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이 40년래 고점을 찍었다.

예상치를 웃돈 것은 아니지만, 가파른 오름세가 더욱 선명해지면서 통화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자산매입규모축소(테이퍼링)와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의 수단을 하나씩 꺼내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는 대차대조표 축소까지 거론됐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과거 인플레이션 시기 금융당국의 대처를 살펴보는 것도 연준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과거 인플레이션 대응 속에서 공과를 살펴,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고 짚었다. 
 

[사진=게티이미지]

신문은 가장 최근에 현재의 인플레이션 수준과 유사할 정도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한 것은 1980년대지만, 현재 상황과 유사한 인플레이션은 1946년이나 1973년에 나타났다고 지목했다. 공급부족과 완화적 통화정책 등이 닮았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후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에서는 현재와 비슷한 공급망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전쟁 기간 동안 둔화됐던 수요에 고삐가 풀렸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계속된 전쟁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던 당시 생산 시설들이 빠르게 민간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을 생산하지 못하면서 물가가 오른 것이다. 전쟁으로 논밭과 공장이 피해를 입은 것 역시 공급 부족을 부추겼다. 당시 미국 연간 CPI 상승률은 △1946년 8.5% △1947년 14.4% △1948년 7.7%을 기록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형 사건 이후 생산시설과 수요가 정상화되자 CPI 상승률은 다시 하락하면서 1949년에는 오히려 1.0% 마이너스 성장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역시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되며 각국이 봉쇄 조치를 취하면서 생산 시설들의 생산 능력이 급감한 가운데, 백신 접종 확산 뒤 경제활동이 재개되자 수요가 급등하며 나타났다. 코로나라는 비일상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생산시설의 공급 능력이 저하되었지만, 봉쇄 조치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끝나자 수요가 크게 확대되며 인플레이션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대형 사건이 끝나면 인플레이션 역시 자연스럽게 둔화될 것이라며 이번 인플레이션이 장기적인 물가 상승 추세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NYT) 기고를 통해 1946년의 인플레이션 급등은 일회성 사건이었으며, 당시 정책입안자들이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사태를 물가 상승 추세로 해석하고 계속해서 물가를 잡기 위한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오히려 디플레이션과 경제 침체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의 수요 수준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준이 인플레이션이 오랜 기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1940년대에도 미국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공공 투자에 힘썼으며 이러한 투자가 인플레이션을 다시 촉발하지 않았다며, 현재의 물가 상승세가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의 장기 투자 계획을 취소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21년부터 인플레이션 우려가 본격화하면서 시장에서는 1970년대가 다시 돌아 올 수도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1966년부터 1982년까지는 이른바 '대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이라고 불린다. 1966년 처음으로 3%를 넘기기 시작한 물가상승률은 이후 △1973년 6.2% △1974년 11.1% △1975년 9.1%까지 올랐다. 결국 연준은 1981년 기준금리를 거의 20%까지 높인 후에야 물가상승률은 진정됐다. 이처럼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상승률의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무리한 통화완화정책과 에너지 위기다. 

한국전쟁 종전 이후 미국의 물가는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961년 집권한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재정 지출 확대와 감세를 통한 경제 성장을 지원하며 재정 적자는 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은 성과를 보여 1961년 2.3%에 머무르던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962년에는 6.1%로 상승했다. 그러나 부양책을 위한 재정 지출과 1964년 본격화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비용이 경제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물가상승률은 1966년 처음으로 3%까지 상승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1966년 10월에는 기준금리를 6%까지 금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대통령 재선을 앞두고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연준 의장 교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통해 연준의 금리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인플레이션이 높더라도 실업률이 낮추고 경제 성장률을 높아야 재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물가를 잡기 위해 1969년 10.5%까지 올랐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1971년 3월에는 3.25%까지 하락했다.

이처럼 물가가 꿈틀대던 시기 발생한 석유파동은 상황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이어 1974년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며 발생한 1차 석유 파동과, 1978년 이란 혁명으로 인한 산유량 감소 등으로 인한 2차 석유 파동 등이 이어지며 연준은 1980년대까지 인플레이션 잡기에 실패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현재도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기타 산유국들(OPEC+)이 코로나 이후 급등한 수요를 맞추지 못하며 유가가 오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유가를 낮추기 위한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모하메드 알 루미 오만 석유장관이 11일 인터뷰에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상승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국제유가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빠르게 증산에 나설 것이다"라고 밝히는 등 상황은 당시보다 낫다고 여겨진다.


코로나19 시대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공급망 균열, 완화적 통화정책 등이 꼽힌다. 공급망 균열은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여지가 있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는 지난해 12월 공급업체배송지수가 10월부터 계속해서 하락했다며 이는 배송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준의
 정확한 판단이 가장 절실한 시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1970년대와 같이 정치적 요소에 좌우되는 판단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파월 연준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저금리가 필요하다며 압박하던 지난 2019년 당시 세 차례 금리를 인하하며 통화 완화책을 지속한 바 있다. WSJ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940년대와 1960~70년대의 물가상승률 양상을 참고해 둘 중 어떤 상황에 가까운지, 그리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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