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돋보기] "공직 사회에 90년생이 왔다…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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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기자
입력 2021-10-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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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대전시청 공무원, 신규 부서 발령 3개월만에 극단선택…유족 "부당한 지시가 원인"

  • 젊은 공무원들 "시보 떡, 국·과장님 모시는 날 등 불합리한 공직 사회 관행 여전히 존재

  • 직장갑질119 "안전한 직장 다니는 공공기관 노동자들도 직장 갑질로부터 불안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원 취급을 안 해준다", "왕따 시켜서 말 한마디 못한다"

지난달 스스로 세상을 등진 25살 신규 공무원 A씨가 생전 가족, 친구와 나눈 대화 일부다. 올해 초 대전시청에 근무하게 돼 기뻐하던 A씨는 부당한 지시와 직장 내 따돌림을 버티다 휴직 신청을 하루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은 출근 1시간 전에 도착해 상사가 마실 물과 커피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A씨가 거부한 뒤로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책 '90년생 공무원이 왔다'를 선물하며 공직사회의 세대 간 소통을 강조했지만, 업무 일선에선 구시대적 관행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씨 유족은 최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말과 왕따 행동이 당하는 사람에겐 스스로 목숨을 버릴 만큼 무거운 범죄라는 걸 알아야 한다"며 대전시에 감사와 징계 절차에 속도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대전시 새내기공무원 극단 선택 유가족 회견 [사진=연합뉴스]

 
앞서 A씨는 지난달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규 부서 발령 3개월 만이다. 유족은 A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집단 따돌림과 부당한 지시, 대우 등이라고 했다. A씨는 생전 가족과 나눈 전화 통화에서 "9시까지 출근이지만, 8시 전에 와서 상사 책상 위에 물과 커피를 따라 놓으라고 한다. (직원들은) 다 서무가 하는 거라고 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더니 나를 완전히 싫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직원들은) 내가 제대로 못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었다. 월~금요일까지 거의 12시간을 같이 있는다. 진짜 같이 못 있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A씨가 다닌 병원 진료 기록에도 "(자신을) 비웃거나 무시하고 아예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A씨가 일했던 부서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당한 업무 지시는 없었고, 직장 내 따돌림도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숨진 A씨가 커피 심부름 요구를 받았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공직 사회에 여전히 불합리한 관행이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올해 초 당부한 공직사회의 체질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젊은 공무원들이 악습으로 지목한 시보 떡과 국·과장님 모시는 날 등의 관행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영 국민의힘 의원실이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운영사 팀블라인드에 의뢰해 공무원 719명을 설문한 결과 '시보 떡 돌리기, 출산·육아 휴식 답례와 같은 조직문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6명 이상(65.51%)이 있다고 답했다. 시보 떡은 새로 임용된 공무원이 6개월간의 시보(수습) 기간을 거친 뒤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될 때, 같은 부서 선배들에게 떡을 돌리는 문화를 말한다. 최근에는 떡뿐만 아니라 마카롱과 수제 쿠키 등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이런 시보 떡 돌리기 문화가 신규 공무원들에게 물질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과장님 모시는 날의 조직문화가 있다고 말한 이들도 절반(51.6%)을 차지했다. 국·과장님 모시는 날은 부서나 팀이 순번을 정해 국장과 과장의 점심 식사를 챙기는 것을 말한다. 인사혁신처가 최근 공무원 근무 혁신 지침을 내놓으며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를 이해하는 공직사회를 조성하겠다는 점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 공무원일수록 직무 만족도는 낮고, 이직 의향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발간한 '2020년 공직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각 항목을 1~5점으로 점수화한 결과 연령별 직무 만족도는 △50대 3.75점 △40대 3.51점 △30대 3.32점 △20대 3.22점 등 젊을 수록 저조했다. 반면 이직 의향 인식은 20대 3.15점, 5년 차 이하 3.21점으로 연령대와 연차가 낮을수록 높게 나타났다. 50대 이상의 이직 의향도는 2.63점, 재직 연수 26년 이상은 2.64점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편,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달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공기관 근무자 중 26.5%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공공기관도 직장 갑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직장갑질119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정되고, 해고로부터 안전한 직장에 다니는 공공기관 노동자들도 '직장 갑질'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직장 갑질이 반복해서 발생한 부처와 공기업에 특별감사 및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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