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이재명 리더십이 갖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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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1-07-2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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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초나라 장왕(莊王) 때다. 잔치가 무르익을 즈음 강풍이 불어 등불이 꺼졌다. 이때 애첩은 장왕에게 “누군가 어둠을 틈타 내 가슴을 더듬었다. 갓끈을 뜯어 표시해 두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왕은 한 명도 남김없이 갓끈을 끊고 계속 연회를 즐기라고 명령했다. 결국 왕의 여인을 희롱한 장수는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건졌다. 훗날 장왕이 전쟁터에서 사지에 몰렸을 때 한 장수가 목숨을 걸고 구해냈다. 그는 다름 아닌 애첩을 희롱했던 장수였다.

갓끈을 끊어 상대 허물을 덮어준다는 ‘절영지연(絶纓之宴)’은 리더의 도량을 언급할 때 흔히 인용하는 고사다. 윗사람의 용서와 관용은 감동을 부른다. 국가 단위에서도 관용과 아량은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한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에서 강대국 흥망사를 훑었다. 그는 어떨 때 흥하고 망했는지를 분석했다. 관통하는 가치는 열린 생각, 즉 관용이었다. 역사상 모든 강대국은 예외 없이 관용을 바탕으로 제국을 이뤘고, 관용을 잃어버릴 때 몰락했다.

하물며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들에겐 더 말할 나위 없다. 이재명 지사의 도량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조차 독단이 강하다는 세평에는 토를 달지 않는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아예 “이재명 지사는 국가 리더를 하기엔 자격 미달이다. 마치 두테르테(필리핀 대통령) 같은 사람이다”고 직격했다. 정확한 의도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독단적이며 독선적 행태를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지사는 조광한 남양주시장과 2년 넘게 대립하고 있다. 두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다. 또 남양주시는 경기도 31개 기초단체 중 하나다. 같은 당 도지사와 시장이 장기간 갈등하는 현실에 대해 많은 이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는 ‘남양주시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가를 경영하느냐’는 비판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 지사와 조 시장은 특별조사 거부, 감사 불복, 헌재 권한쟁의심판, 검찰 고발까지 불사하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갈등은 2년 전,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놓고 불거졌다. 경기도는 지역화폐를 권고했지만 남양주시는 현금 지급했다. 이후 경기도는 특별조정교부금 지원 대상에서 남양주시를 배제하고 감사에 착수했다. 그러자 70억원을 받지 못한 남양주시는 재량권을 넘은 위법이라며 권한쟁의심판 청구로 응수했다. 조 시장은 “감사를 가장한 ‘탄압’, 사찰을 떠올리게 한다”며 반발했다. 경기도는 조 시장과 담당 공무원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급기야 조 시장은 이 지사가 정책을 표절했다는 입장문을 내기에 이르렀다. 남양주시가 추진해온 하천‧계곡 불법시설물 철거를 이 지사 치적으로 둔갑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남양주시 지역위원회는 조 시장에 대한 출당과 징계를 결정했다. 이 지사와 조 시장 사이 법적 다툼은 시간이 흐르면 정리될 것이다. 문제는 마찰이 길어지면서 도정과 시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지사 리더십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지사의 공직관은 비교적 선명하다.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올해 2월 전주MBC와의 대담에는 그런 소신이 잘 드러나 있다. “선출직 공직자(정치인)는 힘으로 강제하는 행정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일부가 저항하더라도 망설여서는 안 된다. 갈등을 유발하고 포용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또는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서는 안 될 일까지 포용해야 한다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타협하지 않겠다는 소신은 그를 지지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라면 어떤가. 이 지사는 경기 북부지역으로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 중이다. 그는 북부에 관사를 마련해 달라는 공무원들의 요구를 일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전기관 직원들은 모두 북부로 이사해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만두라. 그 지역 사람을 채용하면 된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선의를 감안하더라도 공감하기 어려운 독재적인 발상이다.

선한 의지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임대차 3법은 신랄한 사례다. 사회적 약자와 공동체를 위한 입법들이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들을 힘들게 했다. 선의를 위해 얼마든지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독단 때문에 빚어진 불행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지사는 유력한 여당 대권 후보다. 그가 선한 의지에만 기대어 독단과 독선을 고집한다면 나타날 부작용은 빤하다. 그것은 독재의 다른 이름이다.

도량과 관용은 통합과 화합을 이끌고, 국가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가치다. 남양주시와의 갈등을 어떻게 수습하느냐는 이 지사의 관용과 도량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앞서 자신을 희롱한 장수를 벌주기를 요청하는 애첩에게 장왕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술자리를 만들어 그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실수한 것인데, 어찌 그대의 정절을 드러내기 위해 신하를 벌 줄 수 있겠는가.” 적어도 국가 지도자라면 이 정도 도량과 관용을 갖춰야 한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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