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피해자 이름 딴 윤창호법·민식이법·하준이법…이름 값 하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21-04-19 00:14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연합뉴스]



우리나라에는 사람 이름을 딴 법이 여러 개 있다. ‘김영란법’(부정 청탁 방지법)처럼 법 제정이나 개정을 주도한 사람의 이름을 딴 법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건이나 사고의 피해자 이름을 딴 법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윤창호법’ ‘민식이법’ ‘하준이법’이다. 이 세 가지 법은 모두 교통 사고와 관련한 법이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거나 숨지게 한 운전자를, 민식이법은 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치어 다치거나 숨지게 한 운전자를 가중 처벌하는 법이다. 하준이법은 경사진 곳에 주차할 때는 차가 굴러내려가지 않게 제동 장치를 확실히 하도록 의무화한 법이다.

사고 피해자 이름을 딴 법이 생긴 것은 그만큼 그런 피해자를 낸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국민 공감이 컸기 때문이다. 최소한 음주운전 사고, 스쿨존 사고, 비탈길 불량 주차 사고만은 꼭 막아야 하겠다는 공감이 이 법들에 담겨 있다. 그러면 이 법들은 과연 그 이름값을 하고 있을까?

음주운전·스쿨존 사망 사고 법정 최고형은 무기징역

윤창호법의 윤창호씨는 2018년 9월 부산 해운대에서 음주운전 차에 치였다. 당시 카투사로 복무하던 윤씨는 사고 직후 뇌사 상태에 빠졌다. 그러다 45일 만에 결국 숨졌다. 22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이 사고 이후 윤씨 친구들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살인 행위입니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위법이 음주 사고라 하여 가볍게 처벌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고하고 다가오는 사고가 아닌 만큼, 여러분들께서 힘을 보태 주셔서 더 이상은 이렇게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청원에는 40만명이 참여했다. 마침내 문재인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나섰고 국회의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그렇게해서 2018년 12월 18일부터 윤창호법이 시행됐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횡단 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숨진 김민식군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민식이는 당시 아홉살이었다. 민식이 부모는 사고 후 스쿨존 사고 방지 법안 제정 서명 운동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문 대통령에게 법 제정을 호소하기도 했다. 민식이법은 그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됐고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윤창호법이나 민식이법이나 핵심은 법정 형량의 하한선과 상한선을 모두 높인 것이다. 음주운전 사고와 스쿨존 사고의 경우 전에는 사람을 숨지게 하면 법정형이 1년 이상 유기 징역이었다. 윤창호법과 민식이법은 이 형량을 최고 무기 징역 또는 최저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으로 높였다. 그만큼 엄하게 처벌하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2019년 11월 부산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하던 60대 남성이 네거리 교차로의 정지 신호에도 멈추지 않고 달리다 아파트 상가 앞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 4명을 들이받았다.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3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1심 법원은 운전자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형량을 4년 6개월로 줄였다. 최고 무기 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윤창호법 취지로 보면 1심의 징역 8년도 과연 적정한 수준인지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2심은 그마저 거의 절반으로 깎은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윤창호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음주운전이 만연하다”며 “응보의 차원에서 엄중한 처벌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창호법 취지를 정확히 짚은 말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유족 등 피해자들과 합의했고, 이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바라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1심 판결이 무거워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합의’ ‘선처 호소’는 법원이 형량을 깎아 줄 때 단골로 쓰는 말이다. 윤창호씨 이름을 딴 법까지 만들어 음주운전을 막아 보자는 국민 뜻보다 ‘피해자와 합의’ 같은 개인적 요인을 더 중시한 게 과연 적절한가?

실제 선고되는 형량은 고작 징역 5년~8년

2020년 11월 서울 강남의 한 도로에서 음주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28세 대만 유학생을 치었다.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1심 법원은 지난 14일 운전자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이 운전자는 이미 음주운전으로 각각 300만원과 1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전력도 있다. 그런데도 징역 8년이었다. 이마저 2심에서는 다시 절반쯤으로 깎일지 모른다. ‘피해자와 합의’ ‘피해자의 선처 호소’같은 단골 메뉴가 또 등장할 것이다.

2020년 9월 30대 운전자가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술에 취해 운전하다 오토바이로 치킨을 배달하러 가던 50대 남성을 치어 숨지게 했다.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194%의 만취 상태에서 시속 60㎞인 제한속도를 22㎞ 초과해 달렸고 중앙선을 침범해 역주행까지 했다. 비난받을 만한 요인을 두루 갖춘 상태였다. 그럼에도 법원은 지난 1일 운전자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제한속도를 20㎞나 초과해 역주행하다가 사고를 냈다”며 “피해자가 사망하는 매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런 사유를 다 고려했다면서도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걸 윤창호법 취지를 살린 판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례는 하도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렵다.

민식이법의 경우도 비슷하다. 한 운전자가 2020년 5월 강원도 동해시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다섯살 어린이를 승용차로 치었다. 어린이는 전치 20주 중상을 입었다. 운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전방과 좌우를 잘 살피지 않고 제한속도인 시속 30㎞를 23㎞ 초과한 시속 53㎞로 주행했다. 민식이법에 따르면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법원은 이 운전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하고 제한속도를 초과해 운전한 과실로 죄가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에 대해 반성하고 피해 어린이와 부모로부터 용서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반성’ ‘피해자의 용서’ 역시 형량을 깎아줄 때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법정 최저형인 벌금 500만원이 선고된 사례도 여럿이다. 유치원 부근에서 주차를 위해 후진하다 뒤쪽에 있던 어린이의 왼쪽 팔을 친 운전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자전거 탄 어린이를 친 운전자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비탈길 불량 주차 금지한 하준이법, 불량 주차 여전

법 취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법정형보다 턱없이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법원만 문제가 아니다. 시민이나 업자들의 인식도 문제다. 하준이법이 그 경우다. 하준이법은 2017년 10월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 주차장 내 경사진 길에서 제동장치가 풀려 굴러 내려온 차에 치여 숨진 최하준 어린이(당시 4세)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당시 최군은 부모와 함께 경남 창원에서 서울랜드 나들이를 왔다가 사고를 당했다. 하준이를 친 차의 운전자는 변속기 기어를 주차(P)가 아닌 드라이브(D)에 두고 내렸다. 그 바람에 차가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하준이를 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운전자가 경사진 곳에 차를 세울 때는 반드시 주차 브레이크를 작동하고 바퀴에 고임목을 고이거나 핸들을 길 가장자리 쪽으로 돌려 놓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 어기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또한 주차장법을 개정해 경사진 곳에 주차장을 설치하려는 사람은 미끄럼 방지 시설과 미끄럼 주의 안내판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위반자는 6개월 이내의 영업 정지 또는 300만원 이하의 과징금을 물도록 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2018년 9월 28일, 주차장법은 2020년 6월 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준이법은 모든 운전자나 주차장 설치 업자가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도 하준이법대로 주차하는 운전자나 주차장 시설를 설치하는 업자보다는 그러지 않는 운전자와 업자가 훨씬 많다. 하준이법란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올바른 가치관과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술 마시고 운전하면 안 된다든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어린이 보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든지, 비탈진 곳에 차를 세울 때는 차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몸에 익혀야 할 올바른 가치관이고 습관이다.

법이 지향하는  올바른 가치관과 습관이 심어지려면 법이 그 취지대로 운영돼야 한다. 국민 뜻에 따라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취지대로 집행되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도 윤창호, 민식이, 하준이 같은 피해자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윤창호가 될 수 있고, 우리 자녀 중 누구라도 민식이와 하준이가 될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을 딴 법이 제 이름값을 하는 사회가 정말로 살기 좋은 사회일 것이다. 그런 민생 법치, 생활 법치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