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숨었다가 차에 돌진···스쿨존에서 '위협'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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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1-05-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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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자기 차로 뛰어 들어 운전자 놀래켜, 교통 법규 지켜도 위험한 '스쿨존'

  • 운전자 전방 주시 의무 증명 어려워···부모·선생이 아이에게 안전 교육해야

# 한 아이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불법 주차된 차량 앞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다른 차에 갑자기 몸을 던진다. 운전자는 급정지로 사고를 면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아이는 유유히 다른 곳으로 뛰어간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민식이법’이 놀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군 사건을 계기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어린이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이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지난 3월부터 시행된 민식이법은 도로교통법과 가중 처벌에 대한 두 가지 개정안을 의미한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에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과속단속카메라, 과속 방지턱, 신호등 등 속도를 제한할 수 있는 장치 설치 의무화가 포함됐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부주의로 사망 사고를 일으킨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 상해 사고를 일으킨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린이 보호를 위해 마련된 이 법이 최근 운전자를 위협하는 무기로 변모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운전자의 부담이 커졌다는 점을 인지한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최근 스쿨존 내에서 운전자를 위협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방법은 민식이법이 적용되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달리는 차에 직접 뛰어들어 운전자를 놀라게 하고 위협하는 것이다.
 

[사진=보배드림 인스타그램]

 

지난 21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스쿨존에서 운전자를 위협하는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공유했다. 해당 영상에는 한 남자아이가 교차로에 불법주차된 SUV 앞에 숨어 있다가 차가 오자 뛰어들어 급정거를 만드는 장면이 담겼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스쿨존에서 위협을 당했다는 호소 글이 속속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한 초등학교 앞에서 4~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차 앞으로 뛰어들더니 앞으로 질주를 몇 초간 하더라. 순간 당황하고 저 아이가 왜 저러는지 뭣도 모르고 서서히 운전했는데 그 아이가 인도에 있는 친구들에게 가서 가슴을 쓸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혼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돌아와 생각해보니 저게 스쿨존 내 위협 행위구나 싶더라. 진짜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고 규정 속도 잘 지키고 달려도 억울해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누리꾼은 “초등학교를 지나는데 도로로 걸어가던 아이가 뛰어들었다. 급정거하고 놀랐다가 다시 출발하는데 뛰어든 애가 웃고 있었다. 소름 끼쳤다”고 전했다.
 

[사진=유튜브 '한문철TV']
 

일각에서는 스쿨존 내 운전자 위협행위로 인해 아이들이 인명피해를 자초함과 동시에 법을 지킨 운전자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배드림 네티즌들은 “민식이 부모님 눈물에 감동해 법을 만들어 주신 국회의원분들은 아이들 사망 사고를 줄이려면 대인사고 시 불법주차 과실을 넣고, 아무리 민식이법이라도 고의성이 짙은 사고는 보험사 합의금을 받지 못하게 해 아이들이 차와 충돌하면 용돈을 번다는 생각을 못 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의 사고는 차량 과실이 0%가 돼야 아이들이 위험한 놀이를 하지 않는다. 혹시 부모가 시킨 거라면 아동학대죄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변호사협회 역시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운전 중 과실로 어린이를 사망하게 하는 경우 고의의 강력 범죄 수준으로 가중처벌하고 있는데, ‘형벌의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가령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시 부상 정도가 심하다면 가해자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민식이법보다 다른 형법이 적용되는 편이 처벌 상 유리할 수도 있어서 극단적으로는 운전자가 고의로 상해를 가했다고 주장하는 모순적 상황까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셈이다.

스쿨존 내 운전자 위협행위로 인한 민사상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민법 제755조에 따르면 가해자가 만 14세 미만인 경우 감독자인 부모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아이가 합의금을 요구하는 고전적인 사기 방법 중 하나인 고의로 사고를 유발했다면 부모가 사고 처리 등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는 아이들에 대한 처벌보다는 사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문철 변호사는 본인 유튜브 채널 '한문철TV'를 통해 “민식이법 입법 취지는 매우 좋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운전자가 조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스쿨존 내 운전자 위협행위는 없어져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차가 올 수 있는 곳에 대한 안전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전방 주시 의무를 다 지켰다고 해도 사고 발생 시 입증이 어려울 수 있다. 민식이법을 적용해 운전자의 삶을 힘들게 하고 아이들의 이런 놀이 문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와 부모가 엄중히 교육해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아이들이 숨어있다가 나올 수 있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불법주차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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