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집값 상승의 축배, 모두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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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1-08-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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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인덕원이 20억원인데 서울에 20억원도 안되는 지역이 수두룩해요. ○○동은 아직 너무 싸네요. 더 올라야 돼요."(송파구 커뮤니티)

최근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넋두리다. 하루에 4000~5000개 이상의 글이 올라오는 이 커뮤니티에는 "우리 지역은 딴 지역에 비해 너무 저평가됐다"는 고민이 대부분이다. "○○동은 11억에 실거래됐답니다. 우리도 기대합니다", "(우리동은) 딴 데 비하면 덜 올랐죠. 저는 아직 배고프네요^^" 등 서로의 집값 상승을 독려하고, 실거래가 상승을 축하하는 글들도 많다.

집값 상승을 염원하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는 연말이면 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3기 신도시, 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 등 정부의 공급 시그널을 시장이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는 금리, 집값 기대심리, 가구소득, 공급물량, 정비업계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도 시장 참여자들은 집값 하락보다는 상승에 더 배팅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주택공급 수치도 연일 감소세다. 현 정부 출범인 2017년 후 지난 5월까지 서울 주택 인허가 실적은 약 30만호로 4년 전과 비교해 10% 가까이 감소했다. 인허가 후 준공까지 통상 3~4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2025년까지는 서울에 안정적인 공급이 요원하다는 얘기다. 올 상반기만 해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이미 지난 1년간의 상승률을 추월했고, 업계에선 추석을 기점으로 가격이 또 한 번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집값 상승의 급행 열차를 탔다는 유주택자들은 과연 행복할까. 현실을 돌아보면 의외로 '승자의 축배'를 저주하는 집주인들이 많다. 이동의 자유와 가처분소득이 줄어 삶의 질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사라졌다는 이가 대부분이다. 강남에 사는 한 지인은 "딸아이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자기 방'을 선물해주기로 했는데 이 동네 전체가 2년 만에 10억이 올랐다"면서 "집을 넓히려면 동네 수준을 5단계는 낮춰야 하는데 그럼 이사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남편 월급 100%는 은행 몫"이라며 "한달에 2~3번 하는 외식을 한 번으로 줄였는데도 살기가 너무 버겁다"고 했다. 

무주택자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분양가는 상승을 거듭하고 있으며, '나도 행운의 주인공이 될 지 모른다'는 '반값 아파트' 희망도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시세에 짜맞춰진 각본이기 때문이다. 대출문턱에 막혀 오피스텔 분양을 알아보던 지인은 "작년에 강남에서 나온 전용 45㎡ 오피스텔 분양가가 15억원이었는데, 올해는 강동이 15억원"이라며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집 없는 설움도 설움이지만 한 차례 급락한 비트코인과 주식처럼 부동산 가격도 언젠가 꺼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정부가 공시지가 인상이라는 카드로 뭉개버렸기 때문이다. 공시지가는 주택 가격의 하방경직성으로 작용하는데, 정부는 앞으로 공시지가를 시세의 90%까지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공시가격은 재산세 등 종부세를 비롯해 기초연금, 건보료 등 무려 60여개의 세금과 연동된다. 집값 상승, 모두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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