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④다케우치 미유 "성장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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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1-09-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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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AKB48 활동 시절, 'K-POP 무대'에 감탄

  • 日서 한국은 '해외 진출 플랫폼'으로 통해

  • 한국 생활 3년 차, 자신감·주도적 태도 얻어

​7살. 한 놀이공원에서 열렸던 어린이 홍보모델 선발 행사, 그 순간부터 미유의 길은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끝없이 이어져왔다. 어린시절 아역배우를 거쳐, 일본 최고의 아이돌 중 하나인 AKB48에서 9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무대 위에서 보냈다.

나의 마음이 가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달리던 미유 앞에 어느날 한국이라는 선택지가 다가왔다. 일본과 한국의 기획사가 합작해서 만든 프로듀스48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타국의 무대에서 다시 평가를 받는 낯선 길이었다. 그러나 미유는 예전 7살 시절처럼 다시 도전했다.
 

위는 2004년 7세 당시 아역배우로 뮤직비디오에 처음 출연했던 다케우치 미유씨의 모습(오른쪽)과 아래는 2008년 당시 '후루츠(フルーツ)'로 활동했던 모습. [사진=유튜브 갈무리·트위터]


2018년 방영된 음악 프로그램 프로듀스48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가수 다케우치 미유씨를 지난 1일 아주경제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이제 한국 생활 3년 차에 접어든다. 현재는 소속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도 한동안은 한국에서 주로 음악생활을 해 나갈 예정이다. 자신의 음악으로 세계의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오래된 꿈. 그 꿈에 다다르는 가장 빠른 길은 한국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 생활 3년 차에 불과했지만, 인사를 건네는 미유씨의 한국어 발음은 꽤 정확했다. 사전 연락 단계에서 유창하지 않다고 했던 말이 지나친 겸손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역시나, 이후 2시간가량 인터뷰가 이어졌지만, 통역사가 끼어들어야 했던 순간은 많지 않았다. 난이도가 높은 표현들이 등장하면 종종 수정하고 설명해주었을 뿐이다. 활동 기간만 15년이 넘는 연예계 베테랑은 한국어로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설레는 눈빛과 함께 K-POP(케이팝)과 자신의 삶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연예인이지만, 사는 나라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는 땅이 바뀐다는 것은 언어와 문화, 주변의 사회적 관계가 송두리째 뒤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7살 어린 나이에 스스로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선택했던 그여서였을까? 선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늘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라는 부모님의 지지가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물론이다.
 

지난 1일 아주경제 본사에서 인터뷰 중인 다케우치 미유씨. [사진=유수민 기자(parasol@ajunews.com)]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인데, 왜 이렇게 잘할까, 왜 이렇게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유씨가 케이팝을 강렬하게 인지한 것은 2013년이다. 당시 해외 활동에 주력했던 소녀시대를 비롯한 여러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일본에서 화려하고 세련된 퍼포먼스로 인기를 끌었다. 이미 연예인으로 활동하던 미유씨에게도 이들의 무대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아이돌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춤은 물론이고 무대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노래 실력들은 당시 일본 여자 아이돌에게 요구되던 미덕과는 많이 달랐다. 미유씨가 활동하던 당시 여자 아이돌이 갖춰야 하는 가장 큰 장점은 '귀여움'과 '순진함'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춤을 잘 추는지는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당시의 인기는 실력보다도 애교나 캐릭터성에 초점을 맞추는 측면이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미유씨의 눈앞에 나타난 한국의 아이돌은 '완전히 다른 레벨'이었다. 미유씨는 "정말 '프로다운 무대'를 보면서 같은 아이돌로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시간 속에서 만난 것이 프로듀스48이었다. 실력을 중요시하는 한국에서라면, 성장하는 스스로를 어색해하지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아이돌 그룹인 AKB48로 활동했던 다케우치 미유씨의 모습. 왼쪽은 2014년 총선거 포스터, 오른쪽은 2019년 AKB48 졸업 후 동기 멤버였던 제9기생의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에 참석한 모습(앞줄 오른쪽 끝). [사진=AKS]

오히려 한국에 오기로 한 결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이제는 한국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해외 진출을 꿈꿔왔던 탓일까요?


미유씨에게 2018년은 여러모로 전환점이었다. 그해 6~8월 방영된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48에서 한·일 양국의 팬들은 미유씨를 완전히 재발견했다. 가창력과 피아노·기타·트럼펫 등의 기악 역량, 작·편곡 능력까지 갖춘 AKB48 내 '특이 케이스'였던 미유씨의 다재다능함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에 해당 경연에서 최고 순위 4위에 오를 만큼 양국에서 미유씨의 인지도는 대폭 상승했고, 이를 계기로 같은 해 9월 AKB48 생활의 '졸업'을 결심하고 이듬해인 2019년 3월에는 한국으로 건너왔다.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치열한 고민이 결국 그를 한국행으로 이끌었다. 미유씨는 AKB48 활동을 하면서 항상 다음 커리어를 생각해왔다고 설명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지금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이 일렁거렸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고민의 끈은 놓지 않았다.

매년 선발멤버를 뽑는 '총선거'가 이어지는 바쁜 일정에 치여 '아이돌 생활'이 아닌 다른 진로를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음에는 어떻게 솔로 활동을 해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할지 끝없이 고민해왔다.

하지만 AKB48 활동 이후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싶었던 의지도 강했다.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뿐 아니라 세계 무대에도 당당히 서고 싶었다. 특히 이 점에서 한국은 매력적인 무대였다. 한국의 체계적인 케이팝 시스템을 거치고 나서야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8년 프로듀스48에 출연한 다케우치 미유씨. [사진=유튜브 갈무리]

실제로 일본 아이돌계에서도 '해외 진출을 고민한다면, 일단 한국을 가라'고 얘기해요. 단지 저의 생각이 아니라, 동료들이나 산업 관계자들도 모두 같은 조언을 해요. 인터넷 여론에서조차 '일본에서만 활동하면, 미국과 아시아 등 해외 진출이 어렵다'고 많이 얘기할 정도예요.

일본 대중음악(J-POP·제이팝) 산업계에서 이제 케이팝은 '해외 진출을 위한 플랫폼'으로 통용된다는 말이었다. 2000년대 전후 일본 역시 자국의 음악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유통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노하우 자체가 상당 부분 끊긴 상황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각국의 음악시장 규모를 집계한 '글로벌 음악 보고서(Global Music Report)'를 발간하기 시작한 2002년 이래 현재까지 일본은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은 '부동의 2위 시장'이다. 따라서 자국의 시장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내는 제이팝은 일본 내부의 수요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반면 최근 케이팝에 대한 일본 내 대표적인 평가는 해외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케이팝이 제이팝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자국의 음악 스타일과 이질감 없이 '흔히(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면, 이제는 진출 지역이 다변화하면서 각국의 팬들을 겨냥한 '혼종의 음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양국의 대중음악 산업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일본인 미유씨가 한국에서 성장한 것처럼, 케이팝의 약진에 제이팝도 자극을 받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아이돌의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여성 아이돌에 대한 시각이나 처우도 이전보다 개선되고 있다고 미유씨는 설명했다. 최근 AKB48 후배들의 무대 동영상을 보고 예전과는 다른 '퍼포먼스'에 놀랐다고도 덧붙였다.

일본과 한국(의 음악)은 각자의 장점이 있는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사이도 더욱 좋아지면 좋겠어요.

'월간 윤종신' 2021년 2월호에서 다카우치 미유씨가 발표한 곡인 '왠지 그럼 안될 것 같아'의 커버 사진. [사진=미스틱엔터테인먼트]

케이팝으로 저의 세계는 더 넓어졌고, 저의 꿈에도 한발 더 다가갔어요. 시야도 넓어졌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됐어요.

미유씨는 2년 6개월여간의 한국 생활 동안 만났던 케이팝이 자신의 꿈을 다듬고 정확하게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케이팝 시스템' 속에서 노래와 춤, 연기를 체계적으로 트레이닝받으며 실력도 늘었고, 꿈을 향해 현실적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아티스트로 성장해가는 만큼 일본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부담감이 생겼다고도 털어놨다.

"한국에서는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고 에너지도 더 많이 쏟아야 했어요. 처음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놀라기도 했죠. 일본에서는 소속사와 계약하면 바로 데뷔하는 측면이 강했다면, 한국에서는 이미 데뷔를 했더라도 어떤 활동을 하기 위해선 연습 기간이 필요하고 노력과 시간이 훨씬 더 필요했어요."

노력했던 만큼 성취감과 기쁨도 컸다. 미유씨는 많은 연습 끝에 자신의 실력을 믿고 무대에 서서 음악을 공개하며 '됐다! 좋은 작품이 생겼다, 이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를 한국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이제는 스스로 좋아하는 음악, 하고 싶은 음악도 생겼다. '나의 음악'을 더 잘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생겼다. 자기에게 맞는 음악과 색깔이 있고 또 그런 음악을 할 때 '롱런'할 수 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간의 한국 생활과 성장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초반에는 외롭기도 했다. 혼자서 '어디까지 외로워지는 것이냐'하고 중얼대며 자기와의 대화를 할 때도 있었다. 한·일 양국 관계가 냉각하고 코로나19 사태도 터지면서 계획했던 대로 활동이 풀리지 않을 때면, 무작정 한국으로 건너왔던 자신의 선택에 고민이 부족했었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미유씨는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자신의 모습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자신감이나 실력에 대한 믿음이 많이 없었을 것이라며 이제 '1막'이 지난 한국 생활을 돌아봤다.

물론 한국 생활이 처음에는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정말 제 자신도 신기할 정도로 외로움도 느끼지 않게 됐어요. 무엇이든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태도를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 해외에서 활동할 때도 이 시기에 배웠던 것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난 1일 아주경제 본사에서 인터뷰 중인 다케우치 미유씨. [사진=유수민 기자(parasol@ajunews.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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