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미디어 생태계 변화와 방송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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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카이스트 겸직교수
입력 2021-12-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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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카이스트 겸직교수]

모두가 바래 왔던 것처럼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은 채 2021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2020년은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차지하고 BTS가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대한민국 콘텐츠의 위상이 더욱 높아진 한해였다. BTS는 2021년에도 1위를 차지했고, ‘오징어 게임’, ‘지옥’ 등으로 대한민국의 콘텐츠는 2021년에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코로나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급속하게 이용량과 가입자가 늘어난 OTT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에는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 플러스가 국내에 진출했고, 2022년에는 HBO 맥스와 아마존 프라임 등 또 다른 글로벌 사업자들이 국내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OTT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OTT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방송’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방송이란 “라디오나 텔레비전 따위를 통하여 널리 듣고 볼 수 있도록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을 말한다. 방송법상 방송은 “방송프로그램을 기획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방송의 정의를 살펴본 이유는 방송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개념적 의미와 방송으로 불리는 미디어 간의 수행성 측면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나 개념적 정의로 볼 때 방송이라는 개념을 가장 협소하게 이해하면 지상파 방송만 방송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용어는 사전적, 법적인 의미를 넘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용어다. 기술적인 속성상 합성어로 쓰이기 어려운 ‘인터넷 방송’이라는 단어가 관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영상이나 음성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일을 통칭하는 용어로 방송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송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와중에 미디어 생태계는 스트리밍 환경으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술 방식을 의미했던 ‘스트리밍(streaming)’이라는 용어는 이제 이용자에게 최적화(optimization)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상징 혹은 은유처럼 사용되고 있다. 기존에 방송으로 인식되었던 동영상 혹은 음성 서비스가 인터넷 기반 미디어에서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청자 입장에서 체감하는 방송의 개념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가고 있다.
 
다시 방송법으로 돌아오면 국내 방송법상 방송은 지상파 방송뿐 아니라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도 포함하고 있다. 방송의 정의와 방송법상 사업자로 정의되어 있는 사업자의 성격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거나 기술 방식의 변경, 중요한 법 조항의 개정이 필요할 경우 개념 정의를 추가하여 사업자를 진입시켜야 하는 것이 국내 방송법 체계가 가진 한계다.
 
방송의 개념을 포함해서 방송법을 포함한 방송 관련 체계 정비의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2000년 통합방송법이 제정된 이후 큰 틀에서 방송 관련 법체계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법과 정책은 기술 진화와 시장의 변화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방송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고민 그리고 지금까지 방송이라고 불려 왔던 매체들이 추구해야 할 규범적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학술적인 고민과 현실적인 고민 모두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익성’은 오랜 기간 방송이 추구해야 할 규범적 가치로 여겨져 왔고, 앞으로도 개념에 대한 발전적인 재발견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송 혹은 방송을 대체하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을 때 미디어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공익성과 더불어 공정경쟁과 시청자 복지 등 방송이 추구해야 할 규범적 가치로 여겨져 온 개념들과 더불어 스트리밍 생태계에서 미디어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청자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며 시청자 중심의 미디어에 대한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OTT를 포함해서 인터넷 기반 매체 주도의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면서 시청자 개념보다는 이용자 관점에서 동영상 매체를 소비하는 주체를 규정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이용자라는 용어를 통해 OTT 소비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이용자가 시청자를 완전히 대체 하기는 어렵다. 보고 듣는 행위는 전통적인 방송이나 OTT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시청자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를 찾기보다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시청자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시청자가 지금의 미디어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시청자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시청자들이 처해 있던 문제가 선택지의 부족이었다면, 현재는 무엇을 봐야 할지 선택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 일 수 있다. 스트리밍을 상징하는 것이 최적화라고 했지만 시청자를 위한 최적화인지를 판단하기는 갈수록 어려운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시청자 중심으로 현재의 환경을 진단해 보는 것이 방송이라는 용어에 대해 미래에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혹은 미래의 미디어 생태계를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출발점이자 귀결점인지도 모른다. 미래 미디어 생태계의 주인공은 시청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창희 필자 주요 이력 

▷중앙대 신문방송학 박사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디지털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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