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결혼 후 5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이 둘을 데리고 3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신혼 때 방 두 칸짜리 낡은 빌라에서 시작해 신축빌라, 소형 아파트 전세까지...차곡차곡 한 계단씩 올라왔습니다. 아파트에 살다보니 주택가 골목길보다 단지 안이 아이를 키우기 훨씬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꼈던 청약통장으로 파주시 작은 공공아파트 분양 청약을 신청했고, 당첨이 돼서 행복했습니다. 무시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당첨이되면 뭐합니까. 대출이 불가능해 입주를 못하게 생겼습니다. 저희 부부처럼 평생을 무주택자로 살아온 사람들을 위해 공공분양이 있는 거 아닌가요? 회사다니면서 아등바등 아이 둘을 키우는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대출 없이 어떻게 그런 큰 돈을 마련합니까. 정부가 다주택자를 잡는다길래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한 곳에 정착해서 성실하게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보통의 사람들일 뿐입니다. 제발 무주택 실수요자 중도금 대출, 잔금 대출 규제 풀어주세요."(청와대 국민청원 A씨의 사례)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로 시중은행들이 아파트 집단대출을 조이기 시작하면서 청약시장과 주택시장 모두 패닉에 빠졌다. 최근 4년간 전국적으로 집값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금융권 대출이 막혀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가 어려워지고, 전셋집도 못구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아파트 집단대출을 제한한 탓에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청약에 당첨돼도 입주를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로또청약 당첨돼도 '그림의 떡'...자금 계획 틀어진 분양자들 '패닉'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대출규제로 내 집 마련의 길이 막혔다는 아우성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파트 잔금대출과 관련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원글만 470여건이 올라왔다.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생애최초 주택구입 꿈 물거품. 집단대출 막혀 웁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이날 기준 약 3만명이 동의했다.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분양가 규제에 건설사들이 분양일정을 미루면서 신규 분양 단지도 자체도 귀하지만, 어렵게 분양을 시작해도 대출 가능여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기도 광교에서 분양한 '힐스테이트 광교중앙역 퍼스트'는 분양가 9억원 미만의 주택에 대해서도 중도금 대출 불가를 안내해 청약 예정자를 '패닉'에 빠뜨렸다. 경기도 하남 감일지구에서도 입주를 앞둔 아파트 단지의 중도금 대출 한도가 줄면서 예정자들이 갑자기 추가로 1억~2억원의 잔금을 더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남 감일 입주 예정자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을 조이기 시작하면서 국민은행이 입주 한 달을 남겨두고 대출 기준을 기존 감정가액의 40%에서 분양가액으로 40%로 변경했다"면서 "대출한도 축소로 최소 1억~2억원에 가까운 돈을 한 달 만에 구해야 하는 상황인데, 서민들이 한 달 만에 1-2억을 어떻게 구하라는 것이냐"며 토로했다.
대출규제는 이달들어 더 강화되고 있다. 이달 말 입주 예정인 경기도 분당의 한 아파트는 계약을 맺은 금융사가 집단대출을 거절하면서 금리가 훨씬 높은 새마을금고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 최근 분양한 '더샵 하남에디피스'도 중도금 대출과 관련해 "불투명하다"고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최근 인천 검단신도시 AA13-1블록 공공분양주택 입주자를 모집하면서 "중도금 대출이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며 집단대출이 불가할 경우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단대출이 갑자기 막히면서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을 하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실제 최근 분양한 성남 대장지구 '판교 SK뷰 테라스'는 평균 경쟁률이 316.8대1에 달했는데, 당첨자의 40% 이상이 계약을 포기했다. 사업자가 중도금 집단대출을 제공할 은행을 구하지 못해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당첨을 포기한 117가구는 자금 무순위 청약을 통해 현금 '줍줍'이 가능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포기한 새 아파트가 결국은 10억원 이상의 캐시를 갖춘 현금 부자에게 돌아한 셈"이라며 "부동산 투기와 관련 없는 1주택자나 전세 수요자에 대한 1금융권 대출을 틀어막으면 결국 피해는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권, 대출 조이기...뒤늦게 주택구매 나선 실수요자만 피해
시중은행들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더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NH농협은행이 지난 8월 부동산 관련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KB국민은행이 지난달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로 제한했고, 하나은행도 이달부터 대출 한도 축소에 돌입한다. 우리은행도 대출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영업점 한도를 더욱 깐깐하게 관리하고 있다.
특히 KB국민은행은 최근 집단대출과 관련해 입주 잔금대출을 취급할 때 담보조사 가격 운영기준을 ‘KB시세 또는 감정가액’에서 ‘분양가격, KB시세, 감정가액 중 최저금액’으로 바꾸기로 했다. 사실상 한도를 줄여 대출금액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현 시세를 기준으로 잔금대출이 가능해 비교적 여유롭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지만 분양가를 담보 기준으로 할 경우 대출 가능 금액이 상당 폭 줄어 입주자가 마련해야 하는 자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분양자가 세워둔 자금조달계획이 틀어지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관리 차원의 부동산 관련 대출규제는 이해하지만 실수요자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동산 전문가는 "투자자와 실수요자 구분 없이 시중은행의 가계 대출 중단 사례가 늘어나면서 현금 자산이 부족한 수요층 유입이 제한된 상황"이라며 "과거와 달리 주택 매매에 나서는 주 수요층이 무주택 실수요자로 재편된 상황인 만큼 비자발적 수요 이탈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실수요자 대상 대출, 차질 없게 해라"...실수요자 불안에 '진화'
주택시장의 불안이 가중되자 정부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 계획을 한 차례 후퇴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잔액 총량에 여유를 두면 은행들이 지금처럼 대출을 강하게 조이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7일 기준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4416억원으로, 연말까지 최대 13조5000억원 가량이 남은 것으로 추산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전세나 집단 대출이 중단되는 사례가 없도록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면서 "실수요자가 이용하는 전세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가계대출 잔액 증가율이 관리 목표(6%)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집단대출의 경우 연말까지 잔금 대출이 공급되는 데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서면브리핑을 통해 "서민 실수요자 대상 전세 대출과 잔금 대출이 일선 은행 지점 등에서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이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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