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시스템의 첫번째 관문: '나'와 '남'의 식별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 2021-05-28 07:00

[박상철 교수]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인간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온갖 간난신고를 겪어내고 생존해 내어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체방어의 면역시스템이 원활하게 가동하여야 한다. 면역시스템의 첫째 관문은 ‘나(self)’와 ‘남(non-self)’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코비드-19 사태가 발생하여 존재 가치가 높아진 백신은 후천면역(획득면역) 시스템을 원용하여 ‘나’가 아닌 ‘남’을 인지하여 제거하는 항체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방법이다.

외부에서 침입한 미생물이나 독소가 지닌 항원에 대하여 면역시스템을 가동하여 항원-특이적인 항체가 생성된다. 항체생성세포는 체내에 남아 있다가 똑같은 항원이 들어오면 기억을 되새겨 항원특이적 항체를 다시 생성하여 공격한다. 이러한 면역체계는 과거에 침입해온 적을 기억하여 선택적 타격을 가하는 특공대 조직이기 때문에 특정침입자에 대해 매우 효율적인 방어시스템이다. 그런데 생체는 이러한 선택적 후천면역 시스템뿐 아니라 처음 마주친 낯선 침입자들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최전방의 초병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선천면역(내재면역)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아직 생체를 공격해온 기록이 없는 새로운 낯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또는 독소들이 무리 지어 공격해 온다면 이에 대응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일은 생존의 결정요인이다. 생체는 우선적으로 이들을 차단하는 피부나 점막과 같은 물리적 방어벽이 있고, 나아가서 침입해 온 적을 생화학적 수단을 사용하여 섬멸하는 화학적 장치들도 있지만 그 기능이 국소적일 수밖에 없다. 생체가 총체적 노력을 통해서 침입자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새로운 적들을 일괄 식별하여 찾아내는 보편적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낯선 침입자가 오더라도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면역시스템의 존재는 생명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피아를 식별하는 기능은 한동안 그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던 면역현상의 미스터리였다.

이러한 상황에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등장하였다. 폴리 마칭어(Polly Matzinger)는 바텐더, 목수, 재즈음악가, 개사육사 등 다양한 경력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학문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한 경력이었기에 그녀는 기존의 틀에 박힌 사고와는 다른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었다고 본다. 생체의 면역계가 ‘나’인 자기(自己)와 ‘남’인 비자기(非自己)를 선별적으로 구분할 뿐 아니라 각종 위험에 따른 다양한 패턴을 전반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생체분자들은 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거대분자들의 표면은 친수성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생체 혼란 상황이 초래되면 분자 내부의 소수성 부분들이 밖으로 노출되게 되어 이를 위험신호로 인식하게 된다는 위험이론(danger theory)을 제안하였다. 이들 변형된 분자들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고, 생체는 일괄적으로 인지하여 면역시스템을 작동한다고 가정하였다. 분자적 특이성을 통한 선택적 개별 방어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면역의 원리라고 믿어왔던 학계에 보편적 패턴을 일괄적으로 인식하는 총체적 방어 시스템이 있다는 주장은 학자들의 의표를 찌른 파격적인 학설이었다.

생체는 침입한 미생물이나 독소가 지닌 특정한 계통의 분자 양상을 인지할 수 있는 유전적인 패턴인식수용체(Pattern Recognition Receptors)를 가지고 있다. 외래 침입자인 병원성 미생물에만 있고 다세포 생물에는 없는 분자패턴을 이들 수용체가 즉시 탐지하고 대응한다. 비록 다양한 병원체들을 일일이 선별하지는 못하지만 일련의 병원체에 공통적인 구조적 패턴을 인식하기 때문에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탐지하며, 광범위하게 작동하여 병원체의 침입을 인지한다. 패턴인식수용체가 인지하는 병원체연관분자패턴(PAMPs)으로는 리포다당류, 펩티드글리칸, 리포테이코산, 만난, 세균의 DNA, 이중 나선 RNA, 글루칸과 같이 병원체가 생성하는 구조물들이 있다. 이들을 인지하는 수용체로는 톨유사수용체(TLRs)와 세포기질수용체가 있다. 톨유사수용체는 복합적으로 조합되어 작용하며, 각 TLR들은 해당하는 특정 분자패턴만 인식하여 연계된 전사인자를 활성화, 면역시스템을 가동한다. TLR4는 그람음성균, TLR2는 그람양성균, TLR3는 RNA바이러스, TLR5는 균 플라젤린에 특이적으로 반응한다. TLRs와는 달리 세포기질수용체는 병원체의 공격을 받아 손상된 세포기질을 인식하는 수용체들로 NOD유사 수용체, RIG-I 유사 수용체와 세포기질DNA 수용체 등이 있다.

병원체연관분자패턴뿐 아니라 각종 스트레스가 초래하는 세포나 조직의 변형에 따른 위험연관분자패턴과 대사적 불균형에 의하여 초래되는 대사연관분자패턴이나 스트레스에 의한 생활방식연관분자패턴도 차례로 보고되고 있다. 패턴을 인식하기 때문에 굳이 일대일 대응과 같이 구체적일 필요가 없으며,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항체 생성과 같은 기억세포를 따로 둘 필요도 없다. 패턴인식수용체는 표적패턴의 구조를 만나면 증식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대식세포와 수지상세포를 가동하고 면역반응을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염증조절복합체는 올리고머 단백질복합체로서 병원체, 대사, 생활방식 및 각종 위험에 연관된 분자패턴들을 인지하여 사이토카인들을 생성하고, 염증반응과 통증을 유발하여 전신에 경계태세를 갖추게 한다. 이들 패턴인식수용체를 생성하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서 ‘나’와 ‘남’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이 일어날 수 있다. 외부침입자뿐 아니라 자기 개체 내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후천면역시스템은 진화적으로 척추동물 이후에 출현하였지만, 선천면역시스템은 생명체의 원초적 최일선 생명보호장치이다. 위험을 겪은 다음 특정항체를 생성하여 표적 미생물이나 독소를 선택적으로 처리하기 이전에 생명체는 내재적으로 분자패턴 인식이라는 유전적 장치를 활용하여 다양한 병원체는 물론 자기의 생활습관이나 대사적 불균형에서 초래된 위험신호까지도 인지하여 대응하는 보호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생명체는 외부의 침입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생명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총괄적인 보호장치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생존을 위한 첫째 관문이 바로 피아식별이며, 그 핵심은 상대방이 지닌 일련의 분자패턴, 즉 외견상의 이미지였다. 인간 세상살이에서도 ‘나’와 ‘남’을 식별하는데 이러한 진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박상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scpark@snu.ac.kr
2021 KE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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