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선의 중국보고] 중국식 술자리의 '첸구이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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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선 중국본부 팀장
입력 2021-08-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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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게임의 조합 酒局…갑을관계 드러나는 '권력게임'

  • 알리바바 女직원 성폭행 사건…술자리 관행 퇴출 목소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편집자주> 보고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See’ 보다, ‘Report’ 보고서, 그리고 ‘Treasure’ 보물창고(寶庫)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매일같이 정치·경제·사회·문화·과학 등 다방면에서 중국 관련 소식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를 직접 보고 경험하고, 보물처럼 소중히 보관하고,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중국보고’라는 코너를 연재해 중국 주요 소식들을 알기 쉽게 전할 계획입니다.


주국(酒局). 중국인들이 '술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술을 뜻하는 '주(酒)'라는 한자에 국면을 뜻하는 '국(局)'이라는 한자를 합친 단어다. 국은 바둑이나 장기에서 '판'을 뜻한다. 바둑에서는 게임 한 판, 두 판을 1국, 2국이라 부른다. 국에는 게임의 의미가 담겼다. 술과 게임의 조합이 바로 술자리다.

실제 중국 역사에는 술자리에서 수많은 게임(모략)이 이뤄졌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술자리, 홍문연(鴻門宴)이 그 예다. 홍문연은 진(秦)나라 말기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을 제거하기 위해 벌인 음모와 살기가 가득 찬 술자리였다. 결국 유방은 성공적으로 탈출했고, 이는 항우와 유방의 운명을 바꾼 세기의 술자리가 됐다.

술자리에서 게임을 벌이는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중국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술자리에선 '통제의 게임', ‘권력의 게임’이 이뤄지기 쉽다. 여기서 술은 권력을 과시하는 게임 도구다. 벌주(罰酒, 벌칙주), 경주(敬酒, 술 권하기), 관주(灌酒, 억지로 술 먹이기) 등의 행위를 통해 갑을 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 "술을 안 마시면 상사에 대한 불복종이다”, "술을 마셔야 계약이 성사된다”, “여성(남성)이 있어야 술맛이 난다”는 등의 듣기 거북한 말이 오고 간다. 

최근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한 여직원이 출장 중 술자리에서 강제로 술을 마셔 만취한 상태로 고객과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으로 중국 대륙이 발칵 뒤집혔다. 더군다나 알리바바그룹에선 이 문제를 덮으려 하다가 피해 여직원이 온라인에 글을 올려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알리바바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서는 술자리의 잘못된 첸구이쩌(潛規則, 관행)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율검사위원회까지 나서서 술자리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당 기율위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윗사람의 체면을 깎고, 규칙을 무시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왕따 당하거나 앞날에 영향을 미치는 걸 막기 위해 많은 사람이 굴복할 수밖에 없다”며 술자리의 잘못된 관행을 낱낱이 꼬집었다. 그러면서 술자리에서 비즈니스를 논하고, 먹고 마셔야 친해진다는 등의 관행은 온정주의 문화 찌꺼기라고 비난했다. 이런 것이 암암리에 쌓여 결국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겁 없이 날뛰며 법치, 도덕, 인성의 마지노선을 무너뜨린다고도 경고했다.

비단 중국 술자리만의 문제는 아닐 터. 음주 문화에 '관대'한 우리나라도 이번 알리바바 사태에서 깨닫는 교훈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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