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한중외교 서른 즈음에..왜 이리 '형식적 동반자'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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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
입력 2021-08-26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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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외교대교수, HK+국가전략사업단


한·중 양국이 40년에 걸친 반목을 청산하고 역사적인 수교를 단행한 지 24일로 29주년을 맞았다. 북한의 존재라는 한반도 특수 상황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세계 외교의 기적’으로 불리며 표면적으로는 ‘유사 이래 최고의 관계’를 구가했다. 그러나 결국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갈등이 폭발했고, 이는 그동안 경제가 우선이고 민감한 정치·안보 이슈는 이견으로 남겨 두면서 발전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 방식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 수사적으로는 양국 외교관계는 최고의 단계다. '우호 협력관계'에서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 관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거쳐 2008년에는 양자관계 이외의 논의도 공유하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중국 외교에서 역사적 맥락을 지닌 혈맹 관계와 전통 우호 관계를 제외하고 최고 단계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1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드로 촉발된 갈등과 아픔도 치유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수사(修辭)'에 그치고 있다.

올 초 양국 정상은 전화 통화를 갖고 경색된 양국 관계를 풀기 위해 올해와 내년을 ‘한·중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하고 지난 30년을 결산하고 미래 30년의 발전 청사진을 제시할 ‘한·중 미래 발전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미래를 논의하고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은 좋지만 지난 부분에 대한 반성과 공감대가 없으면 이 역시 형식적인 이벤트와 옥상옥(屋上屋)이 되기 십상이다. 수교 30년의 문턱에 있지만 논어에 나오는 ‘삼십에 이르러, 비로소 어떠한 일에도 움직이지 않는 신념이 서게 되었다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 무색하다.
양국은 여전히 사드 갈등의 후폭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계속 자신들의 입장을 강변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경제적 중요성’과 ‘대북 영향력’을 고려해 중국의 선처를 바라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중 관계에는 양자관계를 초월하는 복합요소가 있다. 역사적 요소가 있지만 중국의 한국에 대한 주종(主從)의식 확대와 중국의 대외전략 변화 양상, 한·미 동맹관계와 한·중 협력관계의 차별성, 중·북의 특수 관계 및 북핵 인식과 남북 관계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는 이러한 복합요소들을 여하히 인식하고 처리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

사실 양국 교류가 수치적으로는 상당한 성과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25개의 정부 간 협의체가 구동되고 있으며 무려 115개의 정부 간 조약·협정 합의서가 있고, 50여 차례 정상회담과 40여 차례 정상급 회담 및 130여 차례의 외교장관 회담을 거행했다. 수 많은 민간단체들에 의해 거의 전 분야에 걸친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222개의 자매도시와 444개의 우호도시가 지방 교류에 열심이다. 당연히 문제도 발생한다. 양국의 최대 난제는 문제의 발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사이 정치·외교적 문제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민간이나 비정치 분야까지 영향을 미쳐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사드 갈등 관리에 실패하고, 6·25 역사 인식과 김치·한복 등에 대한 문화 원조 논쟁이 촉발되면서 한국의 부정적 대중 인식이 고착되는 상황이다. 국제적으로도 대중 비호감도가 급상승하고 있지만,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5년 새 한국인들의 적대감이 16.1%에서 40.1%로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반면 호감도는 50%에서 20.4%로 가장 크게 떨어진 나라였다. 중국도 한국이 중국에 협조하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부각해 민간에 애국주의를 투영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양국 관계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교 30년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상호 갈등 관리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했고 여전히 고민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명한 갈등이 존재함에도 중국 정부는 선문답만 반복하고, 한국 정부는 중국과의 암묵적 합의 하에 의도적 회피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제 양국은 양적 교류보다는 실질적 교류를 도모해야 한다. 양국 정부가 강조하듯이 서로가 중요한 국가라면 정부든 민간이든 양국의 현상과 현실을 직시하고, 한·중 간 마찰과 갈등은 최소화하고 상호이익은 극대화하는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외교의 영역도 다원화·확대되고 있다. 21세기의 주요 외교력은 문화외교(Cultural Diplomacy)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전통적인 하드 파워(Hard Power) 중심의 정무와 경제외교만으로는 더 이상 일국의 외교력을 극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문화와 가치 및 제도 그리고 인적자산 등을 기반으로 ‘강제나 보상’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능력으로 정의한 바 있다. 한·중 양국의 제도적 가치는 다르지만 양국 국민 사이의 문화 교류와 소통 확대를 통한 이해 증진, 우호적 정서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공외교가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양국 정부는 역사·문화의 정치화 방지와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소통관리 시스템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정치적 실적을 염두에 둔 자기 희망적인 대중 관계를 지양해야 하지만, 중국 지도부도 지나치게 자의적인 역사 인식 및 애국주의 역사 교육과 일방적 중국 입장 강조는 미래지향적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노골적 반중(反中) 전선에 있지 않은 세계 10위의 경제·문화 강국이다. 유구한 문화 전통을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는 한국에 대한 존중이 양국 관계 미래 30년의 시금석이 되길 기대한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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