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묻지마 정권교체가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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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1-04-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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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보궐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여기서 ‘국민의힘의 압승’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여당의 패배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민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로 착각하지 말라”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말에 십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민심은 오만하고 내로남불하는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오세훈과 박형준을 찍었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의 두 후보를 마음으로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일단은 심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성에 차지 않는 선택을 했던 셈이다.

물론 정권심판론의 확산이라는 흐름은 앞으로도 대세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민주당은 성난 민심을 확인하고서도 별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법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입법 독주에 앞장섰던 윤호중 의원은 "저부터 반성하고 변하겠다"면서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반성하고 변하려고 출마한다는 얘기는 난생 처음 듣는 얘기다.

당 대표 경선도 다르지 않을 모양이다. 홍영표 의원은 '부엉이 모임'을 주도했던 ‘친문’ 핵심이고, 송영길 의원은 “김어준이 없는 아침이 두렵다면 오직 박영선”이라던 ‘김어준 사수파’이다. 우원식 의원도 ‘범친문’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우다. ‘친문’ 정치세력을 심판한 민심의 인주 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당사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 지도부를 다시 쥐고 갈 태세이다.

2016년 20대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다시 친박 대표 이정현을 선출하고 이내 몰락했던 새누리당의 흑역사는 2021년 민주당의 거울이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번 당내 선거에 나서지 않기 바란다”는 조응천 의원의 목소리는 그저 외로운 절규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나마 2030 초선 의원 5인의 반성이 나왔지만, 그들 또한 감히 ‘조국’을 거론했다며 쏟아지는 문자폭탄에 제압당하여 느닷없이 언론개혁해야 한다는, 의미조차 모호한 물타기 반성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러니 당 안팎이 온통 친문 일색으로 되어 있는 구조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민주당이 무성찰의 집단 사고에서 벗어나서 의미있는 변화의 길을 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집권세력의 의례적인 몇 마디 사과의 말로 민심이 회복되기에는 지난 4년간의 내로남불과 부동산 실정으로 겹겹이 쌓여온 분노의 키가 너무도 크다.

그렇다고 압승을 거둔 국민의힘을 정권교체의 대안으로 선뜻 반기는 민심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우리 정치의 불행한 현실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단속 덕분에 과거 같은 막말과 극단적 이념의 언행들은 눈에서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믿기는 어렵다.

승리에 도취되어 긴장이 풀어지면 언제든지 ‘도로 자유한국당’이 될 수 있는 것이 이들의 구조적 한계이다. 만약 황교안,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 윤상현같이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정치인들이 다시 국민의힘으로 들어와 소음을 낸다면, 민심은 그런 ‘도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다시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아무리 정권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지금 모습 그대로의 국민의힘을 대안세력으로 믿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중구난방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자신들의 혁신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다짜고짜 야권의 묻지마 통합이나 윤석열 입당만을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낡은 정치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이전보다 나아졌고 지지율도 많이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정권교체의 대안세력이라는 신뢰를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제1야당의 현실이다.
아직 정치에 뛰어들지도 않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기존의 여야 대선주자들을 제치고 일약 선두를 달리고 있는 현상도 기존 여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반영일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도 그 의미를 온전하게 읽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제 윤석열의 대선정국 등판은 기정사실이 되는 모습이다. 아무리 정권심판론이 대세라지만, 그가 지금과 같은 국민의힘과 덜컥 손잡는 선택을 권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1야당의 힘에 의존하여 정권을 잡으려는 길은 쉽고 편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정치사에 유의미한 결과를 낳기는 어렵다. 설혹 정권교체를 위해 기존 정치세력들과 손잡는 때가 오더라도 그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끌고 가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오직 국민의 믿음 위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에는 과거 보수 정권들도, 문재인 정권도 해결하지 못한 수많은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편가르기에 의존하는 진영의 정치,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성장동력의 약화, 코로나 시대가 초래한 양극화의 심화, 그리고 부동산 문제로부터 청년실업의 문제, 양성평등의 과제, 온존하는 차별의 문제, 기후변화 위기 등, 화석화된 이념만 부여잡고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수많은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의 정권교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우리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세력이 주도해야지, 이념과 진영의 대결에만 갇혀 있던 낡은 세력에 의존하여 이룰 일은 아니다. 낡은 보수도, 낡은 진보도 그에 관해 무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윤석열에게 보내주는 민심의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개인의 명예회복이나 한풀이를 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여야 모두에게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적 물줄기를 만들어 달라는 소명을 그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권심판을 원하는 민심이 다수라 하더라도, 모든 정권교체가 선이 될 수는 없다.

집권세력의 오만이 분열과 갈등을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을 정권교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 14년의 실정이 반복되지 않을 정권교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주도세력의 형성이 전제되지 않는 정권교체는 국민의 기대와 실망 사이를 번갈아 오갈 뿐이다. 제1야당의 등에 업혀서 가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길이겠지만, 그것을 해내느냐 여부는 온전히 윤석열의 몫이다. 지금은 국민이 윤석열을 지켜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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