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추석 연휴기간 해외 출장길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향후 3년간 240조원 투자 및 4만명 직접 고용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한 첫 현장 행보가 이뤄질지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 가석방 출소 이후 별도의 대외 활동 없이 삼성전자의 미래 전략을 조용히 챙기는 '물밑 경영'을 계속해 왔다. 출소 이후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관련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사실상 유일한 대외 행보다. 재판 외에는 지난 26일 오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고(故)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조문차 빈소인 서울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한 것이 전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취업제한' 논란에 240조원 역대급 투자 계획 발표에도 이름 빼
이 부회장이 이처럼 '칩거'를 방불케 하는 경영을 하는 데는 가석방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과 취업제한 규제 속에서도 실질적으로 경영을 하는 점이 위법이라는 목소리를 의식한 결과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 부회장에 대해 "무보수, 비상임, 미등기 상태라 취업이라 볼 수 없다'라는 판단을 내렸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 장관을 두고 '궤변'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이를 의식한 듯 삼성전자는 지난 24일 '코로나19 이후 미래 준비, 240조원 투자·4만명 고용'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이 부회장의 이름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단일 기업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 계획인 만큼 이 부회장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발표지만, '취업제한' 논란을 상당히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언한 총수가 이를 직접 챙기려면 현장 경영을 계속 미룰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크다. 24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안전판'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 산업으로, 한번 경쟁력을 잃으면 재기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삼성의 공격적 투자는 사실상 '생존 전략'이다"라고 언급한 것만 봐도 그렇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 관련 재판이 휴정하는 추석 연휴가 국내 현장 경영 또는 해외 출장에 나설 최적의 시기로 본다. 실제 이 부회장은 과거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할 당시, 추석과 설 명절 연휴 기간 해외 출장길에 오르곤 했다. 

2016년 설에는 미국 출장길에 올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만났고, 그해 추석에는 인도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독대했다. 지난 2019년 설 연휴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추석에는 삼성물산이 건설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도심 지하철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지난해 설에는 브라질을 방문해 중남미 가전사업을 점검했고 그해 추석 직후 일주일간 유럽을 방문해 반도체 극자외선(EUV) 장비 제조업체 ASML 본사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살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왼쪽부터 ASML 관계자,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이 부회장. 2020.10.13. [사진=삼성전자 제공]

 
해외출장길, 미국 '파운드리' 유력...중국 '낸드플래시' 공장 점검 가능성도
재계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이 해외 출장길에 오른다면 가장 유력한 나라로 미국을 꼽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로 미국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2공장 투자 계획을 공언한 상태다. 하지만 구체적인 투자 계획과 공장부지 선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 부회장이 총수로서 최종 후보지를 결정하고, 현지 주정부 관계자들과 만남을 통해 향후 투자계획을 구체화할 가능성이 짙다. 또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로나19 백신 위탁을 맡은 모더나사 관계자들을 만나, 백신 국내 수급 문제 등을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SDI가 진출을 예고한 미국 배터리셀 공장 건립을 위한 행보도 예견된다.

일각에서는 중국 시안을 방문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번 추석 연휴가 상대적으로 짧고, 9월 23일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이 부회장이 미국까지 가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중국 시안에는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공장이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1위지만, 최근 업계 3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2위 일본 키옥시아 인수를 추진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다.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플래시 부문 인수를 공언한 상태에서 중국의 반대가 있는 터라, 삼성이 중국 관계자들을 만나 어떤 의견을 교환할지도 관심사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급격하게 체중이 빠지고 정기적으로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상황이라, 예전만큼 장기간 해외 출장을 소화할 여력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반도체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계속 현장 행보를 미룰 수도 없어 조만간 출장길에 오를 가능성은 커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가석방으로 보호관찰 대상인 이 부회장은 법무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해외 출장 등 장기적인 대외 행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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