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코로나 이후 글로벌 격차, '백신주권'이 가른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상철 동서울대 교수,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21-08-11 20:4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 글로벌 중심축 태평양에서 다시 대서양으로, 격차 벌어지면 헤어날 길 없어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델타, 람다 등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팬데믹의 끝이 다시 묘연해지고 있다. 다소 섣부르긴 하지만 이미 예고된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가 점점 현실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비난이 거세긴 하지만 백신을 세 번 이상 맞는 부스터샷까지 등장한다. 백신 접종과 관련한 부익부 빈익빈, 즉 ‘백신 디바이드(격차)’가 더욱 기승을 부릴 태세다. 한편으론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라면서 불평불만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일상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합리적인 선택인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된다.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기보다는 양날이 동시에 작동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나마 백신 접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들에 국한된 현상이다. 백신 접근이 어려운 국가들에게는 이마저도 사치스러운 이야기로만 들린다. 결국은 포스트 코로나로 꿈틀거리고 있는 미래 먹거리 시장에서 백신 접근에 수월한 선진국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전 국민 50% 이상 1차 접종을 완료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경제를 더는 위축시키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오로지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에 올인한다. 이를 통해 지속해서 감염률과 치명률을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일상에 대한 통제가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는 분위기다. 정답은 없지만 지난 1년 반 동안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민심도 흉흉해지고 있다. 특히 백신이 희귀한 국가일수록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지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마저 감돈다. 상당수 아시아 국가들에서 보이는 ‘정치 방역’ 구설수다. 금지·단속 위주의 방역에 치중하다 보니 국민의 인내가 한계점에 달한다. 장기 독재나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들이 코로나를 오히려 정치로 악용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촌극이다. 두드러지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다. 중국 정부는 초기 단계부터 ‘가짜 뉴스’ 단속을 빌미로 관계 기관을 총동원하여 여론을 통제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고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 다수 아시아 국가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에 대한 압박이 도미노처럼 번진다.

코로나 발생 이전만 하더라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면서 나온 시나리오다. 그러나 팬데믹을 극복해 나오는 과정에서 양극화의 심화로 생겨난 ‘코로나 디바이드’가 국가나 지역 간의 힘의 이동으로 옮겨붙는 중이다. 힘의 기울기가 다시 반전되고 있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불거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탄소중립 관련 이슈도 대서양 국가들이 선점하면서 이니셔티브를 확보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굵직한 뉴노멀에 대한 기준(글로벌 스탠더드)을 서방 선진국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의 가치사슬 재편이 예고되면서 코로나 이전에 아시아 국가들이 확보했던 영향력이 급속히 상실되고 있다.

현상을 간파하고 망하는 줄이 아닌 흥하는 줄에 서는 통찰력과 지혜, 리더십 복원 필요

현재 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대서양 연안 국가들보다 밀리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비롯되고 있는 정치적 위기가 결정적 원인이다. 특히 중국·일본·한국 등 이 지역을 선도하는 국가들에서 리더십의 약화가 현저하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더 공고히 하면서 자본주의 색채를 빼는 데 열을 올린다. 민간 기업에 대한 당의 통제가 강화되는 소위 ‘변이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중국 경제의 장래에 대해 우려하는 차이나 리스크가 다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은 마무리했지만, 국론 분열로 갈팡질팡한다. 한국도 대선 정국에 돌입하면서 연이은 정치 포퓰리즘으로 정국이 갈수록 혼란스럽다. 동남아 국가는 물론이고 견고하던 인도의 모디 정권까지 방역 실패로 흔들리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다시 똘똘 뭉친다.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키기 위해 감추었던 국가 이기주의의 발톱을 내민다. EU는 탄소국경세를 꺼내들었고, 미국은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미국이나 유럽에 물건을 팔려면 수출이 아닌 자국 영토에 들어와 공장을 지으라는 압박인 셈이다. 이는 글로벌 공급기지로 수출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들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이다. 동맹은 끌어안되 대척점에 있는 국가들은 밀어내겠다는 계산이다. 독일 출신으로 ‘히든 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 신봉자인 헤로만 지먼이 최근 언급한 “수출로 먹고사는 시대가 코로나 이후에 끝난다”는 예언이 적중할 수도 있는 판세가 만들어지고 있다.

여하튼 코로나라는 팬데믹으로 글로벌 지형이 다시 전환되고 있음을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기존의 ‘코로나 디바이드’와 ‘백신 디바이드’가 ‘포스트 코로나 디바이드(Post-Corona Divide)’로 연결되는 조짐을 감지해야 한다. 당분간 격차를 벌리려는 자와 줄이려는 자의 피 말리는 사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이 경쟁에서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다. 자칫하다가는 후미에 뒤처져 남의 꽁무니를 쫓아가야 할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는 판세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유사한 형태의 방역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백신 확보도 오락가락한다. 백신을 우선하여 챙겨야 하고, 이른 시일 안에 백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망하는 줄이 아닌 흥하는 줄에 서는 통찰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학교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