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건너 연결된 문화재와 근현대미술...‘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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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1-07-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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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 35점·근현대미술 130여 점·자료 80여점 전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이 오는 10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중섭 작가가 1952년~1953년 사이에 그린 ‘봄의 아동’에서 보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고려 시대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에 보이는 동자들의 문양을 평면적으로 펼쳐 놓은 것 같은 구도와 청자의 음각 기법처럼 보이는 새긴 듯한 윤곽선 등이 닮았다.

문화재와 현대미술이 오랜 시간의 장벽을 넘어 ‘한국의 미’라는 유전자(DNA)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MMCA·관장 윤범모)은 한국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자리에 모아 한국의 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을 오는 10월 10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지난 8일 개막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박물관의 문화재와 미술관의 미술 작품을 서로 마주하고 대응시킴으로써, ‘한국 미’의 유전자를 찾고자 노력했. 특히 근대의 미학자인 고유섭, 최순우, 김용준 등의 한국미론을 통해 한국의 대표 문화재 10점을 선정하고, 전통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지 고찰했다.

전시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이자 근·현대 미술가들의 전통 인식에 이정표 역할을 해온 네 가지 말 ‘성(聖·Sacred and Ideal)’, ‘아(雅·Elegant and Simple)’, ‘속(俗·Decorative and Worldly)’, ‘화(和·Dynamic and Hybrid)’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1부 ‘성(聖·Sacred and Ideal)’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이상주의적 미감이 근대 이후 우리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떤 형태로 발현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성’이란 종교적 성스러움과 숭고함의 가치를 뜻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천상 세계에 대한 염원, 통일신라 시대 석굴암에 투영된 부처에 대한 믿음과 깨달음에 대한 갈망 등은 성스러운 종교 미술로서 ‘성’이라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 가치를 담고 있다.

한편 당대의 서예가 두몽(竇蒙)은 예술의 지극히 높은 경지를 ‘성’으로 지칭한 바 있다. 이는 고려청자의 완벽한 기형과 색상의 미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고려청자의 뛰어난 장식 기법과 도상들은 이중섭의 작품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자 자체의 매력과 발전 양상을 감상함과 동시에 이와 비교되는 이중섭의 작품들이 파격미 뿐만 아니라 전통미도 갖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각각의 예술이 발광체이면서도 서로를 비춰 주는 반사체가 되어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려 시대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부 ‘아(雅·Elegant and Simple)’에서는 해방 이후 화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으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하고 국제 미술계와 교류하며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정형의 미감이라는 차원에서 추구되었던 한국의 졸박미(拙朴美)와 한국적 표현주의를 살펴본다.

‘아’란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세속적 지향과는 다른, 격조를 추구하는 심미적 취향을 말한다. 자연을 실견하고 거기에 동화되어 그려진 겸재의 진경산수화, 생각과 마음을 지적으로 그려 내려 한 추사의 문인화는 아(雅) 미학 추구의 결과들이다.

한편 ‘아’는 순수함이나 무(無)의 조형성과 연결되는데, 이것은 순백의 아무런 무늬가 없는 달항아리의 비완전성·비정형성과도 통한다. 이러한 문인화와 백자가 만들어 낸 전통론은 실제 1970~1980년대 한국의 단색조 추상 열풍과 백색담론으로 이어졌다는 측면에서도 주목을 요구한다.

3부 ‘속(俗·Decorative and Worldly)’에서는 서양미술과 조선 및 근현대 주류 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표현주의적이고 강렬한 미감이 추구되던 장식미(裝飾美)를 살펴본다. ‘속’이란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취향이나 문예 작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선 시대 풍속화와 미인도, 민화는 이러한 미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적으로 김홍도의 풍속화와 신윤복의 미인도가 어떻게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전통으로 자리매김하였는지, 근대 이후 화가들에게 어떤 의미로 내재화되어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속’은 대중을 위한 불교를 추구했던 조선 시대 불교회화의 정신 및 미감과도 통한다. 조선 시대 감로도나 시왕도 등은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하며 고달픈 삶의 모습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면모들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도 계승되어 강렬한 채색화가 유행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이중섭 작가의 ‘봄의 아동’ [사진=전성민 기자]


마지막 4부 ‘화(和·Dynamic and Hybrid)’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추구하며 다양한 가치와 미감이 공존하고 역동적으로 변모하던 1990년대 이후 한국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본다.

‘화’란 대립적인 두 극단의 우호적인 융합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전통 미학에서 ‘화’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 차이를 존중하는 조화를 통해 통일에 이름을 뜻한다.

공존할 수 없고, 지향도 다른 것으로 여겨지던 고대의 문화재와 현대의 미술이지만 오히려 서로를 비추고 공존해야 함을 화(和)의 미학이 말하고 있다.

신라금관(보물 339호)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전통이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헌정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이 수천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국미를 대표하는 ‘성·아·속·화’의 미감 속에 조화롭게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학술적인 면에서도 의미가 있는 전시다.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연구자 44명이 참여, 한국미를 대표하는 문화재 10점을 중심으로 공동의 연구 주제로 풀어낸 650쪽 분량의 도록이 발간된다. 전통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에 대한 근현대미술의 반응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연구한 48편의 칼럼과 논고를 통해 한국 미술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국보와 보물이 현대 미술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보기 드문 전시”라며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펼쳐놓은 다채로운 미감의 한국 미술을 감상하며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 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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