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선공급 후계약 금지법'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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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기자
입력 2021-05-0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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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사업자(플랫폼)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사이의 콘텐츠 계약·공급 방식을 규정하는 ‘선공급 후계약 금지법’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과방위)를 달구고 있다.

법안 취지는 ‘PP가 프로그램 사용료에 대한 수입 규모를 예측할 수 없어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에 대한 제작과 투자 계획을 수립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먼저 프로그램사용료 수익 규모를 예측할 수 있어야 공격적인 콘텐츠 제작·수급 투자에 나서게 돼 궁극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현재 콘텐츠 공급 시장은 대형PP, 플랫폼, 중소PP 간 한정된 수익을 놓고 싸우는 구조다. 콘텐츠 수수료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형PP의 이익은 늘어나지만, 그만큼 플랫폼의 이익은 줄어든다.

계약을 결정 짓는 핵심 요소는 콘텐츠다.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대형PP는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겠다며 ‘엄포’를 둔다. 양질의 콘텐츠를 유치해야 가입자를 유치·유지할 수 있는 플랫폼은 계약 당시에는 약자가 된다. 

그러나 중소PP에 있어서 플랫폼은 강자다. 전체 PP는 400여개에 이르지만, 실제 플랫폼에 송출할 수 있는 채널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플랫폼은 채널편성권을 무기로 중소PP를 압박한다. 일단 콘텐츠가 송출돼야 광고를 받을 수 있는 중소PP입장에선 불리한 조건의 계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여기에 바로 선공급 후계약 금지법의 맹점이 있다. 선계약 후공급이 정착되면 플랫폼 입장에선 양질의 콘텐츠를 보유한 대형PP와 계약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정작 보호를 받아야 할 중소PP는 계약상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물론, 아예 콘텐츠를 공급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과방위 2소위에선 현행 ‘선공급 후계약’을 금지하는 법안이 부결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결의 주요 이유는 실제 선공급 후계약이 금지되면, 콘텐츠 경쟁력이 약한 중소PP가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해당 법안이 중소PP의 ‘제작·수급 투자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자칫 대형PP의 제작·수급만 돕는 ‘반쪽짜리 법안’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콘텐츠 공급 계약이 ‘사적 거래’라는 점을 전제하면, 선계약을 강제하는 법안이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억압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중소PP의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고 ‘콘텐츠 송출 불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선, PP 규모에 따른 계약 방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신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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