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화 칼럼] 월스트리트는 중국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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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장,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입력 2021-05-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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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화 원장]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국과의 무역분쟁이 한창일 때, 많은 사람들은 필자에게  미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면 양국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사실 중국 정부에게  본인의 개인기와 즉흥적 감정에 의존하는 트럼프는 상대하기 쉬운 패였다. 미국의 ‘탈세계화’를 가속화시키는 주역으로서 동맹국들과 분열을 촉진하는 ‘X맨’ 역할을 하는 트럼프의 재선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선 결과는 중국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트럼프 하나를 상대하면 되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 중국은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제도 시스템과 미국의 동맹국을 상대로 버거운 싸움을 하게 되었다. 벌써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우선의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버리고 동맹국들의 지역적 역할을 강화시키는 전통적 외교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바이든의 미국은 트럼프 때와 달리 자유, 개방, 인권, 민주주의 등의 보편적 가치에 기대어 광범위한 국제연대를 구축하여 전혀 다른 차원의 싸움을 걸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방인 한국으로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선택은 쉽지 않다. 한국에게는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동북아 안정을 꾀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통일과 북한 비핵화, 또 경제성장을 위해서 중국과의 우호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제조산업의 경쟁력, 노동자의 효율성과 4차 산업혁명의 기술력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거나 근접해 있다. 또 단일 규모로 가장 큰 시장이며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외환보유액에서도 세계 1위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중·미 간 패권전쟁에서 쉽게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다만 한국은 지리적 인접성과 북한이라는 변수로 인해 고민이 깊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누구 하나가 무릎을 꿇을 때까지 지속될 중·미 간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마도 답은 월스트리트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도 월스트리트는 중국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려갔다.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압박카드를 꺼낸다고 할지라도 전쟁으로 치닫지 않는 한 이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현재 돈을 불리기에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곳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 속에 2019년 말 자본시장을 활짝 개방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들이 중국으로 대거 진출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독자적인 뮤추얼펀드 사업 허가를 받았고, 2위 업체인 뱅가드는 아시아 본부를 홍콩에서 상하이로 이전했다. 씨티그룹은 미국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내 펀드수탁업무 사업 허가를 받았다. JP모건, 골드만삭스와 같은 굴지의 은행들 역시 중국 시장에 투자를 늘렸다. 모두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협박하던 해에 벌어진 이야기다.

미국의 최대 온라인 결제시스템인 페이팔(PayPal)이 중국 궈푸바오(国付宝, 즈푸바오와 위챗페이에 이어 셋째로 큰 중국 내 제3자 지불업체)의 지분 100%를 인수함으로써 중국 첫 번째 100% 외자 출자의 제3자 결제기관이 탄생하였다. 그동안 페이팔은 중국 시장에서 중국 내 지불 결제 회사와 협력해 국경 간 지불 업무를 수행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으나 중국 국내 지불 영업 허가증이 없어 사업 전개에 제약을 받아왔었다.

사실 중국기업들에서 세계 수준으로 성장한 ICT 빅테크 기업 BATJ(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징둥의 약칭)의 주요주주 명단에는 어김없이 미국 헤지펀드들의 명단이 들어가 있다.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이 미국의 압박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성급한 판단이다. 오로지 미국의 압박 탓이었다면, 중국은 대미 갈등 국면 속에 자본시장을 걸어 잠글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 중국정부는 환율을 목표로 한 거시경제 조정 정책을 점차적으로 시장에 기반한 관리정책으로 변화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먼델의 불가능의 삼각정리(不可能의 三角定理, impossible trinity or trilemma)는 국가 간 자금의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경제에서는 한 나라의 외환정책이 트릴레마(3중의 딜레마)에 빠지는데, 그 세 가지는 자유로운 국제 자본이동, 환율 안정, 독자적 통화정책이다. 다시 말해 중국정부는 과거 환율 안정을 위해 자유로운 국제 자본이동을 희생하거나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실행하지 못하였다. 독자적인 통화정책도 못하는 국가의 화폐가 국제화되기는 힘들다. 그동안 끊임없이 추진해 왔던 위안화의 국제화가 무역결제 통화에서 2% 이하로 머물게 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미국의 신용을 빌려서 중국경제가 성장하였다고 보면 된다.

또한 대미 갈등과는 별도로 중국 역시 월스트리트의 자본과 선진 금융기법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다. 외국기업과의 경쟁 속에 자국 금융산업의 성숙도를 높이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전체 가계 자산의 10% 정도가 주식과 펀드에 투자되고 있는데, 중국은 이 비율도 늘리고 싶어 한다. 부동산에 집중된 투자구조를 성장기업과 기술기업에 투자되는 자본의 선순환을 만들어 세계 굴지의 기업들을 끊임없이 탄생시키기 위해선 미국 수준(30%)으로 자본시장이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월스트리트는 중·미 패권전쟁의 보이지 않는 용병이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경영하는 것이 자본가의 속성이다. 이익이 된다면 중국의 편에서 자본을 운용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미국의 편에서 자본을 굴릴 것이다. 마치 금융재벌 로스차일드가 워털루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교묘하게 베팅하며 자본을 증식시킨 것처럼 말이다. 중·미 패권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가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피 한 방울, 땀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을 승자는 언제나 그렇듯 자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을뿐더러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이념도 없다. 투자자의 눈으로 중·미 패권경쟁을 바라보면 승자가 될 수 있다.


앞으로 5년 중국 자본시장 개혁·개방에 기회가 있다

2020년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중국경제는 2.3% 성장률을 기록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경제성장을 실현한 국가가 되었다. 작년 한해 중국증시도 평균 27% 상승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세계 주요 국제기구와 투자은행들이 중국경제의 높은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지만, 중국증시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주식시장이 연초에 비해 20~30% 빠져 있고,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들은 회계 기준 강화로 인해 퇴출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공매도 세력들이 중국 기업에 대한 공매도를 하면서 미국에 상장된 바이두 및 니오 등의 중국 기업 주가는 더 많이 떨어지고 있다. 주식 카페에서는 “중국 주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중국정부는 절제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구사함으로써 미국 바이든 정부와 정반대의 거시정책을 펼쳐가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미·중 무역 갈등에 대비해 주식시장에 다소 충격이 있더라도 중국정부가 내실을 다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마디로 코로나 이후 글로벌 자금이 중국을 비롯해 이머징으로 이동한 것은 사실인데, 중국은 오히려 많이 빠진 상황이라 지금이 중국 투자의 적기인지 중국에 관심있는 투자자들이 궁금해하고 있으며, 중국시장에 투자한 외국기관이나 외국 개인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3400포인트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가입했던 차이나 펀드를 정리해야 할지, 아니면 낮은 가치 구간대라고 보고 포지션을 확대해야 할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중국증시는 단기적으로 등락을 거듭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큰 성장 기회를 맞을 전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상업은행 중심의 금융체계에서 자본시장 주도의 금융체계로 바뀔 것이며, 과거에는 자본시장이 조연이었지만 앞으로 중국금융의 주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볼 때 중국금융시스템은 자본시장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될 게 분명하다.

지난 30년간 중국 A주(중국 본토증시에 상장된 중국종목)는 양적·질적으로 고속 성장을 이어왔다. 2020년 말 기준 상하이·선전증시 상장사가 4000개를 넘어섰고, 전체 시가총액(시총)도 80조 위안(약 1경344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홍콩 시장을 합치면 118조 위안(약 18조4207억 달러) 시장이다. 미국 시총은 45조2927억 달러로 중국시장의 2.47배이다. 중국의 GDP 잠재적 성장률을 5%로 가정하면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100주년이 될 때 중국자본시장은 72조 달러(약 464조 위안)로 지금보다 4배 성장할뿐더러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 자본시장이 된다. 이 성장의 과실은 당연히 중국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찍어 발행한 기업들과 그에 투자한 자본가들이 될 것이다. 앞으로 28년 동안 이렇게 성장하는 시장은 중국이 유일할 것이다.

또한 글로벌자산 포트폴리오 중에서 중국에 대한 투자수요는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2019년 기준 16.2%)으로 볼 때 10조 달러(약 64조5000억 위안, 2019년 말 중국경제 GDP 14조3400억 달러, 연 5% 성장률을 가정할 경우 2049년 약 61조9800억 달러) 규모가 있다. 현재 중국자본시장이 개방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 수요는 아직 발휘되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 이 자금들이 들어올 때 어느 정도의 시가총액을 만들어낼까? 이렇게 볼 때 자본공급 측면에서 460조 위안 이상의 자본시장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큰 추세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자본시장 460조 위안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누가 될 것인가? 바로 주식을 찍어내는 창업자들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곳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다.


안유화 필자 주요 이력
▷중국 지린성 옌지시 출생 ▷고려대학교 경영학 박사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전 외교부 경제분과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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