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제심서] 경제안보와 과학기술의 융합 ··· '선도기술' 확보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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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02-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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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과 중국이 첨단기술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반도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세대 이동통신(5G), 사물인터넷(IoT), 안면인식, 무인항공기 등은 상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군사무기 체계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첨단기술 생태계를 자국 중심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외교안보 전문가가 과학기술 연구에 이미 착수하였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말을 유행시킨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거대한 기술 경쟁 : 중국 대 미국’ 보고서를 작년 12월에 발표하였다. 이에 뒤질세라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의 왕지스(王緝思) 교수도 지난 1월 30일 ‘기술영역에서 미·중 전략 경쟁: 분석과 전망’보고서를 공개했다.

신흥기술(emerging technology)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두 보고서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양국 사이의 격차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르다. 앨리슨 교수가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는 반면, 왕지스 교수는 중국이 미국을 추격하기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외교전문가인 앨리슨 교수가 과학기술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한 목적은 중국을 과소평가하는 미국 내 여론을 환기하는 데 있다. “미국은 더 이상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국이 아니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격차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방심하면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고다.

미·중 격차가 가장 작은 분야는 AI라고 할 수 있다. 연구개발과 산업화 모두에서 중국은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근접하였다. 중국은 세계 최대 인구로부터 수집한 데이터와 느슨한 개인정보 제도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AI를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다.

5G에서도 미국이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다. 미국이 원천기술을 먼저 개발했지만, 중국이 통신장비와 인프라에서 월등히 앞서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클린네트워크(Clean Network) 구상을 통해 중국산 화웨이 장비를 자국 기업은 물론 동맹국 기업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박하였다. 그러나 비용 문제 때문에 미국 내에서 화웨이 장비의 교체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작년에 보조금으로 책정되었던 19억 달러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2월 37억 달러를 추가로 요청했다.

중국과 격차가 아직도 크게 남아 있는 분야는 양자정보과학이다. 그렇지만, 양자통신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능가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그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는 추세다. 미국의 대중 제재 핵심 품목인 반도체에서도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 비록 첨단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은 범용 제품의 생산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으며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설계 능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된다. 만약 미국이 ASML의 EUV노광장비 수출을 통제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첨단 반도체의 수입대체를 훨씬 더 쉽게 했을 것이다. 바이오에서도 미국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유전자 편집과 세포치료에서 중국이 미국을 거의 따라잡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왕지스 교수는 “중국의 과학기술 실력이 심각하게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보통신기술, AI, 항공우주에서 양국 사이의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가 명확하지만,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당분간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인재 육성, 기술 표준, 특허의 질에서 미국은 중국이 열심히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수준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하드웨어(반도체)와 소프트웨어(운영체제) 생태계는 중국이 아닌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중국 기업은 여전히 미국 기업과 연구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이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화웨이다. 미국의 제재를 받은 후 독자적 운영체제인 홍멍을 개발했지만 첨단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해 세계시장은 물론 중국시장에서도 점유율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AI에서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중국이 안면인식과 같이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응용하고 있지만, 핵심기술은 여전히 미국에서 개발되고 있다. 항공우주에서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가 아니다.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며, 중국은 러시아·영국·프랑스와 함께 강대국으로 분류된다. 미국에서는 아마존과 테슬라 같은 민간기업이 우주개발에 뛰어든 반면, 중국에서는 아직도 정부기관과 국영기업이 전담하고 있다.

무역전쟁 이후 양국 관계의 탈(脫)동조화는 중국이 취약점을 보완하기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인재 육성이다.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수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앞설 수 있지만, 연구의 질에서는 한참 뒤져있다. 미국의 대중 제재로 중국인이 미국 기술생태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기술 표준을 둘러싼 경쟁에서도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가 아니다. 중국은 기술 발전에 필요한 제도인 지적재산권, 사이버안보, 개인정보 보호,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새로운 기술 거버넌스를 주도할 가능성은 현재 매우 희박하다. 또한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넷플릭스 등 미국의 플랫폼 기업은 세계 각지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디디추싱, 메이퇀 등은 국경 밖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앨리슨 교수와 왕지스 교수의 평가는 정반대지만 그 취지는 동일하다. 즉 자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상대방을 경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두 보고서의 정책적 함의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경제와 국가안보에 핵심적인 신흥기술을 발전시키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금기시되었던 산업정책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인재 육성을 위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의 개혁도 추진되고 있다. 자구책으로 쌍순환(双循环) 전략을 제시한 중국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하였으며, 작년 9월에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을 공식적으로 신청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제재와 투자 유치라는 채찍과 당근으로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다. 차기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 1월 KAIST에서 열린 ‘과학기술혁신 공약 토론회’에서 미·중 경쟁의 영향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구체적 내용을 완성하기 어렵겠지만 원칙과 기조는 새 정부 출범 전에 확정이 가능하다.

첫째, 경제안보를 산업·교육·과학기술과 연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년 말 요소수 파동 이후 우리나라에서 경제안보는 공급망 관리에 너무 치중되어 있다. 주요 원자재와 수입품에 대한 조기경보시스템과 스트레스 테스트는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다. 대만의 반도체 방패론처럼, 다른 나라가 흉내도 낼 수 없는 유일한 기술만이 경제안보를 장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현재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세계적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중이 경쟁하는 AI, 정보통신, 바이오, 친환경 항공우주 중에서 우리가 선도하는 분야는 하나도 없다.

둘째, 이념·가치보다는 실익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동시에 어느 한 국가에 일방적으로 편승하기보다는 다양한 국가와 다층적 차원에서 협력해야 한다. 주력 산업에서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과 협력은 필수적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는 중국의 기술 발전을 막기 위한 다양한 노림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 프레임워크에 가입하게 되면,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반발할 것이다. 따라서 한·미 협력을 추진할 때 항상 중국의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한편, 중국과 협력도 불가피하다. 배터리 산업 공급망에서는 중국 기업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대중 교류가 지속되어야 한다.

셋째, 기업이 자발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정책이 많을수록 좋다. 미국의 대중 제재에도 불구하고 애플과 테슬라와 같은 미국 기업은 대중 투자와 교역을 늘리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을 외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결정과정에서 기업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안보 조직의 확대·개편이 요구된다. 작년에 정부에는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 청와대에는 ‘신기술·사이버안보비서관’이 신설되었다. 이 기구들은 공급망 관리에 특화되어 있어 미·중 경쟁에 연계된 외교안보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경제안보와 과학기술의 융합을 위해서는 외교안보 부처가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와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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