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거리두기 4단계 한 달···“정부도 밉고, 하늘도 무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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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입력 2021-08-0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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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12일부터 수도권 4단계 25일째, "자영업자는 여전히 긴 터널 속"

  • 대형마트, 백화점 등도 코로나 확진에 '시름'

  • 정부, 6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할지 고심

5일 서울 광화문 인근의 설렁탕집 입구에 '코로나 장기화로 한시적으로 점심만 영업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조재형 기자 grind@]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던데, 지금 같아선 어두컴컴한 터널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정부도 밉고, 하늘도 너무 무심하네요.”

5일 오전 11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손칼국수 장사를 하는 김석중 대표(59)는 현관문 앞 카운터에 걸터 앉아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평소 같으면 점심 손님을 위한 재료 준비에 한창일 시간이지만 벌써 한 달 가까이 발길이 뚝 끊겼다.

20년간 장사하며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는 김 대표는 작년 1월 코로나19가 창궐하며 가족처럼 일했던 주방 식구를 3명이나 내보냈고, 올해 들어 또 2명을 떠나보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달 12일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한 지 25일이 흘렀다.

한 달 가까이 봉쇄에 가까운 방역 조치를 했지만 코로나 확산세는 좀처럼 잡힐 기미가 없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776명 발생해 누적 확진자 수는 20만5702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하루 확진자는 지난달 7일(1212명)부터 30일째 네 자릿수를 이어갔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라지만 한 달째 이어지는 거리두기 4단계 조치에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곡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일부 보상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이날 강서구와 여의도, 종로구, 마포구 등 식당가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하나같이 정부의 거리두기 조치에 분통을 터트렸다.

7월 초 ‘델타 변이’ 등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해진 것을 간파하지 못하고 거리두기 완화라는 성급한 메시지를 준 게 재확산의 불씨가 됐다는 얘기다. 

실제 힘겹게 버티고 있던 자영업자들도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돌아온 건 ‘4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마포구 홍대 젊음의 거리에서 10년간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순자 대표(64)는 “나라에서 '거리두기 완화'라는 헛된 꿈을 꾸게 해놓고, 한 달 동안 저녁 손님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니 억울할 따름”이라며 “지난주부터는 저녁 장사를 접고 점심 장사만 간간이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5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고깃집이 긴 여름휴가를 떠났다. 자영업자들은 한달 가까이 점심 장사는 물론 저녁 손님까지 뚝 끊겨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조치를 완화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이재훈 기자 yes@]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2~3주 정도 가게 문을 닫고 장기 휴가를 떠난 곳도 적지 않았다.

종로구에서 설렁탕 장사를 하는 김주성 대표(63)는 “인건비 낼 돈도 없고, 장사도 안돼서 3주간 가게 문을 닫았다”며 “다음주는 풀리려나 해서 문을 열고 있는데, 지금 같아선 그마저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참다 못한 자영업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단체 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적용 이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1인 차량시위를 벌였고, 이를 막는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재인 비대위 대변인은 “거리두기 강화를 통한 코로나 방역은 자영업자만 죽이는 실패한 정책”이라며 “치명률 기반 방역수칙 전환과 업종별 확진자수 발생비율을 분석한 방역수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정부가 8일 이후부터 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3단계 거리두기 조치를 연장하거나 강화할 경우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차량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거리두기 강화로 인한 피로감은 비단 자영업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면세점 등 일반 유통업계도 심각한 실적 부진에 고심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시작으로 전국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은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와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되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홈플러스, 이마트 등의 오프라인 판매량은 지난 한 달간 평균 10~15% 정도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코로나 확진을 기점으로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이 혐오시설로 낙인 찍혀 손님이 급감했다”며 “식료품 코너만 봐도 코로나 시국에도 이용객이 줄지 않았는데, 확진자 발생과 거리두기 강화 이후에는 확연하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5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점에 설치된 전자출입부 시스템. 홈플러스 직원이 고객에게 QR코드 작성 등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이재훈 기자 yes@]



상황이 이렇자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은 방역 당국 지침에 따라 지난달 30일부터 출입구에 전자출입부 작성을 의무화 했다.

그간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입출구가 많아 고객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지만 거리두기 강화 조치와 코로나 확산으로 출입 가능한 모든 입구에 안심콜을 안내하고, QR코드 인증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이날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점 역시 안심콜을 활용한 전자출입부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다.

홈플러스 정문 출입구에는 통로에 직원이 상주하며 고객들에게 안심콜을 걸도록 하고 회신된 인증 문자 확인 후 입장을 허가했다. 안심콜 외에도 QR코드 체크인 시스템도 가동 중이었다.

이는 롯데마트와 이마트 등 대형마트와 전국 곳곳의 백화점 등에서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다.

홈플러스를 찾은 한 고객은 “대부분 전자출입부 작성 방역수칙을 지키고 있지만 일부는 직원이 보지 않을 경우 귀찮다고 그냥 들어가는 일도 있다”며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6일 새로운 거리두기 조정안을 발표한다.

수도권 4단계 재연장 시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현재의 거리두기를 더 연장해야 한다는 방역 전문가들의 고민이 엇갈리고 있어 정부의 결정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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