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⓻꽃이 진다고 슬퍼마라-송순 면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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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입력 2021-12-2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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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 피바람 부는 조정 피해 낙향
담양을 두고 누정(樓亭)과 원림(園林), 가사 문학의 본향이라고 한다. 그 매력적인 문화의 뿌리엔 면앙정(俛仰亭)이 있다.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의 제월봉으로 오르는 높다란 언덕 앞엔 면앙정이라 새겨진 커다란 석비가 서 있다. 여기서 언덕을 올려다보면 면앙정의 기와지붕이 보일 듯 말 듯하다. 
송순(宋純, 1493~1582)은 1533년 자신의 고향인 담양 봉산면 제월봉 오르는 길목에 면앙정을 지었다. 그의 나이 41세. 불혹을 갓 넘긴 시절이었다. 송순은 90세까지 장수했으며 50년 동안이나 관직 생활을 했다. 27세 때인 1519년 빼어난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출사(出仕)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 개혁파가 훈구파에 의해 크게 화를 입는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송순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한양에서 관직 생활을 하던 송순은 1533년 김안로(金安老) 일파가 조정을 쥐락펴락하자 미련 없이 벼슬을 내려놓고 담양으로 낙향했다. 그때 면앙정을 지었다. 3년 남짓 자연과 함께 시를 짓고 마음을 다스렸다. 은일(隱逸)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1537년 김안로가 사약을 받고 실각하자 곧바로 홍문관 부응교에 제수되어 관직에 다시 나아갔다. 이후 경상도 관찰사,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50세인 1542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1533년 송순이 지은 면앙정은 임진왜란 때 부서졌고 1654년 후손들이 다시 지은 뒤 몇 차례의 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진=이광표]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났다. 윤원형(尹元衡) 일파에 의해 많은 사림들이 화를 입자 송순은 상춘가(傷春歌)라는 시조를 지었다. “꽃이 진다하고 새들아 슬퍼마라/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삼하리오” 송순은 이 시조에서 희생당한 사림들을 낙화에 비유했다. 눈 밝은 사람이면 거기 담긴 비유와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이 노래가 불렸고 그로 인해 송순은 큰 변을 당할 뻔했다.
1550년엔 대사헌, 이조참판에 올랐으나 사론(邪論)을 편다는 죄목으로 충청도 서천으로 귀양을 가야 했다. 귀양에서 풀려난 송순은 1552년 60세 때 면앙정을 개축했다. 몇 차례의 부침을 겪었으나 송순은 1569년 77세에 의정부 우참찬에 이르렀다. 이때 그는 관직에서 물러났다. 1519년에 출사했으니 무려 50년 만이다. 이후 9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송순은 면앙정에 머물며 줄곧 시문과 풍류를 즐기면서 강호가도(江湖歌道)의 담양 가단을 구축했다.

면앙정에서 내려다본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일대. 멀리 영산강이 흐른다. [사진=이광표]

1550년대에 송순은 면앙정에서 ‘면앙정가’를 지었다. 면앙정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도가적 풍류적 삶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신선이 엇더턴지 이 몸이야 긔로고야/강산풍월 거늘리고 내 백년을 다 누리면/악양루 샹의 이태백이 사라오다/호탕(浩蕩) 정회(情懷)야 이에서 더할소냐/이 몸이 이렁 굼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그 뜻은 이렇다. '신선이 어떤 것인지, 이 몸이야말로 신선이로구나. 강산 풍월 거느리고 내 평생 다 누리면 악양루 위의 이태백이 살아온다 한들 넓고 끝없는 정회야 이보다 더할쏘냐. 이 몸이 이렇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자연친화적, 도가적, 풍류적이지만 그래도 임금의 은혜를 칭송하며 유교적으로 마무리했다. 당시 세상의 도리를 지킨 것이다.
‘면앙정가’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과 함께 호남 가사문학의 원류로 평가받는다. 내용과 형식 등에서 정철(鄭澈, 1536~1593)의 성산별곡(星山別曲)에 영향을 주었고, 정철은 이에 힘입어 담양 땅에서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을 창작했다. 면앙정과 송순은 이렇게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본격적인 시발점이다. 또한 담양이 '한국 가사문학의 최고봉'의 명성을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담양 출신의 송순은 학자이자 관료였으며 넉넉하고 풍류 넘치는 예인이었다. 특히 음률에 밝아 시가에 능했다고 한다. 이런 기질이 4음보의 가사문학을 창작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면앙정’ 편액. 16세기 명필 성수침의 글씨로 전해온다. [사진=황호택]

1552년 송순은 면앙정을 개축했다. 그의 나이 60세 때였다. 송순은 이렇게 기뻐했다.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땅을 내려다보기도 하며 바람을 쐬면서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되었으니 나의 본래 원하던 바를 이제야 이뤘다.”
면앙정 개축을 자축하기 위해 송순은 기대승(奇大升, 1527~1572)에게 ‘면앙정기(俛仰亭記)’를 부탁했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1576년엔 임제(林悌, 1540~1587)에게 면앙정부(俛仰亭賦)를 써달라고 했다. 그때 송순의 나이는 84세, 임제는 28세였다. 나이 차이는 무려 56세. 그런데도 송순은 나이 차이에 개의치 않고 교류와 소통을 했다. 500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면앙정은 송순의 호이기도 하다. 면앙(俛仰)은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본다(우러른다)는 뜻. 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어야 하고, 사람에게 굽어보아 또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묘사화, 을사사화의 와중에 송순은 '면앙'을 되뇌며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다잡았을 것이다.
송순은 면앙정을 두고 이렇게 읊은 바 있다.

면앙정 앞의 참나무. 송순이 심은 것으로 전해온다. .[사진=이광표]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
나 한 간 달 한 간에 청풍(淸風) 한 간 맛져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시원하고 넉넉한 시가 아닐 수 없다. 송순의 가치관과 면앙정을 지은 까닭을 이 한 편의 시에서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송순은 1524년 정자를 지을 땅을 샀고 10년 동안의 준비 끝에 면앙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 시에서 송순이 노래한 것처럼 면앙정은 작고 소박하다. 지금의 면앙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에 한 칸짜리 방이 있고 이를 둘러싸고 마루가 놓여 있다. 내가 한 칸, 달이 한 칸. 바람이 한 칸을 차지하고 강산은 먼발치로 감상하겠다고 했다. 투명한 풍류와 낭만이 아닐 수 없다. 송순이 지었던 원래의 정자는 초가(草家)로 추정되지만 임진왜란 때 부서졌다. 1654년 후손들이 기와지붕의 정자로 다시 짓고 1970~1980년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앙정 3언가’ 편액 [사진=이광표]

면앙정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주변 풍광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면앙정 마루 위에는 10점의 편액이 걸려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면앙정 편액으로, 당대의 명필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의 글씨다. 송순은 이 글씨를 받기 위해 성수침이 사는 경기 파주까지 찾아갔다는 얘기도 전한다. 면, 앙, 정, 세 글자는 별다른 기교 없이 반듯하면서 힘이 넘친다. 성수침은 면앙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송순의 삶을 이 세 글자에 잘 구현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황, 김인후 등 당대 명사들의 편액

송순의 ‘면앙정 삼언가(三言歌)’ 편액도 눈에 띈다. '俛有地 仰有天 亭其中 興浩然 招風月 揖山川 扶藜杖 送百年(면유지 앙유천 정기중 흥호연 초풍월 읍산천 부여장 송백년)' 그 뜻은 대략 이러하다.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그 가운데 정자를 지으니 흥취가 호연하다/바람과 달 불러들이고 산천도 끌어들여/청려장 지팡이 짚고 백년을 보내리라.” 이 삼언가를 통해 면앙의 의미, 송순의 삶의 철학, 면앙정의 존재 의미를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이외에 이황(李滉, 1501~1570)과 김인후(金麟厚, 1510~1560)가 면앙정에 관해 쓴 시의 편액, 기대승의 '면앙정기'와 임제의 '면앙정부' 편액, 면앙정에서 바라보는 30가지 승경을 노래한 고경명(高敬命, 1533~1592)과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의 ‘면앙정 30영(詠)’의 편액 그리고 이안눌(李安訥, 1571~1637),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시가 적힌 편액도 보인다.
면앙정은 자그마하지만 사방이 탁 트여 모든 것과 함께한다. 땅과 하늘은 물론이고 바람과 달, 나아가 주변 강산을 면앙정에서 함께한다. 여기에 좋은 사람이 빠질 수 없고, 그들이 읊어내는 시문이 빠질 수 없다.

면앙정에 걸린 당대 명사들의 편액들. [사진=이광표]

송순은 면앙정에서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정철, 임제, 양산보, 김성원(金成遠, 1525~1597), 기대승, 박순(朴淳, 1523~1589) 등과 교유했다.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 문인들이다. 이들은 면앙정을 찾아 송순으로부터 시를 배우고, 함께 시를 지었다.
면앙정은 작은 정자이지만 그 의미는 창대하다. 당대 최고의 문사들이 면앙정에 모여 송순과 함께 면앙정을 노래했기에 단순한 정자 건물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당시 조선 가단(歌壇)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면앙정은 송순이 생활하며 면앙정가를 창작한 공간이지만 송순만의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면앙정가만을 잉태한 공간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다.
당대의 지성과 낭만이 행복하게 만나 무수히 많은 명문(名文)으로 태어났다. 그 흔적의 일부는 현재 면앙정에 걸려 있는 편액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편액들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화적,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많은 선비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 송순을 기리고 면앙정의 풍광을 즐겼음을 웅변한다. 송순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호남의 가단이 형성되었고 이는 당대 최고 문사들의 시와 풍류의 향연이자 학문과 사상의 연찬(硏鑽)이었다. 모두 송순과 면앙정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글들이다. 조선시대 시문학과 풍류 사상의 한 축이 바로 이 면앙정에서 발원하여 조선시대를 관통했다.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송순의 ‘면앙정가’를 옮겨놓은 서예 작품. 담양의 한국가사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이광표]

면앙정 뒤쪽으로 영산강 흐르는 너른 평야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두고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정인지(鄭麟趾), 신숙주(申叔舟),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김종서(金宗瑞), 박연(朴堧) 등 당대 최고의 인사 22명이 발문을 쓴 것이나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를 두고 중국 청나라의 학자 16명과 국내의 정인보(鄭寅普), 이시영(李始榮), 오세창(吳世昌)이 발문을 쓴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에 면앙정은 유형과 무형 모두의 측면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문화적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면앙정은 그리 높은 곳에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면앙정에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낙엽 더미 옆으로 작은 대숲이 눈에 들어온다. 12월 겨울 날씨에도 대숲은 늘 푸르다. 낙엽의 메마른 갈색과 대비를 이루는 푸른 대나무. 대숲을 지나자마자 면앙정이 나온다. 면앙정 뒤쪽으로 평야가 넓게 펼쳐지고, 멀지 않은 곳으로 영산강이 흘러간다. 대숲 일렁이는 소리를 들으며 “면앙, 면앙” 중얼거려 본다. 참,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네 삶을 성찰하게 한다. 신발 벗고 면앙정 마루에 올라 저 영산강을 바라보고 하늘과 땅 사방을 둘러본다. 면앙은 송순의 삶의 철학이었고 어수선한 시대를 견디는 힘이었다. 면앙정은 조선시대 학문과 시문의 총화를 일궈낸 구체적인 실천 공간이었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후원=담양군(군수 최형식·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참고문헌
1. 김세곤 《송강문학기행》 열림기획, 2007.
2. 윤일이 〈송순의 면앙정과 16세기 누정건축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44호, 한국건축역사학회, 2005.
3. 최상은 〈송순의 꿈과 면앙정가의 흥취〉 《고시가연구》제31집, 한국고시가문학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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