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포스터 속에 영화를 그대로 담은 맥슨달튼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

김호이 객원기자입력 : 2021-07-15 06:00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20년 넘게 대중문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맥스달튼.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을 달콤한 느낌을 주는 일러스트로 표현하기도 했다. 영화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에 지친 피로를 풀어주기도 하는데, 그가 재해석한 영화포스터에서도 그런 힐링을 주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어떤 이유로 영화포스터를 재해석하게 됐을까? 그리고 어디서 영감을 받는 걸까? 그와 함께 영감을 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마이아트뮤지엄 제공]



Q. 시간을 거슬러 올라 어린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쭉 나고 자라셨나요?

A.저는 1975년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유대계 오스트리아와 오키나와계 가족에서 태어났어요. 자라면서 여러 언어를 접할 기회가 많았고 다른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특히 유럽과 아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아마 이런 이유로 타국을 집처럼 쉽고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어떠셨어요? 학창시절 어떤 아이였나요?

A. 제 유년시절이 끝나서 너무 다행이에요. 항상 어디서든 적응을 못하는 느낌이었거든요. 다 자란 요즘에는 그런 느낌을 절반 정도만 느끼고 있고요. 저는 어렸을 적 사회성이 뛰어나지 않아서 혼자 있는 것을 즐겼어요. 특히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연주하고 영화보기를 좋아했어요. 이 모든 것들은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고요.

Q.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전의 한 인터뷰에서 미술학교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림을 그리는 법이나 특정 도구를 사용하는 법은 어떻게 터득하셨나요?

A. 제가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항상 해왔던 일이니까요. 그림 그리기는 한 번도 안 했던 적이 없었어요. 글쓰기나 음악, 영화 등 다른 쪽에 관심을 갖게 됐을 때도 그림은 계속 그렸어요. 하지만 정식 교육을 받았던 적은 없습니다. 제가 17살이었을 때 1950년대 파리의 입체파 화가 앙드레 로테의 제자였던 지역 추상파 화가 케네스 켐블에게 몇 달 간 고전 유화 수업을 들었던 적을 빼면 말이죠.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것 중 두 가지가 여전히 기억에 남네요. 하나는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는 붓이나 손이 아닌 눈이다”라는 것과, “화가로서 성공하고 싶다면 부자가 되면 된다”는 것이요. 전자에는 매우 동의하는 바예요. 유채물감이 눈에 들어가면 굉장히 따가울 테니까요. 정식 회화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책에서 읽거나 아니면 다른 여러 작품들을 보고 따라 해보는 데에서 얻었어요. 어떤 테크닉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시도해보고, 실수도 해보고, 나의 결점이 무엇인지 알아낸 다음 결과와 관계없이 계속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시대에 무언가를 배우는 건 훨씬 쉽기도 하죠. 정보란 끝이 없으니까요.

Q. 그렇다면 작가님의 첫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A. 의미론적인 관점에서 대답하지 않는 이상 제 첫번째 예술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저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굉장히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단지 그저 멈추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첫 작품이 무엇이었다고 이야기 하기는 조금 애매하네요. 제가 어렸을 때 그린 작품들을 저희 어머니께서 보관하고 계신데 아마 그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 있어요. 사이 톰블리의 작품 같이 생겼어요(웃음).

 

[사진= 김호이 기자]


Q. 작가님께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미술작품이나 예술가가 있었나요? 그 작품과 예술가들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A. 여러 시대의 다양한 예술가들을 존경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더 나은 예술가로 발전하기 위해 여러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도 받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죠. 영감과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찾아나가는 여정에는 끝이 없어요. 중요한 것은 중간에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개성을 갖는 거예요. 이런 과정은 굉장히 더디게 진행되죠. 저는 제가 하는 일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제 작품이 여러 면에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똑같은 방법만 고수하는 것이 지루하기도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을 몇몇 말씀드리면, 라파엘전파 그중에는 특히 존윌리엄워터하우스와 존에버렛밀레이를 좋아합니다. 와히에로니무스보스, 피터르브뤼헐, 에드워드고리, 피에르르탄, 윌리엄히스로빈슨, 에드워드오쿤, 사울스타인버그, 미로슬라브사섹, 윈저맥케이,앨리스&마틴프로븐센, 퀜틴블레이크, 찰스색슨, 로널드 시얼, 존 알콘, 에드워드 호퍼, 앙리 루소 등이 있어요.

또 지난 몇 년간 제가 작업에 영향을 준 관심사가 여럿있는데요. 하나를 예로 들면, 19세기의 사진, 특히 전신 초상을 좋아해요. 사진에 있는 모든 디테일이 매우 매혹적이거든요. 그저 사람들이 가만히 서있는 것뿐인데도 그들이 서있는 자세, 표정, 그리고 입고 있는 의상 등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아마도 제가 그리는 전신 일러스트레이션은 그런 전신 초상을 보고 묘사 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아주 잠깐이지만 전문 뮤지션이나 동식물연구가를 꿈꿨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그래픽아티스트가 되고싶었어요. 아마 동식물연구가는 제 가족에 의사, 화학자, 생물학자, 진화론 전공 교수 등 많은 과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일거에요. 그렇지만 항상 제가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고 좇으라는 격려를 받아왔었어요. 그리고 그 많은 과학적 영향이 제 작품에도 어떻게든 미쳤을 것이라 생각해요.

Q. 작가님의 작품들은 음악,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아우르는 작품들로, 특히 영화는 80년대의 것들이 많고요. 당신에게 이 50년대부터 80년대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저는 현대 미학의 팬은 아니에요. 어찌 보면 저는 아직 과거에 산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저도 이러한 맥락에서 제가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요. 저는 현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개성보다는 편안함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아요. 지루하잖아요? 모두 똑같은 차를 타고 똑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음악을 듣고, 영화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낸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똑같은 공식으로 만들어졌어요.

그게 예전보다 더 나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과거는 스타일이 일상에서 좀 더 중요했던, 이상화된 판타지 일 수도 있겠지요. 다만 저는 그 이상적인 면모를 매우 좋아하고 그 시대를 되돌아보고 재현해낼 때 가장 제 자신에 충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맞아요, 제가 작업한 일러스트레이션 대부분이 영화나 TV의 한시대, 그중에서도 특히 80년대를 많이 다루죠. 그 시대가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컬트 캐릭터가 가장 많이 탄생한 때 이니까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어떻게 영화를 작품의 모티브로 선정하게 됐나요?

A. 저는 항상 영화와 일러스트레이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 두 세계를 연결 지을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정해진 바나 다름없었죠. 저도 왜, 그리고 언제부터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그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을 적부터 굉장히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은 확실해요. 이것도 저희 어머니가 보관하시고 계신데 , 10살 즈음에 대중문화 캐릭터들을 무작위로 그린 그림이 있어요. 간디를 프레디크루거 옆에 세워둔 그림이었죠. 또 누굴 그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유명인사를 만화로 그리는 것에 대한 관심이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것 같네요.

Q.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도 남다를 것 같아요. 공상과학 영화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려왔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장르나 시리즈가 있으신가요?

A. 보통 제가 재미있게 봤거나 여러 이유로 좋아하게 된 영화들을 선택해요. 이런 영화들을 저만의 스타일로 재구성 하는 것이 재밌어요. 어떤 영화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지만 제 작업 스타일과는 맞지 않아 선택하지 않기도 해요. 항상 겪는 딜레마죠.

Q. 여러 주제의 방대하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하나의 포스터로 압축하는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보통은 스케치를 시작하기 전 제가 선택한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해요. 가끔은 영화를 보면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지만 또 어떤 날은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다른 레퍼런스를 찾아가면서 오랜 시간을 고민해야 돼요. 두 세계의 다른 콘셉트를 하나로 합치기도 해요. 그게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이 될 수도 있고, 음반이나 오래된 잡지의 커버, 동화책 등 다양해요. 계속해서 색다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는 낙서를 하면 온갖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아마 종이에 연필로 그리는 움직임 자체가 뇌 속 창의력을 담당하는 어느 한 부분을 극대화 시키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가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노트에 낙서를 하면서 창의력을 '리필'하는 편 이에요. 대체로 통 하는 방법이죠.

이후 모든 디테일을 정확하게 구현하기 위해서 영화 속 장면을 캡쳐하거나 반복해서 돌려봐요. 가끔은 제가 묘사하는 방법과 실제 영화가 다를 때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디테일을 되살리기란 불가능해요.〈기생충〉의건물 구조를 만들 때 그랬듯이 말이에요. 영화를 볼 때는 눈치채지 못한 부분들이 종이 위에 다시 구성하면서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어떻게 묘사할지 구현해낼 방법이보여요. 이러한 과정은 작업을 하면서 결정하는 예술적 허용이에요. 리서치와 스케치하는 단계가 실제 그리고 칠하는 작업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요. 그렇게 제가 구상한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면 색을 칠하고 제 마음에 들 때 까지 작업을 수정하죠.

 

[사진= 김호이 기자]


Q. 여러 주제의 방대하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하나의 포스터로 압축하는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보통은 스케치를 시작하기 전 제가 선택한 영화를 여러 번 관람해요. 가끔은 영화를 보면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지만 또 어떤 날은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다른 레퍼런스를 찾아가면서 오랜 시간을 고민해야 돼요. 두 세계의 다른 콘셉트를 하나로 합치기도 해요. 그게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이 될 수도 있고, 음반이나 오래된 잡지의 커버, 동화책 등 다양해요. 계속해서 색다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는 낙서를 하면 온갖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아마 종이에 연필로 그리는 움직임 자체가 뇌속 창의력을 담당하는 어느 한 부분을 극대화 시키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가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노트에 낙서를 하면서 창의력을 '리필'하는 편입니다. 대체로 통하는 방법이죠.

이후 모든 디테일을 정확하게 구현하기 위해서 영화 속 장면을 캡쳐 하거나 반복해서 돌려봅니다. 가끔은 제가 묘사하는 방법과 실제 영화가 다를 때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디테일을 되살리기란 불가능해요. 〈기생충의 건물구조를 만들 때 그랬듯이 말이에요. 영화를 볼 때는 눈치 채지 못 한 부분들이 종이 위에 다시 구성하면서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어떻게 묘사할지 구현해 낼 방법이 보여요. 이러한 과정은 작업을 하면서 결정하는 예술적 허용입니다. 리서치와 스케치하는 단계가 실제 그리고 칠하는 작업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려요. 그렇게 제가 구상한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면 색을 칠하고 제 마음에 들 때까지 작업을 수정하죠.

 

[사진= 김호이 기자]



Q. 대부분 디지털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채나 유채물감, 혹은 파스텔 등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기법도 자주 하는 편이신가요? 언제부터 디지털 툴을 주로 사용하게 되셨나요? 아날로그 페인팅과 디지털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은 어떤 툴들이 있을까요?

A. 도움이 되는 모든 도구를 사용해요. 유채물감이나 수채물감이 그러하듯 컴퓨터도 그저 하나의 도구일 뿐이에요. 각각의 도구가 그만의 개성과 규율, 장단점을 가지거든요. 만약 작업을 급하게 완성해야 한다면 마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유화를 선택하지는 않겠죠. 디지털 도구의 가장 큰 장점은 제가 한 실수를 빠르게 지울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에 비해 수채물감이나 잉크를 쓸 때 실수를 하면 모조리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죠. 그러한 '실수'는 작품에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고 제가 이해하고 좋아하는 낭만적인 부분이 있죠. 하지만 어떤 때는 단순히 그럴 시간 자체가 없기도 해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물 이에요. 실제 붓의 질감을 모방 하는 여러 디지털 브러시들이 있고 제대로 선택하고 캔버스에서 그들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작가가 모양과 색감, 그리고 빛의 개념을 지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컴퓨터라도 좋은 작품을 대신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거든요. 진정한 도구는 ‘눈' 이죠. 게다가 디지털펜을 쓸 때도 실제 붓이나 연필을 쓸 때처럼 모든 붓놀림을 손으로 해요. 자동기능이나 단축키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Q. 당신에게 색이란 무엇인가요?

A. 제게 색이란 집착이에요.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항상 색을 생각해요. 너무 기술적으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색상 자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의 뇌가 빛에 반응하는 주관적인 방법일 뿐이죠.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하루 중 시간, 빛 온도, 주위의 색에 따라 물체의 색이 변하기도 해요. 우리의 기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슬프게 하거나 흥분되게 하거나 화나게 할 수도 있죠. 그리고 저는 반대로 작용되기도 해서 감정 상태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은 색칠 작업을 할 때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요. 색의 용도를 정확히 파악해 사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Q.〈영화 속 위대한 순간들〉 시리즈에서 사용된 대사와 장면은 어떻게 고르셨나요? 뭔가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영화에서 나온 대사와 장면 그대로 사용하시나요?

A. 사실 제 아내의 아이디어였어요. 그녀가 "포스터 쓸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어." 라고 말하면서 모든 게 시작되었죠. 몇몇 문장은 제 기억을 되살린 것들이지만 대부분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영화 명대사 모음’을 참고했어요. 그 후 제 취향을 기반으로 임의로 대사 몇 줄을 선택했고요.
이것을 어떻게 작품에 반영할지 생각했고 영화대본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제가 영화광이고 많은 대본을 읽고 또 써보기도 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고, 구성은 이미 머릿속에 떠오른 상태였어요. 그렇게 영화대본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했죠.

 

[사진= 김호이 기자]



Q.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웨스 앤더슨 또한 각광 받았습니다. 당신이 작업한 『웨스 앤더슨 컬렉션 북 시리즈』도 한국에 출간되어 맥스 달튼을 검색하면 ‘웨스 앤더슨의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수식어도 있고요. 웨스 앤더슨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또 컬렉션 북의 작가 매트 졸러 세이츠와 콜라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로얄 테넌바움의 첫 10분을 보자마자 저는 웨스 앤더슨 작품의 팬이 되었어요. 그게 제가 처음으로 웨스 앤더슨을 접한 작품이었죠. 그 영화를 보면서 이제야 비로소 이해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마치 내가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시를 읽은 바로 그 기분이요. 이후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그리고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을 본 후 그의 영화에 대한 저의 애정은 계속 커져만 갔어요.

그의 작품을 처음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만들게 된 건 영화〈로얄테넌바움을 모티브로 한〈111아처애비뉴〉였어요. 켄하먼이 인터넷 어딘가에서 제 작품을 보고 연락했고 그 당시 자신이 설립한 스포크 아트갤러리에서〈배드대드〉라는 이름으로 웨스앤더슨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가지고 전시회를 개최 할 예정이라고 했어요. 그게 아마 12년 전 이었을거에요. 전시회는 성공적이었고 오랜시간 동안 연례 전시로 이어져왔어요. 제가 예술가로서 이렇게 성공하게 된 데에는 스포크아트갤러리와 그의 전시가 큰 몫을 했어요.

몇 년 뒤, 아브람스북스의 매트졸러세이츠와 에릭클로퍼가 첫 번째『웨스앤더슨컬렉션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고, 정확히 어떤 과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이름이 거론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벨라폰테〉도 완성되었었죠. 나머지는 모두 책을 위해 단독 작업한 작품들이었어요. 이제는 다섯 번째 책을작업중이고요 .그는 부인하지만, 세이츠는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천재이자 유망한 작가고, 마틴베네즈키가 총괄하는 책 디자인은 언제나 최고이며 제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 곁에서 일 할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에요.

Q. 웨스 앤더슨의 영화와 당신의 전반적인 작업들을 보면 공통점이 많아요. ‘숨은 그림찾기 하는 듯한 엄청난 세세함, 빈티지함, 그리고 특히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벨 에포크의 노스탤지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당신의 작품 모티프들도 그런 시대적 향수에 젖게 하고요.『외톨이』동화책 시리즈는 우리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과거의 귀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죠. 컬렉션 북이나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나 그의 가치관을 보며 공통점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A. 저는 과거의 물건에 둘러싸여 있거나, 직접 보거나 만들 때 행복해요.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은 과거의 물건이에요. 제가 아끼는 손때 묻은 책들, 오래된 악기들, 옛날 레코드, 낡은 가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1937년 비엔나에서부터 배를 타고 오신 할머니의 짐가방이나 할아버지가 오키나와에 계실 때부터 갖고 계셨던 해마 박제 표본도 제가 갖고 있죠. 전 골동품들과 진기한 것들을 사랑합니다. 분더캄머 같죠. 아무튼, 웨스 앤더슨의 작품에는 과거에 대한 연결고리가 확실히 있는 점이 너무 매력적이에요. 그가 의도 했든 하지 않았든 말이죠. 사용하지 않아 잊혀진 물건, 옛날 영화나 문학에 대한 언급, 종이책,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직업들, 교양 있는 의상, 고전 미술 작품, 단단하고 튼튼한 건축물 등 영화에 나오는 모든 것이 저와 연결 지어 지는 느낌이에요. 저도 저와 웨스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다고 믿고 싶네요.

 

[사진= 김호이 기자]



Q.『웨스 앤더슨 컬렉션』시리즈를 작업하는 과정은 어떠셨어요? 어떤 점이 흥미로웠고 어떤 점이 힘드셨나요?

A. 나의 부족한 작품을 너무나도 존경하는 사람의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것만큼 멋지고 벅찬 감정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런 일들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일이지 않을까 싶어요. 흥미로웠던 부분을 하나 꼽아보자면, 일러스트 작업을 위해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의 백스테이지 사진이나 대본을 볼 수 있어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그에 비해 맡은 임무에 최선의 결과물로 보답해야 하고 이 작업물을 위해 함께 노력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점에서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Q. 제 개인적인 견해로 이번 전시에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밤을 그린 포스터가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 중 하나일 것 같아요. 호텔을 다양하게 보여준 이유와 야광 페인트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처음에는 책을 위해 호텔의 파사드를 그렸어요. 책의 앞표지에는 1930년대의 호텔 낮 풍경을, 뒷 표지에는 1970년대의 호텔 풍경을 그렸죠. 몇 달 뒤 새로운 〈배드 대드〉전이 뉴욕에서 열렸는데, 호텔 일러스트의 여러 버전을 만들어 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렇게 밤의 호텔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종종 단 하나뿐인 포스터에다 손으로 직접 덧칠하는 등의 여러 아이디어를 추가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야광으로 만들면 멋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 전에도 〈벨라폰테〉의 대형 프린트에 사용해본 적이 있는데 그 결과물이 매우 마음에 들었거든요.

 

[사진= 김호이 기자]


Q.『웨스 앤더슨 컬렉션』 시리즈를 위해 작업한 많은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그 작품에서 관람객들이 눈여겨봐주었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이죠?

A. 대부분 마음에 들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벨라폰테〉예요. 영화 속 배의 횡단면을 보았을 때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소장한 켄 커크우드의 『바다 위의 피바디 Peabody All at Sea』 속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아이들이 그림 속 숨겨진 힌트를 찾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탐정 컬렉션 중 한 부분이었어요. 그 작품 또한 제게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쳤고 아직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는 책이에요. 어쨌든, 그 책에 배의 횡단면이 그려진 부분이 있는데 그 장면과 영화의 장면과 합쳐지면서 제 머리 속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어요. 다른 영화의 횡단면 일러스트레이션 모두 그 영향의 일부분이랍니다.

Q. 당신의 작품에는 토토로, 가오나시, 고질라 등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한 여러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문화를 좋아하시나요?

A. 아무래도 제 출신 때문에 일본 문화에는 항상 관심이 있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를 매우 좋아하기도 하고요. 4살인가 5살 즈음에 TV 시리즈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즐겨 봤는데, 그게 아마 제가 처음 본 미야자키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물론 그게 미야자키의 작품이라는 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지만요. 저희 어머니 성함도 ‘하이디’라서 그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이게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굉장한 착각에 빠진 어린이였죠.
미야자키의 나머지 작품들은 성인이 되어서야 접했고 그의 작품을 참 좋아해요. 인간의 얼굴 표정과 세세한 것들도 구현해내는 그의 관찰력과 정확도를 보고있자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여전히 손으로 직접 그리는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는 점도 너무 좋아요. 최근 한 연구소에서 인간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미야자키에게 보여주는 영상을 봤어요. 미야자키는 그가 본 상황에 혐오감을 표현하며 '우리가 시간의 끝에 도달한 것 같다. 인간들은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웨스 앤더슨과 코엔 브라더스 외에 긴밀히 작업하고 싶은 다른 감독이 있나요?

A. 저는 작품 뒤에서도 존재감을 활활 불태우는 색깔이 뚜렷한 감독을 좋아해요.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유일무이한 영화 감독으로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스파이크 리 등이 있죠. 새로운 세대 중에서는 〈더 위치>와〈더 라이트하우스〉를 감독한 로버트 에거스를 좋아해요. 그의 다음 작품도 기다리고 있죠. 하지만 웨스 앤더슨이야말로 현존하는 모든 감독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입니다.

Q.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셨는데, 그게 어떤 작품들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기생충〉도 작업하셨는데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모티프로 삼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업하시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스타워즈에 나오는 현상금 사냥꾼 초상화 시리즈, 카드보드지에 과슈를 사용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인물 전신 초상화, 펜과 잉크를 사용한 루프탑 콘서트의 비틀즈 네 점, 그리고 〈스타워즈〉를 모티프로 한 〈영화 속 위대한 순간들〉 시리즈 세 점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또〈반지의 제왕〉 삼부작에 영감을 받은 보드게임과 〈기생충〉의 대형 포스터 또한 이번 전시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한국영화를 모티브로 한 것은이 번이 처음이었어요.〈기생충도 너무 좋았고 포스터 작업과정도 즐거웠습니다. 영화 대부분의 이야기가 집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디테일과 상황을 횡단면의구조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집이 크고 볼거리도 많아 사실 작업 자체는 쉽지 않았습니다. 구조 형태가 단순하고 '미니멀'해보여도 건축학적으로 매우 복잡해서 모든 층과 방을 올바르게 배치하기 위해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봤어요. 몇 부분은 제가 상상하거나 만들어 내야 했어요. 특히 벙커 부분은 사실 저택과 멀리 있는 긴 복도구조인데 저는 정반대로 그렸어요. 하지만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지 않나요? 결과가 마음에 들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요. LP 커버를 제작하는 것은 영화나 TV 쇼처럼 비쥬얼 레퍼런스가 없기 때문에 작업하는 과정이 다를 것 같은데요. 만약 실제로 그렇다면 전체적인 과정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말씀해주세요.

A. 제가 LP에서 좋아하는 것은 그 안에 포함된 예술이에요. 커버와 프린트된 재킷, 소책자 같은 것들, 그 물건들이 좋아요. 앨범 커버는 제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들 (몇 명만 말하자면 닐 후지타, 리드 마일스, 짐 플로라)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앨범 커버 그 자체에 대한 조금은 쑥스러운 오마주고요.

저는 제목 그대로를 해석해서 작품에 표현 하는 것을 좋아해요. 아마 이건 그림책에서 받은 영향일지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그들은 그 자체로 다른 개념들에 대한 관념이기때문이죠. 그래서 앨범 제목이 영적인 도달의 의미를 갖고 있는 ‘승천(Ascension)’이라면 전 엘리베이터를 그립니다. 《런던콜링(LondonCalling)의 경우 그냥 영국의 공중전화부스를 그렸죠. 엘비스의 앨범도 같은 맥락으로 작업했어요. 더클래시의 앨범이 엘비스의 앨범에서 영감을 받았으니까요. 모든 작품은 기존의 예술작품에 경의를 표하는 패러디나 마찬가지죠.

Q.『외톨이』시리즈,『완전히 반대』, 그리고 『소리 지르는 요리사』와 같이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의 삽화 작업을 하시기도 했는데요 아동 문학으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내용을 보면 삽화가 포함된 소설에 더 가까운 것 같네요. 이러한 동화책 일러스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의 첫 번째 그림책은 『외톨이 공중전화기』였어요. 책 커버 디자이너이자 작가, 피아니스트, 그리고 현재는 디 아틀란틱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피터 멘델선드가 친구 피터 애커먼에게 저를 소개해 주었는데, 애커먼은 당시 일러스트레이터를 찾고 있었거든요. 이메일로만 연락했지만 거의 바로 친구가 되었어요. 이 후 뉴욕으로 그를 만나러 갔는데 우리가 굉장히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더라고요 - 옷 차림도 거의 똑같았죠. 태어날 때 헤어진 형제를 찾은 기분이었달까요. 함께 작업하는 과정을 즐기기도 하지만 둘 다 백만장자의 꿈을 갖고 그 이후부터 죽 같이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작업 중인 새로운 작품이 있지만 제목은 공개할 수 없네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한 인터뷰에서 언급한 미로슬라브 사섹의『디스 이즈...』시리즈와 그래픽 디자이너 사울 바스의 동화책의 한 장면을 오마주한 작품〈타디스〉를 보면, 동화책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는 것 같습니다. 특히 빈티지 동화책이요.

A. 저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매우 사랑해요. 특히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출간된 작품들을 좋아하죠.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까지도 저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들이에요.
최근 제 지인이 미야자키가 한 말을 알려주었어요. “우리 애니메이터들은 어린시절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린시절을 충분히 즐긴사람들은 이쪽 계열의 직업을 가지지 않아요. 어린시절을 제대로 졸업한 사람들은 이를 과거로 남겨둡니다.” 라고요. 정말 공감이 가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많은 책을 접하면서 컸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세상에 빠져 보냈어요. 어떤 이유에선지 아직도 그 세계에서 완벽하게 빠져 나올 수가 없네요.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 동화책은 아주 많아요. 그 중 몇몇은 당연히 미로 슬라브사섹의 작품이죠. 그는 완벽한 팔레트를 가진 수채화의 장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빈티지 책으로 보시면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특징인데, 재발간된 버전에는 이상하게 일러스트레이션이 망가져요.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죠. 현대 인쇄기술은 당연히 1965년대보다 나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쨌든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하지만 사지는 마세요. 여러분이 책을 구입하게 되면 가격이 올라갈 테고 그럼 저의 컬렉션이 완성될 수 없으니까요. (웃음)

 

[사진= 김호이 기자]



Q. 1977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커리어는 2008년에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업계 전반과 예술적 세계에서의 당신의 포지션이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A. 아마 1990년 처음으로 상업용 포스터 작업을 했을 거예요. 그 당시 개인용 컴퓨터는 문서 작업을 할 때만 사용했기 때문에 모든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손으로 해야만 했죠. 그 땐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아트 디렉터와 광고 에이전시의 대표로 활동하던 저의 삼촌 에곤이 텍스트, 사진 등을 종이에 옮겨야 하는 모든 작업과 오프셋 인쇄를 위해 이를 필름으로 옮기는 걸 도와주셨어요. 매우 길고 느린 과정이었죠.

인터넷의 등장으로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20년 전엔 제 작품을 단 몇 초 만에 전 세계 어느 도시로 보낼 수 있다거나 한국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불과 몇 분 만에 피드백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요. 예전에는 미술관의 화랑에 방문할 때면 한 손에는 제 작품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다녀야 했는데, 정말 번거로운 일이었다니까요. 좀 더 낭만적이긴 했겠죠.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과 다시 바꾸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유년시절 저명한 신문사에서 일하던 전문 삽화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신문사의 창문도 없는 한 작은 사무실에서 슬프게 빛나는 형광등 아래 담배연기와 커피냄새에 둘러 싸여 일했어요. 하루종일 그곳에 앉아서 기사를 전달받고, 시간 안에 그에 맞는 삽화를 그려내야했죠.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건 이런 삶이 아냐. 난 절대 삽화가가 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이제는 삽화가도 사람다운 대우를 받으며 집에서 편안하게 일하면서 꽤나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죠.

물론 이에 대한 단점도 있어요. 모든 계열이 그렇겠지만,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정보가 넘쳐 흘러 감각이 마비 될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하지만 적응하고 대응할 방법을 찾는 게 바로 우리가 성장하는 길이라고생각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팬데믹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많은 이들의 일상을 바꿨죠. 당신의 작업 환경이나 상황을 어떻게 변화했나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A.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일하는데다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자주 필요 없기 때문에 제 작업 환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행하는 것이 그립긴 합니다. 전시회 개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도 속상하네요. 우리의 삶이 다시 정상화되기를 고대합니다.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말이죠.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A. 웨스 앤더슨 컬렉션 시리즈의 새로운 책『프렌치 디스패치』가 출간됐어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또 출간 예정인 책 몇 권이 있지만 아직은 비밀이랍니다.

Q. 마지막으로 당신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이 일 말고는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웃음).

  • 아주경제 공식 카카오채널 추가
  • 아주경제 공식 유튜브 구독
  • 아주TV 공식 유튜브 구독
  • 아주TV 공식 페이스북 좋아요
컴패션_PC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