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유권자 현혹하는 대선 후보 '퍼주기' 경쟁, 유권자가 "No"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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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21-11-1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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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0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글로벌인재포럼2021 행사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대선 경쟁은 민주주의의 진수를 보여준다. 치열하게 경쟁하되 결과에 승복하고 그런 절차를 거쳐 유권자 앞에 내놓을 ‘대표 선수’를 정하는 과정이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의 병폐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정치인이나 정당들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을 지상 목표로 삼고 승리를 위해서는 대중 선동과 영합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 그렇다. 이 같은 병폐를 누가 어떻게 막을 것이냐가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이낙연 후보를 줄곧 압도했다. 2차 선거인단 투표만 해도 이재명 후보는 58.1%를 얻어 33.4%를 얻은 이낙연 후보를 크게 앞섰다. 그러다가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이낙연 후보에게 28.3% 대 62.4%의 더블 스코어 차이로 패했다. 민주당 골수 지지층이 많이 참여했던 1, 2차 때와 달리 3차 투표 때는 비당원 등 중도층이 다수 선거인단에 들어갔다. 대장동 사업에 대한 여론 관심이 1,2차 투표 때보다 높아지면서 그 부정적 평가가 반영돼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치열한 경쟁·깨끗한 승복은 좋지만

이재명 후보는 누적 투표 수에서 앞서 결국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경선이 조금 더 뒤로 늦춰졌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민주당 경선 과정은 민주주의에서 ‘표심’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무서운가를 잘 보여준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는 경선 시작 전만 해도 윤석열 후보에게 크게 뒤졌다. 그 뒤 점점 격차를 줄이더니 일부 여론조사에 윤 후보를 앞서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절반씩 반영해 후보를 선출했다. 윤 후보는 당원 투표에서는 홍 후보를 57.8%대 34.8%로 크게 이겼으나 여론조사에서는 37.9%대 48.2%로 뒤졌다.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한 결과 윤 후보는 47.8%를 얻어 41.5%을 얻은 홍 후보를 누르고 후보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경선은 당심과 민심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선출된 뒤 이낙연 후보는 ‘잠시 마음을 다듬는 시간’을 갖기는 했지만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경선 때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는 현장에서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두 당의 경선 과정은 마치 월드컵 축구나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우승 경쟁을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박진감이 넘쳐흐른다. 경쟁할 때는 치열하게 싸우되 결과가 나오면 승복하는 모습도 똑같다.

유권자를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여 그 결과로 후보를 선출하고 패배자들은 결과에 승복하는 이런 모습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볼 수 있다. 군부 실권자가 무력을 동원해 스스로 대선 후보가 되는 군부 독재 국가, 후보 한 명을 놓고 거수기 투표로 후보를 뽑는 사이비 민주주의 국가, 온갖 부정 선거가 판치는 후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공정한 절차와 진정한 경쟁, 깨끗한 승복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수다. 우리도 1987년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는 공정한 절차와 진정한 경쟁이 없는 독재 또는 사이비 민주주의 국가였다. 앞으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간의 본선 경쟁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개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번 민주주의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전 국민 재난 지원금' '자영업자 50조 지원' 논란

그러나 대선 경쟁은 민주주의의 병폐도 드러내고 있다. 유권자 표를 놓고 경쟁하는 민주주의의 본성에서 생겨나는 병폐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대중 선동과 영합’이다. 후보들이 벌써부터 ‘누가 더 많이 국민에게 돈을 퍼주나’ 하는 경쟁이라도 벌이듯 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대표적이다. 그는 ‘전 국민 코로나 재난 지원금’을 들고 나왔다. “1인당 최소 100만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48만~50만원 가까이 지급됐다”며 “모든 국민에게 최소 30만~50만원의 추가 지급이 필요하다”고 했다. 추가 지급에 필요한 돈은 인구를 5000만명으로 보면 15조~25조원이 된다.

이 후보는 “재난지원금은 코로나로 고통받은 국민들을 위로하는 성격도 있지만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매출을 지원하는 경제정책”이라고 했다. 그래서 “굳이 대상을 선별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했다. 전 국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주면 국민을 위로하게도 되고, 국민이 그 돈을 소비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의 매출 증대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도 이 후보 주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또 재난 지원금이냐’ 하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방역 지원금’이라는 표현을 썼다. 방역에 협조한 국민에게 지원금을 준다는 것이다.

‘재난 지원금’이든 ‘방역 지원금’이든 말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몇 십만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에게까지 일률적으로 일정액의 현금을 주는 게 좋은 정책이냐이다. 김부겸 총리조차 "당장 재정은 여력이 없다. 막 주머니를 뒤지면 돈 나오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라며 “(전국민 재난 지원금이) 과연 옳은 방식인지에 대해서도 (더)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돈도 부족하지만 있다고 해도 전 국민에게 주는 방식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전 국민 재난 지원금 지급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5일부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9명을 조사한 결과다.  60.1%가 "재정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내수 진작을 위해 지급이 필요하다"며 찬성한 의견은 32.8%에 그쳤다. 반대 의견은 코로나 피해 계층인 자영업자 층에서도 62.8%나 됐다.

'장기적 목표·비전 제시 경쟁'은 없어

윤석열 후보는 ‘자영업자 100% 손실 보상”을 들고 나왔다. “집권하면 새 정부 출범 100일 동안 50조원을 투입해 정부의 영업 제한으로 입은 자영업자 피해를 전액 보상하겠다”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농어민 월 30만원 기본소득’을 약속했다. ”대한민국의 식량 주권,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농어민을 준공무원으로 대우해야 마땅하다“며 ”모든 농어민에게 월 3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이처럼 ‘돈 풀기 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뭐겠는가? 어떤 명분을 대든 결국은 표를 얻기 위해서다. 민주주의에서는 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돈 풀기 경쟁은  선거에서 유권자 표를 더 많이 받아야 당선되는 민주주의의 본성 그 자체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후보들이 유권자 표를 잡으려고 경쟁하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경쟁 방식과 내용이다. 후보들은 국가 장래를 위한 장기적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 유권자 지지를 얻으려 하기보다 당장 눈앞의 돈을 보고 투표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수십조원씩 드는 정책을 주장하면서 국채 발행이나 초과 세수(당초 목표보다 더 걷히는 세금 수입) 등을 재원으로 활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채는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빚이다. 우리나라 국가 채무는 내년 1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갈수록 고령화가 심해지고 노동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젊은이들은 자기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도 후보들은 그 젊은이들에게 산더미 같은 나라 빚까지 짊어지게 하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결국 유권자 판단과 선택이 중요 

초과 세수로 충당하면 된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이재명 후보는 “초과 세수가 수십조원"이라며 "곳간이 넘쳐난다”고 했다. '수십 조 초과 세수’라고 하지만 올해 예상보다 더 걷히는 세금은 10조~15조원 규모다. 이는 정부가 올해 코로나로 경제 사정이 나빠질 것으로 보고 처음부터 목표를 낮춰 잡아 생긴 일이지 경제가 잘 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마저 국가 채무 상환 등에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민주당은 올해 걷을 세금을 내년으로 넘겨 걷어 지원금 재원으로 쓰자는 초법적 주장까지 한다.
 
유권자 표의 수로 승부가 결정나는 민주주의에서 대중 선동과 영합을 거부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유권자의 건전한 판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이 대중의 이기심과 탐욕을 자극하고 이에 영합하는 후보와 정당에 ‘그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낸다면 후보들을 견제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돈 주겠다는 후보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이게 대중의 정서다. 그렇다고 대중에게 합리적 판단력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전 국민 재난 지원금 지급을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반대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그걸 보여준다. 결국 문제는 유권자다. 민주주의 병폐를 극복하느냐 덧나게 하느냐는 유권자의 판단과 선택에 달렸다. 훌륭한 유권자가 훌륭한 후보를 나오게 하고 민주주의 병폐를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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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민주주의 병폐 내다본 플라톤의 탁견

대학 다닐 때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쓴 ‘국가론’ 강의를 들었다. 플라톤은 이 책에서 민주주의를 아주 나쁜 체제로 설명했다.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무리가 통치하는 ‘중우정치’, 뛰어난 선동가가 권력을 잡는 ‘선동정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플라톤은 대중은 본래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존재라고 했다. 이런 대중을 선동하고 대중에 영합하는 데 뛰어난 사람이 바로 선동가이다. 중우정치와 선동정치는 어리석은 대중과 선동가의 합작품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플라톤 강의를 들으면서 의아했다. 대중, 즉 국민을 그렇게 깎아내리고 우습게 보다니, 플라톤이야말로 ‘반민주적’ 인사가 아닌가 생각했다. 플라톤 강의를 들을 때는 유신 독재 시절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사방에서 끓어오를 때였다. 민주화가 지상 과제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런 때이니 더욱 민주주의를 깎아내리고 헐뜯는 플라톤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고 나서 보니 민주주의는 좋은 점만큼이나 문제점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문제점은 다른 게 아니다. 플라톤이 지적했던 중우정치, 선동정치의 폐해다. 남아메리카의 베네수엘라가 그 폐해를 겪은 대표적 나라다. 베네수엘라는 포퓰리즘에 빠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가 나라 재정이 거덜났다. 많은 국민들이 나라를 버리고 해외로 탈출했다. 플라톤의 민주주의 병폐론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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