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고추의 매운맛에서 시작된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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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1-10-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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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금년 노벨생리의학상이 발표되었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전세계를 뒤흔든 코로나사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mRNA백신기술을 개발한 팀이 수상자가 되리라 기대하였는데 예상을 빗나갔다. 팬데믹 사태 해결의 핵심일 뿐 아니라 앞으로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데 이 기술이 혁신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으리라고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고추 매운맛의 근원인 캡사이신의 작용원리를 밝혀 매운맛뿐 아니라 열, 통증의 생리적 기전을 밝힌 팀이 노벨상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즐기는 고추의 매운맛은 한국의 전통적인 맛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가 미처 연구에 집중하지 않았을 때, 다른 나라에서 추진하여 노벨상 수상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듯한 아픔을 느꼈다.

생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부의 각종 스트레스에 적절하게 대응하여야만 한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는 오감뿐 아니라 뜨겁거나 차고, 누르는 압력과 같은 모든 자극을 감지하여 적절하게 반응하여야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맛과 냄새는 원인이 되는 화학적 물질과 그에 상응하는 수용체가 반응하여 전기신호를 발생하여 신경을 통하여 뇌로 전달되어 인지한다는 사실이 일찍 발견되었다. 또한 보고 듣는 감각은 빛과 소리와 같은 물리적 자극이 시신경세포와 청신경세포에 있는 고유의 수용체와 반응하여 역시 기계적 변환을 일으킨 다음 전기신호를 발생하여 뇌의 해당부위로 전달되어 인지하는 과정임이 차례로 밝혀졌다. 그러나 생체가 환경의 온도 변화를 감지하고 기계적 자극에 의한 통증을 피하거나 위험순간에 불안한 자세를 교정하는 원리에 대해서는 그 정확한 기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1990년대 말, 캘리포니아대의 줄리우스(David Julius)박사는 캡사이신(Capsaicin, 8-methyl-N-vanillyl-6-nonenamide)이라는 고추 매운맛의 작용기전을 통하여 통증의 원리를 밝히고자 하였다. 캡사이신은 발열반응을 일으키고 통증과 깊은 관계가 있음이 잘 알려져 있었으며, 신경세포에 작용하여 이온전류를 발생한다는 사실도 보고되어 있었지만, 그 작용기전은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줄리우스 박사는 이러한 자극이 하나의 유전자에 의하여 생성되는 수용체에 의하여 전달될 것으로 가정하고 신경세포를 사용하여 cDNA 라이브러리를 이용하여 유전적 스크리닝으로 캡사이신과 반응하여 전류를 발생하는 TRPV1 수용체를 발견하였다. 이 수용체와 캡사이신의 작용기전이 통증과 열전도의 공통 경로임을 밝혔으며, 이후 TRPM3, TRPA1 등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겨자, 마늘, 생강, 후추 등의 자극적인 맛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환경위해물질의 작용기전도 규명하여 이에 대한 차단방법도 개발해낼 수 있었다. 나아가서 생체가 뜨거움을 느끼는 반응계와 차가움을 느끼는 감각기전의 차이를 구별하고자, 시원한 느낌을 주는 박하(menthol)가 작용하는 유전자를 스크리닝하여 이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TRPM8수용체를 새롭게 찾아내었다. 이와 같이 생체가 덥고 춥고를 구분하고 통증을 느끼는 원리를 고추의 매운맛과 박하의 시원한 맛을 통하여 밝혀냈다는 사실은 이들의 천재적인 착상의 덕분이지만, 한편 이러한 맛에 보다 익숙했던 우리가 이를 나서서 해결하지 못하였던 점은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감각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숙제는 기계적 자극에 의한 촉감의 본질이었다. 비록 와우신경의 유모세포(hair cell)가 음파의 자극에 반응하여 전류를 발생하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 작용기전은 아직 미궁에 남아 있었다. 강한 압력에 의한 통증뿐 아니라 가벼운 접촉 특히 애무와 같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터치를 감지하는 반응체계에 대해서는 그 기전이 전혀 알려져 있지 못하고 있었다. 스크립스연구소의 아르뎀 파타포우티앤(Ardem Patapoutian) 박사는 물리적 자극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찾기 위하여 기계적 자극을 감지할 수 있는 Neuro2A라는 세포주를 대상으로 유전자발현패턴을 분석하여 72개의 대상유전자를 우선 선택한 다음, 이들 유전자를 하나씩 제거하는 방법으로 기존에 FAM38A라는 유전자가 기계적 자극에 따라 전류를 발생하는 본체임을 밝히고 이를 PIEZO1(piesi 그리스어 압력)라고 명명하였다. 이 유전자를 이입받은 세포들은 기계적 자극에 반응하여 전류를 발생함을 확인하였고 이와 유사한 구조의 PIEZO2도 추가로 발견하였다. PIEZO2는 부드러운 터치에 반응하고 생체의 자세를 유지하는 데도 중요한 감각수용체임이 밝혀졌다. 더욱 PIEZO 단백질은 내장의 미주신경 반사에도 관여함이 밝혀졌다. PIEZO2는 반사를 제어하여 호흡용량을 조절하고 동맥의 압반사(baroreflex)를 제어하여 혈압조절에도 관여하여 호흡과 혈액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위장관에서는 장관내 소화물질의 양에 따른 호르몬분비를 결정하고 요도나 방광의 조절에도 역할을 하며, 내피세포나 적혈구, 골아세포 등에서도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여 세포의 용량제어, 혈관생성, 뼈의 리모델링 등에 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온채널 형태의 PIEZO단백질들의 발견은 물리적인 기계적 감각의 분자적 원리를 이루어 신경과학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이 TRP와 PIEZO 채널은 각종 물리적 자극인 온도, 통증, 접촉, 진동 및 자기수용을 전달하여 생체가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며 이러한 시스템의 돌연변이가 다양한 질환을 유도하고 있음이 차례로 밝혀져서 의학적 응용의 길도 열리고 있다. 금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이 발견한 TRPV1, TRPM8과 PIEZO 채널들은 주변의 환경에서 초래되는 온도 및 기계적 스트레스를 감지하여 신경전도를 통하여 뇌로 전하여 변화를 인지하고 적응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들이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겪는 감각의 문제를 우리가 흔히 먹고 접하는 고추나 박하와 연관하여 해결해낸 아이디어는 착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착상을 끝까지 분자적으로 규명해내면 생명의 비밀들이 밝혀지고 널리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노벨상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노벨생리의학상에 '온도·압력 수용체 발견' 줄리어스·파타푸티언 (스톡홀름 AFP=연합뉴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가 4일(현지시간) 스톡홀름에서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이들의 사진과 연구 분야를 스크린에 비추고 있다. 데이비드 줄리어스(스크린 왼쪽 위 사진)와 아뎀 파타푸티언(오른쪽 위) 등 미국인 2명은 온도와 압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체내 수용체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상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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