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 기획-2022 리스타트 원년] 노벨평화상, 반 세기만 언론계로...'표현의 자유 위축, 가난과 총성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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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입력 2021-11-15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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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국민 80%는 가난을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언론의 자유야말로 부패와 독재 권력을 막는 수단이며 부패와 독재 권력은 가난의 근본적인 이유다."(드미트리 무라토프, 2016년 세계신문협회 총회가 주관한 황금펜상 수상 당시 소감)

#."팩트(사실)가 없는 세상은 진실과 신뢰가 없는 세상을 뜻한다. 아무것도 팩트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마리아 레사,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일러스트. 왼쪽부터 마리아 레사, 드미트리 무라토프. [일러스트=노벨위원회]


2021년 노벨평화상이 반 세기여 만에 언론계에 돌아갔다. 1953년 나치 집권 시절 독일의 비밀 재무장을 폭로했던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한 각국의 상황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10월 8일(현지시간)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두 명의 언론인을 지명했다. 러시아 독립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편집장과 필리핀 탐사보도 전문매체 ‘래플러’의 공동설립자인 마리아 레사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을 선정하며 "레사와 무라토프는 필리핀과 러시아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용기 있는 싸움을 벌였다"며 "이들은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점점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와 같은 이상을 옹호하는 모든 언론인을 대표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을 놓고 전 세계에선 수 많은 추측이 오갔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2년 동안 큰 혼란을 겪은 데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 목소리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벨위원회의 선택은 현직 언론인이었다. 이는 지난해(세계식량기구·WFP)에 이어 대부분이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다만,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연구소(PRIO)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 전 예측에서 최근 전 세계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부상하고 가짜뉴스가 난입하고 상황에 주목하기도 했다. 당시 PRIO는 '국경없는기자회(RSF)' 등을 유력 후보로 꼽으며 가짜뉴스의 위험성이 부각하는 현실에서 언론계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일이 향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초석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이들을 독려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달 노벨위원회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문에도 "민주주의와 '항구적인 평화의 전제 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문구로 반복됐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경종

CNN 마닐라·자카르타 지국장 출신인 레사는 2012년 래플러를 설립하고 자국 내 권력 남용과 폭력의 증가, 권위주의 정치 확산 상황을 집중적으로 비판해왔다.

무라토프는 러시아어로 '새로운 신문'이란 뜻의 노보야 가제타를 1993년 창간한 이후 24년 동안 편집장을 맡아왔다. 노보야 가제타는 ‘러시아 언론 자유의 전초기지’로 통하기도 한다. 러시아 정부의 각종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꿋꿋이 자국 국가 권력의 남용과 폭력, 비리와 부패를 파헤쳐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로사와 무라토프의 조국인 필리핀과 러시아의 언론 환경은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날로 악화하고 있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의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와 필리핀에선 1992년부터 2021년 사이 각각 58명과 87명의 언론인이 죽음을 맞이했다. 두 나라의 현 정권 수장인 푸틴(1999년 총리 임명)과 두테르테(2016년 5월 대통령 취임) 집권 이후에만 각각 34명과 12명이 살해당했다.

무라토프의 노보야 가제타는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권의 직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체첸분쟁 취재로 유명했던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2006년 피살 사건을 비롯해, 그간 소속 기자 6명이 암살당했으며 무라토프는 2017년부터 소속 기자에 대한 총기 지급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노벨위원회는 "무라토프는 암살과 각종 위협에도 저널리즘의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준수하는 하에 언론인이 원하는 어떤 주제라도 보도할 수 있다는 권리를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평가했다.

◇플랫폼에 종속된 언론의 미래

레사의 래플러 역시 2016년 5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집권 이후 큰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심층 취재 이후 레사 본인의 기소와 수감은 물론, 매체의 폐간 위기도 맞고 있다.

레사는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 "35년 동안의 기자 생활에서 요즘처럼 언론인이 된다는 것이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레사는 2016년 두테르테 정권 이후 10회 이상 체포됐으며, 4번의 출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최근 2년 동안 그의 앞으로 발급된 구속영장만 10건이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019년 10월 레사에 대한 특집 기사를 보도하며 "저널리스트와 대통령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로사와 레플러는 페이스북(현 메타)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플랫폼 기업으로 전선을 확장한 상태다. 페이스북이 가짜뉴스 확산을 방관한다는 이유에서 래플러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래플러는 플랫폼 경제의 시대에서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매체 기반을 독립해 스스로 '소셜 뉴스 네트워크'가 되려는 새로운 혁신에 도전하고 있다.

이는 페이스북이 이용자 유입과 광고 수익을 위해 가짜뉴스 확산을 적극적으로 방관한다는 최근의 내부 폭로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정책연구소인 우드로윌슨센터 소속 가짜뉴스 연구자인 니나 잰코위치는 지난달 9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레사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페이스북의 실패에 대한 고발 성격이 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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