는 점진적·단계적 개선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종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성급한 대처로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하고 관계 전반을 후퇴시킨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대화와 소통을 우선하고 쉬운 것부터 어려운 사안으로 차근차근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새 정부 출범이 주는 호기를 잘 살려 가급적 이른 시기에 건전하고 안정된 한·일 관계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프로필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국제법 박사 △외무부 아주국 동북아 1과장 △외교통상부 조약국 국장 △외교통상부 제2차관, 제1차관 △주일 대사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법센터 초대 소장 △논문 ‘A New Paradigm for Changing Korea-Japan Relations’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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