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남기고 12번째로 떠난 셜리 스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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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입력 2022-04-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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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PGA 창립자 중 한 명

  • 선수보다 교습가로 유명

  • 2주 전 명예의 전당 헌액

94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한 셜리 스포크. [사진=LPGA]

4월 12일(현지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파운더(창립자) 13명 중 한 명인 셜리 스포크(미국)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에서 94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스포크는 1927년 5월 14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집이 골프장(18홀 규모) 건너편이라 어린 나이에 로스트볼(분실구)을 주워다 판매했다. 돈을 모아 골프채를 산 것은 13세 때다. 

1년 뒤인 14세에 디트로이트 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지역 매체는 "미래 스타 중 한 명"이라고 보도했다.

우승 등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나, 부모의 반대로 골프채 대신 펜을 쥐었다.

사범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골프에 대한 열망으로 다시 골프채를 쥐었다.

거푸 우승컵을 들었다. 프로로 전향한 것은 1950년, LPGA 투어 창립자 13명 중 한 명이 되면서다.

스포크는 프로 대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최고 순위는 1964년 LPGA 챔피언십 준우승이다. 

선수보다는 교습가로 명성을 얻었다. 회원 1700명을 보유한 LPGA 티칭 및 클럽 프로 디비전이 스포크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골프채는 90세가 넘어서도 쥐었다. 골프 레슨도 중단하지 않았다. 

1959년과 1984년 LPGA는 그런 그에게 올해의 교사상을 수여했다.

미시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은 1968년이다. 1981년에는 이스턴 미시간 대학교 체육 명예의 전당에 추가됐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2019년이다.

LPGA 명예의 전당에는 조건 부족(우승 등)으로 헌액되지 않다가, 지난달(3월) 31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등과 함께 헌액됐다.

창립자라는 명목으로다. 스포크는 LPGA 창립자 13명 중 생존해 있던 두 명이었다. 그의 별세로 남은 창립자는 마를렌 바우어 헤그(미국) 단 한 명이다. 

몰리 마르쿠스 사마안 LPGA 커미셔너는 "스포크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줬다. 변함없는 헌신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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