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2026년까지 2774억 투입 차세대 쇄빙연구선·큐브 위성·고위도 관측센터 구축
  • 극지연구 선도국과 4~5년 차… 생명과학 분야 특허·기술이전 성과 '퍼스트 무버'로
  • 북극항로 중요성 커져 아라온호 해빙 데이터 공유할 것… 현지 대원 안전에 최우선

강성호 극지연구소 소장이 상황실에서 남극기지 현황판을 소개하는 모습[사진= 극지연구소]

“지구에서 주인이 없는 곳은 공해와 남극뿐입니다. 지구에 위기가 닥치면 사람은 당장 극지로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강성호 극지연구소 소장은 극지 연구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남극과 북극 등 극지는 과거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변화 등 지구 환경이 다각도로 변하면서 관심도가 높아졌다. 특히 극지는 기후변화 연구가 가능한 과학적 가치 외에도 해양자원에 대한 경제적 가치와 국제회의를 주관하는 외교적 가치까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점차 지원금을 늘리며 극지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2050 북극 활동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전략의 골자는 2026년까지 2774억원을 투입해 차세대 쇄빙연구선(해양), 큐브 위성(대기), 고위도 관측센터(육상)를 구축하고 북극권 종합 관측망과 극지데이터 댐을 구축하는 것이다.
 
극지 연구를 위한 인프라가 더욱 확충될수록 강 소장은 남·북극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믿었다. 최근에는 극지연구소 K루트 탐사대가 남극 대륙에 총 길이 1740㎞의 육상 루트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1월 13일 장보고과학기지를 출발한 지 37일 만에 목표 지점인 돔C 지역 프랑스·이탈리아 콘코르디아 기지에 도착해 이뤄낸 성과다. 육상 루트는 1310㎞와 빙저호(빙하 밑에 형성된 호수)를 탐사하기 위해 추가 확보한 430㎞를 더하면 총 길이는 1740㎞에 달한다. 또한, 서남극 지역에서 빙하 녹은 물 '융빙수'가 빙붕의 붕괴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하는 등 최근 현지와 연구실에서 다양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극지연구의 인프라 강화를 위해 어떤 점이 필요한가?

“극지연구소는 남극에 2개, 북극에 1개의 과학기지, 그리고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 차세대쇄빙연구선 건조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2027년에는 쇄빙연구선을 한 척 더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극지 인프라는 극한 환경에 머물거나 이동하면서 연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의 경우, 기존에 한 달 남짓한 북극활동 기간이 5개월로 늘어나게 되는데, 그만큼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장소에서 연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극지인프라가 하드웨어라면, 이를 효과적으로 쓰는 소프트웨어는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다. 우리나라 극지연구는 극지연구소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극지에 관심 있는 과학자라면 누구나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변화나 생명자원이 극지에서 하는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일례로 극지는 건설, 의류 등 우리 실생활과 닿아 있는 제품들의 테스트베드 역할도 하고 있다. 극한 환경에서 가능성을 찾는 연구에 더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두고 함께 참여하길 희망한다.”


-극지연구 선도국과 우리의 격차 및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2020년 해양수산 과학기술 수준평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표한 극한공간 인프라 기술수준 평가에 따르면 대략적으로 우리나라는 최고 선진국 대비 약 70%의 기술수준을 보유한 것으로 결과가 나온다. 극한공간 인프라 기술은 최고기술국 대비 75%, 극지해양과학 기술 수준은 70% 수준으로 각각 4.8년과 5.5년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극지연구는 해양, 지구, 생명, 대기, 빙하, 극한 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도 북극권 제트기류 변동에 따른 중위도권 한파, 폭염 등 이상기후와의 관련성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등의 우수한 성과를 창출하기도 했다. 극지연구는 장기적 관측과 데이터 축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직 우리나라보다 수십 년 앞서 극지연구를 시작한 선도국들에 비해 부족한 측면이 있다. 극지연구소가 2004년 설립되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짧은 기간 안에 추격형 연구를 통해 선진국 못지않은 인프라와 연구성과를 창출한 것도 사실이다. 비북극권 국가의 한계점도 있지만, 연구가 부족한 지역과 과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자 한다.”


-극지연구소의 연구성과 중 산업과 연계해 실용적으로 활용된 부분이나 앞으로 유망한 분야가 있다면?

“연구소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많은 특허를 내고 있고, 일부 기술이전 성과도 거두고 있다.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생명체들에게는 저마다 생존의 비결이 있다. 이들의 적응, 진화과정에서 실제 우리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들을 찾고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의약품이다. 저온에서도 잘 반응하거나, 영하 온도에서 체내 세포를 보호하는 물질들은 활용 가능성이 크다. 혈액 보존제, 치매 치료제 등으로 기술개발이 추진되고 있고, 슈퍼 박테리아에 대항할 수 있는 신규 항생물질을 찾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식품이나 화장품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남극에는 꽃이 피는 식물이 딱 2종 있다. 이 중 하나가 남극좀새풀인데, 남극좀새풀에서 찾은 물질을 일반 벼에 주입했더니 냉해에 6~7배 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화장품 기업과는 몇 년 전 항산화 화장품을 개발해 실제 제품으로 출시한 적도 있다. 얼음화학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연구 분야다. 얼음이 어는 것만으로 특정 성분의 농도가 변하는 독특한 현상을 연구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환경을 정화하거나 기후변화를 조절하는 기능이 확인돼 앞으로 활용도가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2021년 수에즈 운하 막힘 사고에 북극항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해운개발에 극지연구는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덮고 있던 바다얼음, 해빙이 녹아 없어지면서 나타난 뱃길이다. 지난 40년간 여름철 기준 북극해빙의 면적은 40% 넘게 줄었는데, 실제 현장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북극해를 둘러싼 태평양, 대서양 등 바다에서 오는 해류의 영향으로 해빙이 특정 지역에 몰리기도 하고, 녹아서 떨어져 나온 작은 해빙 조각들이 떠다니기도 한다. 올해 북극 항해에서 지난해보다 해빙 양이 늘어 아라온호가 탐사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일반 선박들이 북극항로를 이용하게 됐을 때 같은 문제를 만날 수 있다. 3년 전 북유럽 해운회사의 내빙선(耐氷船)이 쇄빙선의 도움 없이 부산항을 출발, 북극항로를 지나 유럽까지 간 적이 있었다. 이 같은 성공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항해 위험도를 낮춰야 한다. 북극해빙의 분포와 움직임에 대한 연구가 북극항로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아울러 해수부가 개발하는 E-nav와 아라온호의 수집 데이터를 활용해 안정성을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극지 연구의 목표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기관장으로서 투명함과 윤리성을 추구하겠다. 예산을 들여서 확보한 데이터를 앞으로 공유하고 오픈하겠다. 과학자들의 윤리적인 부분도 신경 쓸 것이다. 무엇보다 현지에 나가 있는 대원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 중대재해법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대재해법 쪽에도 디딤돌을 만들겠다. 가끔 대원들이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거린다. 무슨 사고가 났을 가능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원들의 안전을 우려해서 항상 GPS를 보고 있다. 파견 나가 있는 팀들이 무사히 돌아왔으면 한다. 처음 파견 갔던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와야 한다.”

▲강성호 극지연구소장 약력

1995.09~2002.02 한국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
1995.12~1997.01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9차) 연구원
2001.03~2005.02 충남대학교 해양학과 겸임교수
2002.03~현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2005.03~2010.03 인하대학교 생명해양과학부 겸임교수
2004.03~현재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극지과학전공 교수
2006.12~2007.08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극지응용연구부 부장
2007.08~2009.11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극지생물해양연구부 부장
2009.11~2010.12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23차) 대장
2010.01~2013.12 한국조류학회지 편집위원
2012.07~2013.09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극지기후연구부 부장
2013.09~2016.08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극지해양환경연구부 부장
2014.10~2016.10 태평양북극그룹(PAG) 의장
2016.06~2020.05 한국해양학위원회(KOC) 위원
2016.08~2019.08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극지해양과학연구부 부장
2017.12~2020.07 대한조선학회 극지기술연구회 부회장
2019.10~2020.09.28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부소장
2020.06~2020.09.28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소장 직무대리
2020.09.29.~현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제 7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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