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사랑한 한국의 메디치가…예술의 성 ‘대방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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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기자
입력 2021-04-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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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가 ‘위대한 유산’ ③애국정신으로 하나하나 모은 보물들, 국민품으로

  • 국립중앙박물관 2만1600여점…도자·석조물 등 한국 고고·미술사 망라

  • 국립현대미술관 1400여점…한국 근대미술·세계적 거장들 명작 포함

  • 역대급 기증… 세계서도 유례없는 사례

고 이건희 회장(왼쪽)이 1990년 7월 삼성복지재단이 건립해 서울시에 기부한 ‘꿈나무 어린이집’ 개소식에 참석해 현판을 걸고 있다. [사진=삼성 제공]


“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국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쉽지 않은 경로를 통해 어렵게 우리의 국보를 사들이거나 우여곡절 끝에 해외로 유출될 뻔한 우리의 보물들을 지켜냈다는 시각으로 볼 때, 수집 활동에는 우리가 말하는 ‘애국’ 정신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이 2016년 펴낸 <리 컬렉션>을 보면 고(故)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최고를 지향하는 자세는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문화재와 미술품을 모을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모은 소장품들은 이제 국민 곁으로 돌아가게 됐다. 

고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은 28일 이 회장의 소장품 1만1023건, 약 2만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지정문화재 및 예술성·사료적 가치가 높은 주요 미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한 것은 사실상 국내에서 최초다. 이는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대규모 기증 사례다.

삼성에 ‘한국의 메디치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이유다. 메디치 가문은 이탈리아에서 수많은 사상가와 화가·학자를 발굴해 르네상스가 꽃필 수 있도록 후원했다.

정부도 이번 기증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미술품 기증에 관한 입장발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황희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박진우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 김준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이 참석했다.

기증품의 면면은 화려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중 9797건(2만1600여 점)을 기증받는다. 기증품 중에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1757~1806?)의 마지막 그림인 ‘김홍도필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 우리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보물 46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통일신라 인화문토기·청자·분청사기·백자 등 도자류와 서화·전적·불교미술·금속공예·석조물 등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46년 개관 이래 이번 기증품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43만여 점의 문화재를 수집했다. 이 중 5만여 점이 기증품으로 이번 2만 점 이상 기증은 기증된 문화재의 약 43%에 달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품 약 1226건(1400여 점)을 기증받는다. 기증품에는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등 한국 대표 근대미술품 460여 점과 모네, 고갱, 르누아르, 피사로, 샤갈, 달리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작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및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회화가 대다수를 이루며, 회화 이외에도 판화, 소묘, 공예, 조각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근현대미술사를 망라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개관 이래 이번 기증품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1만200여 점의 작품을 수집했다. 이 중 5400여 점이 기증품이며, 이번 1400여 점의 기증은 역대 최대 규모다.

기증이 결정된 고 이건희 회장 소장의 문화재·미술품 [사진=연합뉴스 제공]


고 이건희 회장 소장품의 기증으로 우리 박물관‧미술관의 문화적 자산이 풍성해졌으며, 해외 유명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미술관의 경우 그동안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조차 어려웠던 근대미술작품을 보강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근대미술사 전시와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발굴 매장문화재가 대부분이던 박물관 역시 우리 역사의 전 시대를 망라한 미술, 역사, 공예 등 다양한 문화재들을 골고루 기증받아 고고·미술사·역사 분야 전반에 걸쳐 전시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전국 13개 소속박물관 전시실을 비롯해 공립박물관·미술관 순회전 등을 통해 국민들의 문화 자긍심을 높이고 문화향유 기회 확대에 기여하며 우수한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한국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기증해주신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분들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어 황 장관은 “이번 기증은 국내 문화자산의 안정적인 보존과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제고, 지역의 박물관·미술관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다양한 문화 관련 사업의 기획과 추진에 있어 상승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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