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대만의 급부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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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동서울대 교수,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21-12-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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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 속 기회 만들며 반사이익 챙기는 지혜와 용기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한때 경쟁자이다가 한동안 우리 시야에서 멀어진 대만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가두리에 갇혀 있기도 했지만, 온통 중국 본토에 시선을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까지 대만은 우리와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불릴 만큼 신흥공업국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의 내실 성장에 치중하였다면 한국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대기업 중심의 발전 전략을 채택한 것이 다른 점이다. 단적인 예로 자동차 산업의 경우 우리가 완성차 위주의 독립적 생산 체계를 갖추었지만, 대만은 글로벌 기업의 공급사슬에 편입되는 부품 산업에 주력하는 동시에 틈새시장 공략에 공을 들였다. 다른 길을 걸어온 셈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이 우리에게 많고 대만이 적은 것은 발전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외형상으로만 보면 대만보다 우리가 크게 성공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며, 실제로 국제 사회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대만은 중국의 파상적인 공세에 밀려 곳곳에서 제대로 된 국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서러움을 아직도 당하고 있다. 이런 냉혹한 환경에서도 대만이 그나마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실용주의 노선 견지와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고 있는 대만 기업의 중요성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이 정치적으로는 서로 앙숙이 되어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대만 사람과 본토 사람 간에는 별로 허물이 없이 지낸다. 경제적 이익 공유라는 중국인 특유의 상인 기질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다.
 
눈여겨볼 것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대만이 글로벌 경제의 전면에 두드러지고 있는 점이다. 일찌감치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이에 걸맞게 작년 실질 경제성장률이 중국(2.1%)보다 높은 세계 1위라는 무려 3.1%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대만을 보는 세계의 시선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 격화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를 의식해 중국은 대만 공습까지 언급하면서 위협을 고조시키고, 백기 투항을 요구한다. 하지만 대만은 특유의 실사구시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전혀 굴하지 않고 미·중 사이에서 철저하게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다. 대만 경제의 저력과 뚝심이 서방 국가의 지원을 끌어내고 있는 원동력이다.
 
‘매운 언니’라는 별칭을 가진 현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정권은 중국과 사사건건 맞서면서도 대만 경제의 부활을 견인한다. 진보 정권이지만 경제에 올인하면서 지난 5년간 성장률이 우리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우리보다 한참이나 뒤져있던 1인당 국민소득도 3만 달러에 육박하면서 턱밑까지 추격, 조만간 추월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온다. 대미(對美) 수출도 급증하여 미국의 8대 교역국(한국은 6위)이 되고 있다. 일등 공신은 반도체다. 미국의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 폭탄을 피하려고 중국 진출 기업을 조기에 유턴시킨 것도 주요했다. 특히 세계 1위인 파운드리(반도체 생산 전문 기업) TSMC를 필두로 최상위 10개국 중 4개 업체가 대만에 있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66%나 된다.

대만보다 훨씬 많은 간판 기업을 가진 한국, 이를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이 부재

미국은 중국 견제의 수단으로 대만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중국과의 편 가르기 차원에서 미국이 주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도 대만은 주요 초청국 대상에 버젓이 명단을 올렸다. 중국에 크게 한 방 먹인 것이다. 일본과 대만의 관계도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같은 일제(日帝)의 식민 통치를 받았지만, 대만인들은 일본에 대한 반감이 거의 없다. 오히려 친근감이 계속 유지되고 있을 정도다. 역사적 배경이나 통치 방식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기형적이다. 반도체 주도권을 우리에게 뺏긴 일본이 대만 반도체 기업과의 제휴를 강화하고 있고, 대만을 정점으로 하는 미·일·대만의 3각 동맹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우리를 초조하게 하는 구도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 초격차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토로한다. 자칫 사면초가에 몰려 그동안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일시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초조함이 엿보인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조차 우군이 별로 없다.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수성(守城)을 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리고 무너지는 것은 삽시간이다. 다행히 미국이나 일본, 대만까지도 중국의 비정상적 행위에 대해 힘을 모으자고 합류를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쉽다면 이에 대한 국가적 공감대가 없고, 기업이 독자적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만의 급부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만이 처한 상황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상을 보는 안목과 기민성이 우리보다 한 수 위다. 국가 간판 기업을 보호하고 이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수단도 돋보인다. 중국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할 일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다. 글로벌 가치사슬 새판 짜기에 대응하면서 미·중 격돌에서도 냉정하게 자국의 이익을 확보한다. 코로나19는 글로벌 통상 질서의 재편을 촉구하고 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 것이 아니라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길이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다른 대안이 없다. 대선이 코앞이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에 관한 큰 경제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탐대실하다가 또 뒷북을 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학교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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