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엔] 日기업, 엔저 더 이상 달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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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2-04-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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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기업 4분의 3 "엔저 사업에 부정적"

  • 달러당 130엔 도달하면 일본은행 개입할까

과거 엔저(円低)는 일본 자동차와 카메라를 더 싸게 해외에 팔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호재로 작용했다. 그러나 엔저가 더 이상 일본 경제에 플러스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으로 가뜩이나 오른 물가 상승세를 부채질하면서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을 늘려 결국 일본 경기를 침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 4분의 3 "엔저 사업에 부정적"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로이터통신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4분의 3 이상이 엔화 가치 하락이 사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기업 절반가량은 엔저로 인해 사업 수익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수 기업은 달러당 120엔을 마지노선으로 봤다. 기업의 45%는 120엔 이상에 달하는 환율 약세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31%는 125엔을 고통의 문턱으로 꼽았다. 달러·엔 환율이 한국시간으로 이날 오전 8시 45분 현재 달러당 127.13엔에서 거래되고 있는 점에 비춰, 엔화는 이미 다수 기업을 고통에 빠뜨릴 수준으로 하락한 셈이다.
 
특히 기업 48%는 엔화 가치 약세가 수익에 타격을 줄 것으로, 36%는 ‘어느 정도’ 이익을 해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엔저로 수익이 증대될 것이라는 응답은 23%에 그쳤다.
 
로이터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일본 기업 대부분이 엔저로 인한 비용 상승과 소비자 수요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명한 징후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식품 가공업체와 소매업체는 물론이고 섬유, 제강, 자동차 부품 등 전 분야에서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약 500개 일본 대기업과 중견 비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절반 정도가 응답했다.
 
그간 엔저는 일본의 수출 주도형 경제에 호재로 작용해 왔다. 자동차 등 다양한 상품을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엔저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유,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엔화 가치 추락은 기업들의 수익에 직격탄이 됐다. 
 
무엇보다 일본은 지난 수십년간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겼기 때문에 엔화 약세의 혜택이 과거에 비해 덜하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 제조업 생산의 약 25%는 해외에서 이뤄진다. 10년 전 17%, 20년 전 15% 미만에 비해서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수출산업인 자동차 업계의 경우 국내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부품 등 수입 가격이 올라 비용 부담이 커졌다. 또한 생산 기반이 이미 외국으로 많이 이전한 까닭에 수출 촉진 효과도 제한적이다. 일본 자동차공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일본 기업이 연간 판매하는 자동차의 약 3분의 2가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만든 자동차는 판매량의 40%도 안됐었다.
 
도요타 자동차의 대변인은 엔화 약세가 반드시 기업 입장에서 이익으로 간주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 상승은 단점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특히 식자재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식료품 업계의 부담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진행 중인 엔화 약세는 원자재 가격 인상과 함께 사업에 이중 타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엔저는 에너지 비용을 올리며 원자로 가동에 대한 요구로도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기업의 57%는 정부가 원자로를 재가동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 도매상 매니저는 “급상승하는 전기세가 우리의 사업을 망치고 있다”며 원자로를 재가동해야 한다고 했다.
 
달러당 130엔 도달하면 일본은행 개입할까 
엔저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의견도 여전하다. 일본 다이와종합연구소는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0엔 떨어지면, 일본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1조5000억엔가량(약 14조5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이로 인해 일본 내부에서는 엔저를 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극단적일 정도로 비둘기파 행보를 이어가는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언제쯤 매파로 선회할 것인지는 시장의 관심사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30엔까지 하락할 경우 일본은행이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90년대 재직 당시 여러 통화 개입을 주도해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재무성 차관은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엔화가 달러당 130엔 이상 약세를 보일 경우 정부가 개입하거나 금리를 올려 방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와 달리 미국이 일본의 엔저를 문제 삼지 않는 점도 일본은행이 비둘기파 기조를 이어갈 수 있는 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17년 "그간 중국과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 자본과 환율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바보처럼 앉아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재임 기간 다른 나라의 통화 약세에 불만을 표출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중간 선거를 앞두고 역대급으로 오른 인플레이션 잡기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엔화 등 타국의 통화 약세에 큰 관심이 없다는 설명이다. 달러 강세가 수입 제품의 비용을 낮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달러 강세, 엔화 약세를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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