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수액 먹고 자라는 죽록차
 
  대나무밭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인증을 받은 것은 담양이 세계에서 처음이다. 담양 대나무가 세계 1등이 될 만한 이유가 있다. 
 담양은 연평균 기온이 12.5°C로 따뜻하고 연간 강수량이 1300mm인 고온다우(高溫多雨) 지역이다.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 큰바람이 들이치지 않고 낮은 산들은 마을의 방풍림 노릇을 해준다. 영산강 상류가 임야를 가로질러 토지가 비옥하고 수량이 풍부하다. 이렇게 대나무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고장이 담양이다.  
 세계중요농업유산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전통적인 농업기술 문화 다양한 생물과 경관을 지역시스템으로 보전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완도군 청산도 구들장논, 제주 밭담, 하동 전통 차농업, 금산 전통 인삼농업이 세계 중요농업유산에 올랐다. 
 담양은 우리나라 전체 대나무 면적의 36%를 차지한다. 담양의 대나무밭은 예로부터 마을과 더불어 존재했다. 담양군 354개 마을 중 담양읍 3개리를 제외하고 대부분 마을에 대나무 밭이 형성돼 있다. 이 중 세계중요농업유산의 핵심지역은 담양읍의 삼다리와 만성리 두 마을. 

  담양 대나무밭 한국 전체의 36%

 삼다리 대나무 숲은 17만 평으로 우리나라 최대. 이렇게 대규모 대숲이 유지된 것은 대밭이 산에 있어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나무가 사양길에 접어들자 평지의 대밭들은 대나무를 베어내고 밭작물을 재배하거나 택지, 창고 등으로 개발됐다. 삼다리에서는 대나무가 사양길에 접어들어 대나무밭을 내버려둔 사이에 대나무들이 산으로 올라가 시루봉(253m)까지 이어졌다. 대나무 숲이 40여 년 만에 대나무 산으로 바뀐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삼다리 마을 전경. 소쿠리처럼 대숲이 둘러싸고 있다. [사진=담양군 제공]

 삼다리는 1960년대까지 석작을 만들던 마을이다. 삼다리 주민 김명식(67) 씨는 “플라스틱이 출현하기 전까지 삼다리 마을은 4계절 중 여름만 빼고 밤 11~12시까지 호롱불 켜 놓고 다섯 살 어린이부터 90살 노파까지 석작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석작은 뚜껑이 있는 네모난 대바구니다. 옛날에는 이바지나 폐백 또는 선물을 줄 때 석작에 담아서 보냈다. 말석은 정사각형으로 대바구니가 3중으로 들어가는 삽합과 5중으로 들어가는 오합이 있다. 말석은 대껍질이 붙어 있는 겉대로 만드는 고급품이다. 석작은 겉대와 껍질이 없는 속대를 섞어 만들었다.    
 호시절에는 담양 관방제 옆 죽물시장에 나온 석작의 80%가 삼다리 석작이었다. 농사보다 농외(農外)소득이 더 큰 삼다리는 담양에서 손꼽아주던 부촌. 대나무밭과 대바구니 짜기로 자녀를 대학에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나무’란 별명이 생겼다. 

죽로차 체험장 명가혜. 다기장 위에 올려 있는 대바구니가 석작이다. [사진=황호택]

 대나무밭을 조성한 후에는 관리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대나무는 벼 보리 감자 고구마 사과 등에 비해 순수입이 매우 높다. 벼보다도 순수입이 5배가량 많으니 삼다리 사람들은 대나무가 주업이고 벼농사를 부업으로 했다. 
 삼다리(三茶里)는 마을 이름에서 보듯이 옛날부터 자생차로 유명했던 마을이다. 조선시대의 옛 이름은 다전리(茶田里)였다. 근년에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동다(東茶) 서다(西茶) 외다(外茶) 등 3개 마을을 합쳐 삼다리라 하다가 다시 내다 마을과 외다 마을로 나뉘었다. 
 우리나라에서 차가 자생하는 지방은 제주 하동 보성 해남 장성 등 여러 곳이지만 죽로차(竹露茶)는 삼다리가 원조다. 대나무가 차나무밭으로 침범해 들어가 그늘을 만들면서 죽로차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대나무가 뿌리에서 빨아올린 수액을 새벽에는 이슬로 떨어뜨린다. 이 수액을 받아먹고 자란 게 죽로차다. 

대나무 밭 속 그늘에서 자라는 죽로차.[사진=황호택]

  대나무와 공존하는 식물은 반음반양(半陰半陽)의 그늘에서 자라는 차나무밖에 없다. 키가 큰 대나무가 포위하면 종국에 다른 나무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 삼다리 뒷산의 소나무들은 산책로 주변에서만 근근이 살아남았다. 대나무는 뿌리줄기인 근경(根莖)을 통해 옆으로 뻗어 나간다. 대나무는 벌채 후 다시 식재할 필요가 없다. 대나무의 근경은 땅 속으로 30cm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는 천근성(淺根性)이다. 차나무의 뿌리는 직근(直根)으로 키의 3 배 이상 들어간다. 차나무는 음지식물이고 뿌리가 내리는 영역이 달라 대밭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다. 
 과거 대나무의 호황기에는 대밭에 차나무가 있으면 대나무의 영양분을 빨아먹는다며 뽑아 없애 버렸다. 지금은 거꾸로 돼서 대나무보다는 죽순과 죽로차의 경제적 가치가 더 높다. 
 담양의 죽로차를 차 애호가들이 알아준다. 죽로차는 대나무 잎 사이로 들어오는 적은 양의 햇볕을 많이 받으려고 다른 차나무보다 잎이 크고 잎간 간격이 더 벌어져 있다. 삼다리에서 죽로차를 제조 판매하는 명가혜(茗可蹊) 국근섭 대표는 ”4월 초~5월 초에 죽로차의 어린잎을 따서 살청-유념-건조의 과정을 9차례 반복한다"고 말했다. 찻잎 속의 효소가 산화하지 않도록 열을 가해 효소의 작용을 멈추게 한다[살청]. 그리고 찻잎의 성분이 물속에서 잘 우러나도록 비빈다[유념]. 그 후 다시 열을 가해 찻잎의 수분을 3~6% 정도까지 감소시킴으로써 향과 맛을 더하고 변질을 막는다[건조]. 

삼다리 마을에서 시루봉 가는 길. 길에 댓잎이 두툼하게 깔려 쿠션이 좋다. [사진=황호택]

 국씨는 삼다리에서 나오는 죽순 껍질을 200°C의 가마솥에서 덖음해 노란빛이 나는 죽신황금차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죽순의 전라도 사투리가 죽신.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차라고 한다. 
 죽로차는 쓴맛을 내는 탄닌 성분이 적다. 풋풋하며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담양군의 죽로차 재배면적은 170ha. 죽로차 재배가 대나무밭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품질이 유지되고 값도 비싸다. 대밭에서는 맥문동 구기자 둥굴레 등 약용작물을 함께 재배할 수 있다.  
 내다 마을은 입구만 트여 있고 대나무숲이 소쿠리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삼다리 마을에서 광주의 무등산이 내다보이고 마을 앞으로는 영산강 지류인 용천이 흐른다. 
 삼다리의 대나무밭은 옛날에 석작을 만들던 솜대(분죽)가 주류다. 마을 앞에는 2500평 규모의 저수지가 있다. 대밭에서 흘러나온 물이다. 수질이 깨끗해 붕어와 가물치가 뛰어논다. 마을 앞의 논들도 대나무 밭에서 나온 물로 농사를 짓는다. 

삼다리 외다마을에 있는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폐업한 정미소.[사진=황호택]

 대나무의 침범을 막으려면 땅을 30cm 이상 파고 플라스틱 패널 등으로 근경을 차단해야 한다. 가만히 놓아두면 선산이건 밭이건 가리지 않고 대나무 근경이 뚫고 들어간다. 
 인공의 테마파크인 죽녹원과 달리 삼다리의 대나무 밭은 자연의 파라다이스다. 산책로에는 댓잎과 솔잎이 수북하게 깔려 운동화를 통해 전달되는 쿠션이 좋다.   
 삼다리 뒷산은 2,3분 능선까지 주민들이 소유권을 갖고 있다. 4분 능선부터는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유림이다. 담양군은 세계농업유산 지정을 계기로 개인이 소유한 대나무 숲을 매입하고 국유림은 임차해 죽다원(竹茶苑)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송진 담양군 농업연구사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은 규제가 많지만 세계농업유산은 사유재산권에 아무런 제악이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주민이 힘을 합하면 전국 최대 규모의 대나무 숲과 죽로차로 명물 농업유산을 만들어 공존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나무의 텃세에 길가로 밀려난 소나무들. [사진=황호택]

  세계중요농업유산은 근현대 농업이 지나치게 생산성에 편중돼 세계 각지에서 산림 파괴와 수질 오염 등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지역의 고유문화와 경관, 생물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창설됐다. 농촌지역의 인구 감소, 고령화,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인해 수천 년에 걸쳐 유지되던 농촌의 전통 경관 문화 기술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농업과 농촌의 자원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한 제도가 한국의 국가농어업유산과 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이다. 산업화의 침범을 이겨내고 현재까지 살아남은 농업유산들은 환경 보호라는 관점에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내다 마을에서 시루봉까지 2km의 대나무 숲 오솔길이 이어진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대나무숲 트레킹 코스다. 대나무 사양화로 버림받은 숲이 아니라 고급 웰빙 차와 죽림욕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만성리의 '제2 죽녹원' 맹종죽 숲
 죽녹원에서 멀지 않은 담양읍 만성리에는 8000평 대나무 밭에 맹종죽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장관을 볼 수 있다. 2020년 만성리는 삼다리와 함께 유엔 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지정됐다. 
 만성리 ‘제2 죽녹원’에 들어가 보면 키가 훌쩍 크고 몸피가 굵은 맹종죽이 늠름한 장엄미를 과시한다. 담양군은 이 대나무 숲에 힐링의 공간을 만들어 죽녹원 관광객을 분산하려는 구상이다. 시설물 공사 중이어서 아직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한다.

국가중요농업유산 만성리에 조성한 맹종죽 숲. [사진=황호택]


 대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소나무의 4배나 된다. 피톤치드 발생량이 4계절을 합하면 편백나무가 약간 많지만 여름만 놓고 보면 대나무가 두 배나 높다. 산림에서 주로 휘발성의 형태로 존재하는 피톤치드는 호흡기나 피부를 통하여 인체에 흡수돼 항염 항균, 면역 증진, 스트레스 조절 등에 도움을 준다. 죽림욕(竹林浴)은 맹종죽의 아름다운 숲을 감상하며, 대나무 잎이 서걱이는 소리를 듣고, 피톤치드를 몸으로 들이 마시는 산림욕이다.   
 옛날에 만성리는 130호 가운데 100호가 부채를 만들던 부채 마을이었다. 중국산 부채가 밀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거나 이사 갔다. 김대석(金大鉐) 장인은 조부 때부터 만들던 부채를 놓지 않고 마을을 지켰다. 그의 집에는 각종 부채를 비롯한 대나무 공예품들이 방마다 가득 들어차 있다. 하나같이 진귀한 명품들이다. 만성리와 담양 죽세공 역사를 알리고 진품명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후원=담양군(군수 최형식) 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참고문헌
1. 담양 대나무밭 농업시스템 홈페이지 https://damyangbamboo.org/kr/
2. 담양군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국가중요농업유산 담양 대나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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