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카바디 이장군이 인도의 BTS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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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1-09-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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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와 피구, 격투기가 혼합된 형태의 경기인 카바디. 공이 없는 럭비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인도에서는 큰 인기가 있는 종목이다. 한국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라 2018년 아시안게임에 참가했을 때 단체복을 지원 받지 못해 개인사비로 단체복을 사서 시상대에 올라 비인기 종목으로서의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
카바디 이장군 선수는 연봉 300만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억대 연봉을 받는 카바디의 슈퍼스타 코리안 킹이도 하다. 그런 그가 인도에서는 BTS로 불리며 누구나 알아볼 정도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와 인도의 BTS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이장군 선수 제공/ 인도의 BTS라고 불리는 카바디 이장군 선수]


Q. 카바디는 어떤 종목인가요?

A. 단체 투기종목인데 럭비, 격투기, 레슬링이 혼합된 종합스포츠예요. 럭비와 비슷한데 공이 없는 럭비예요.

Q. 카바디를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됐나요?

A. 체대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운동하던 곳에 카바디 국가대표팀과 상비군 팀이 훈련을 하러 오면서 알게 됐어요. 당시 국가대표 코치님이 제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체격조건이나 여러 가지가 카바디와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셔서 추천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카바디를 알게 되고 처음에는 카바디가 뭔지 몰라서 안하려고 했는데 “와서 구경이라도 해봐라 정말 재밌는 스포츠다”라고 해서 구경을 하다가 완전 빠지게 돼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Q. 그전에는 어떤 걸 하려고 했었나요?

A. 원래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선수를 하려고 했었는데 형편이 안 좋아서 못했거든요. 그래서 운동선수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잠깐 조정 선수를 했었어요.

Q. 우리나라에서 10대 카바디 선수도 있나요?

A. 지금은 많지 않지만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Q. 지금의 팀을 꾸리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A. 카바디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어요. 그러면서 협회가 생겼는데 처음에는 동아리 활동처럼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계속 이어지면서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처음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하게 됐어요.

Q. 인도의 BTS라고 불리는데요. 어느 정도 인기인가요?

A. 2016~2017년쯤에 처음으로 외국인 용병선수로서 인기를 얻다 보니까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생김새도 다르다 보니까 더 관심도 많아지고 팬들도 생겼는데 아무래도 그때는 인도에서 BTS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된 것 같아요.

Q. 지금은 어느정도 인기가 있나요?

A. 인도공항에 도착하면 다 알아볼 정도예요.

 

[사진= 이장군 선수 제공]



Q. 한국에도 인도인들이 많이 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인도 분들이 한국에 여행을 왔는데 지나가다가 저를 알아보고 “저 사람 이장군 아니냐”면서 속닥거린 적도 있었고 인도에 계신 한인 분들이 연락와서 인도에 계신 친구들이 저를 알면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적도 있어요.

Q. 지금 자신의 위치를 어디라고 느끼세요?

A. 최고라고 할 수는 없고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야 되기도 하기 때문에 제 위치를 말하기는 조금 그렇네요(웃음).

Q. 경제적 보상은 충분히 받았나요?

A. 보상을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저희가 카바디를 좋아하고 국위선양을 위해서 열심히 했는데 열약했던 부분들이 조금은 좋아진 것 같아요.

Q. 이장군 선수가 꼽는 카바디 종목의 꽃은 뭔가요?

A. 단체투기 종목이고 유일하게 손을 잡고 하는 스포츠에요. 근데 단체종목과 개인종목이 혼합된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게 공격을 할 때는 공격수가 혼자 넘어가서 개인종목처럼 상태팀을 터치하고 돌아와야 되기 때문에 제 개인능력을 발휘해서 하는 거예요. 근데 수비를 할 때는 팀원들과 호흡을 맞춰서 손을 잡고 다같이 잡아내는 거라서 단체종목의 매력도 있고 개인종목의 매력도 있어요.

Q. 이장군 선수에게 동료란 어떤 존재인가요?

A. 개인종목이 아닌 단체종목이기 때문에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지만 제가 잘해서 딴 것도 아니고 형들이나 동생들, 선후배들이 다함께 목표와 꿈을 가지고 했기 때문에 거의 가족이죠. 10년 넘게 가족보다 오래지내면서 봐왔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Q, 비인기 종목으로서의 서러움이 있었다면 뭐가 있나요?

A.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까 아시안게임이나 국제대회에 나가도 많은 분들이 못 알아봐주고 택시를 탔을 때도 기사 분들이 “운동하시나봐요”라고 하면서 무슨 종목하냐고 여쭤보면 카바디라고 하는데 아무도 몰라주니까 마음이 아프죠, 설명도 해드리고 하지만 아예 모르다 보니까 이해를 잘 못하세요. 다른 비인기종목들은 말을 하면 어떤 종목인지는 아는데 카바디는 아예 처음 듣는 단어이고 종목이라서 처음부터 설명을 해야 돼서 아쉬워요.

 

[사진= 이장군 선수 제공]



Q.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근대5종도 동메달을 따면서 많은 분들이 알게 됐는데 근대5종을 남다르게 봤을 것 같아요.

A. 근대5종 국가대표 중에 김세희라는 선수가 있는데 자카르타아시안게임을 출전하면서 같은 부산 출신이라서 알게 됐어요. 그 전까지 근대5종이라는 종목은 알고 있었지만 근대5종에 5가지 종목에 뭐가 있는지 자세하게는 몰랐거든요. 김세희 선수랑 얘기를 하면서 많이 알게 됐고 올림픽 보면서도 관심 있게 챙겨봤었어요.

Q. 카바디를 알리기 위해 진심이 된 계기가 있나요?

A. 아시안게임 때 메달까지 땄는데 그때 잠시 주목을 얻었어요. 근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나니까 불이 꺼지더라고요.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건데 저희들은 워낙 인기가 없다 보니까, 선수들이 직접 고등학교나 대학교 다니면서 카바디를 알려주거든요. 근데 운이 좋게 예능프로에 출연하게 돼서 카바디라는 종목을 더 알리고 싶었어요.

Q. 사람들이 이장군 선수에게 가장 많이 묻는 건 뭔가요?

A. 아무래도 카바디라는 종목을 몰랐다, 이런 재밌는 종목이 있었는데 몰라서 미안하다는 연락도 많이 받았었어요. 가족이나 지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데 예능출연 이후에 응원하고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연락이 많이 왔어요.

Q. 카바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A. 예능출연 이후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됐는데 방송 출연을 통해서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희는 운동선수 이기 때문에 카바디 선수로서 대회에 출전해서 더 좋은 성적을 통해 국위선양을 하는 게 국민들에게 더 알릴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Q. 스스로 느끼기에 운동선수에게 있어서 재능보다 더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중요한 건 재능이긴 하지만 재능을 더 살리고 재능을 이기기 위한 건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느 지점에서 멈출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노력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서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Q.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A. 카바디가 실업팀이 없기 때문에 상비군 훈련을 할 때만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상비군 훈련 외에는 다른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트레이너를 하면서 회원들에게 운동 알려주고 남는 시간에 제 개인운동 하면서 보내고 있어요.

Q. 만약 다른 종목을 하게 된다면 뭘 하고 싶나요?

A. 투기종목 쪽으로 해볼 것 같아요. 몸을 쓰는 운동을 많이 했고 신체조건이 투기종목과 잘 맞을 것 같아서 유도나 축구, 야구 쪽으로 도전을 하고 싶어요.

Q. 이긴다는 건 뭔가요?

A. 운동선수로서 경쟁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긴다는 건 기분 좋은 말이죠.

Q. 그렇다면 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다른 선수 분들은 졌지만 후회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저는 준비했던 걸 다 쏟아 부어도 지면 아쉽더라고요. ‘그 순간에 이렇게 해볼 걸’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좋은 발걸음인 것 같아요.

 

[사진= 이장군 선수 제공]


Q.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나요?

A.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하면서 인도나 이란 같이 강한 팀에 선수들이 기죽어 있었어요. 근데 저는 그걸 깨주고 싶어서 잘하는 팀과 할 때는 겁도 났지만 잘 하는 팀이 아니라고 반대로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프로에 진출했을 때는 대한민국도 대표하고 동아시아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일본이나 대만 선수들한테 연락 와서 응원도 받으면서 용기도 얻고 책임감을 가지면서 더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제가 가치가 올라가야 동아시아나 우리나라의 가치도 올라간다는 마음으로 했어요.

Q. 인도 친구들도 많을텐데 언어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A. 인도는 힌디어를 써서 공부를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렵더라고요. 근데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다 보니까 몇 선수들 말고는 영어가 돼서 영어공부를 해서 기본적인 소통은 영어로 했어요.

Q. 포기하고 싶은 땐 어떻게 추스렸나요?

A. 경기가 잘 안되거나 제가 원하는대로 안됐을 때보다는 부상이 큰 것 같아요.
경기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면 빨리 회복을 해서 기량을 보여줘야 되는데 마음처럼 안 되잖아요. 급하게 하다 보면 더 심하게 다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많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들이 그런 슬럼프가 온다고 생각하면서 유명한 선수들의 슬럼프 극복방법들을 찾아보면서 힘을 얻고 버텼어요.

Q.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나요?

A. 저는 어려서부터 운동하고 뛰어다니는 걸 좋아해서 새벽부터 공차고 학교가고 등교했던 기억이 많아요.

Q. 카바디로 인생반전을 겪어보니 어떤가요?

A. 이렇게 될 줄 알고 시작한 게 아닌데 저를 통해서 카바디를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 해왔어요.

Q. 요즘 꿈은 뭔가요?

A. 가장 가까운 꿈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하는 거고 더 나아가서 카바디를 더 알리고 발전시켜서 모든 국민들이 카바디를 했으면 좋겠어요. 카바디 팀도 생겨서 후배들도 열심히 선수생활을 하고 있지만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잘하는 선수들도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열심히 해서 널리 알려서 선수생활 끝나고도 코치나 감독 같이 미래가 확실시 되는 종목으로 만드는 게 제 목표이고 꿈이에요.

 

[사진= 이장군 선수 제공]


Q. 50대 셀러리맨이 양복을 입고 들어왔어요. 그에게 카바디의 기쁨을 어떻게 가르쳐줄건가요?

A. 카바디라는 종목을 알려주면서 카바디의 매력을 느끼고 카바디에 빠질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꾸준히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카바디라는 아무도 모르는 종목을 시작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많았거든요. 근데 저는 행복은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래도 중요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더 행복하더라고요. 지금 헬스트레이너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지만 엄청 행복하다는 마음은 못 느끼고 있는데 카바디를 할 때는 급여는 적지만 제가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으면 좋겠고 불투명한 미래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끝까지 도전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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