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달러 유가' 만든 건 ECB?...올해 금리인상 가능성에 유로화 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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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입력 2022-02-0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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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CB 정책 선회에 '强유로-弱달러'...국제유가 끌어올려

  • ECB의 딜레마...'인플레 대응' 의지가 오히려 물가 압력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약 12만원)를 앞두고 있다. 이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 대응을 위해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자 유로화가 강세를 보인 탓이다. 다만 이는 당초 물가를 잡기 위한 ECB의 메시지가 달러화 약세를 불러오면서 오히려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3일(현지시간) 국제유가의 양대 벤치마크(기준가)인 미국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북해산 브렌트유가 일제히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WTI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브렌트유는 지난달 28일과 31일 이후 다시 배럴당 90달러대에 진입했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물 WTI 가격은 전장 대비 1.82달러(2.06%) 오른 배럴당 90.10달러에 마감했다. 영국 런던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4월물 역시 1.51달러(1.69%) 높아진 91.11달러에 거래됐다. 이후 열린 4일 장에서도 두 벤치마크는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이후 미국 WTI(하늘색)와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짙은 파란색) 추이 비교 [자료=야후 파이낸스]

이날 국제유가 강세에는 기존의 원유 공급 부족 전망과 함께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보인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달러화로 결제하는 원유의 경우, 달러화가 약세를 보일 때 수요가 몰리며 유가가 높아진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3일 장중 95.2대까지 낮아진 후 우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장중 97.440까지 치솟았던 달러인덱스가 며칠 사이 급격하게 약세를 보인 것이다. 달러인덱스가 97대에 진입했던 것은 2020년 6월 이후 처음이었다. 
 
◇ECB의 '선회'가 불러온 달러 약세...오히려 인플레 위험
이날 미국 달러화 약세를 불러온 것은 ECB의 정책 '선회(turnaround·턴어라운드)'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물가 상승세를 우려한 ECB가 결국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수긍하자 유로화가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1.115를 하회하던 유로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환율)는 단숨에 1.15를 향하고 있다. 3일 해당 환율은 전날 대비 1.19%나 급등하며 1.1438을 기록했다. 이는 1유로가 1.1438달러의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로, 해당 수치가 높아질 경우 유로화는 강세, 달러화는 약세로 풀이할 수 있다. 
 

달러인덱스(위) 추이와 유로-달러 환율 추이 [자료=인베스팅닷컴]

이와 같은 유로화 강세는 3일 통화정책 방향회의를 마친 ECB가 그간의 입장에서 일부 선회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앞서 ECB는 유로존(유로화를 법정 통화로 사용하는 19개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테이퍼링이나 금리인상 등 통화정책 도구 사용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다양한 수준의 경제 환경을 동시에 통제하는 ECB 통화정책의 특성상 급격한 정책 변화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것이다. 

그러나 유로존의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5.1%나 급등하면서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자, ECB는 이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이는 ECB의 중기 물가상승률 관리 목표치인 2%의 두 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회의 결과를 보고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상황이 정말 달라졌다"면서 "유로존의 물가 상승이 보다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앞서 지난해 12월 예상보다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전망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ECB는 변화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전했지만, ECB의 이날 성명은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와 "향후 통화정책이 양방향(기준금리 인상 또는 인하)으로 갈 수 있다" 등의 통화 완화정책을 지지하는 문구를 삭제했다.

이를 두고 로이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둘기파(통화 완화 정책 지지)적인 성향의 중앙은행 중 하나의 놀라운 정책 전환"이라고 평가했으며, 카스텐 브제스키 ING 수석 경제학자는 "ECB의 놀라운 매파적 후퇴"라며 "이날 ECB 회의는 (ECB의) 중대한 매파적 변화를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ECB의 메시지가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유가 강세로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에 악영향을 준 것은 향후 ECB에 고민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미국 달러화 가치는 인플레이션 환경에 큰 영향을 주기에,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주요 통화정책 도구로 여겨진다. 달러 약세는 미국의 수입물가를 높일 뿐 아니라, 원유와 같이 달러화로 표시되는 원자재 가격(달러로 표시됨) 전반을 끌어올리고 자산시장 전반의 위험선호 심리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면 달러 강세는 이들 요소를 억제해 그 자체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등 에너지 가격은 최근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을 강하게 끌어올리는 최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ECB의 정책 결정으로 유로화 강세가 미국 달러화의 약세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국제적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물가 대응'이라는 ECB의 정책 의도와 정반대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사진=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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