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자금 문제, 긴 흐름으로 봐야...이란, 美와 샅바싸움 속 韓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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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기자
입력 2021-02-2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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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동결된 이란 자금, 7조6000억원 달해

  • "액수 워낙 커 한꺼번에 해결되기 어려워"

  • 미·이란 JCPO 복귀 여부 따라 좌우될 전망

  • 이란, 韓 지렛대 삼아 美 '제재 해제' 압박

  • "이란 태도, 유화적으로 변화 긍정" 평가도

이란 정부가 한국 내에 동결된 자국 자금 중 10억 달러가량을 이전해 사용하는 데 한국과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한국 정부는 미국 등 유관국과의 협의가 남았다며 선을 그었다. 미국 역시 한국과 폭넓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만 언급, 구체적인 협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24일 외교가에서는 이란 측의 이른바 '설레발'이 대내 정치용 행보라는 지적과 함께 한·미 양국 모두를 향한 압박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동결자금 해제 여부를 결정짓는 최대 변수는 미국과 이란 간 핵 합의(JCPO·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귀 여부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한국과 이란 간 동결자금 문제는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의 종속변수인 셈이다.
 

21일 이란 테헤란에 위치한 한국대사관에서 유정현 주이란대사와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장이 회담을 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한국 내 동결자금의 이전 및 사용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7조6000억원 빚...단번에 해결 어려워"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최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란 동결자금 액수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꺼번에 해제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란이 (장기간 동결에 따른) 피해보상도 요구한다고 한 만큼 얼만큼 규모의 돈이 얼마나 빨리 해제될지는 굉장히 긴 흐름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한국이 이란에 빚지고 있는 7조6000억원(70억달러)가량 문제는 정말 멀고 험난한 길을 건너야 해결될 것"이라며 거듭 강조했다.

이란 측이 최근 한국과의 합의 과정을 대내외에 성과로 과시하고 있지만, 동결자금이 하루이틀새 해제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란 당국은 최근 한국과의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내용을 잇달아 국내외에 공개하고 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22일(현지시간)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와 유정현 주이란 한국대사가 테헤란의 한국대사관에서 면담하고 이란의 동결자산 사용 방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더해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도 2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란 중앙은행의 자산 10억 달러를 돌려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 자금의 구체적 규모까지 밝혔다.

다만 한국 정부는 이란 동결자금 사용 방안과 관련한 한국 측 제안에 이란이 동의했다고 전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미국 정부의 동의가 남았다며 선을 그었다. 한국과 이란이 합의점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미국 정부 승인 없이 동결자금을 해제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미·이란 JCPO 복귀 문제가 '변수'

미국 국무부 역시 23일(현지시간) 구체적 방향은 알리지 않고 한국과의 폭넓은 협의가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우리가 이 문제를 한국과 폭넓게 논의한다고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거나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것 이상으로 이를 특징 짓지 않겠다"고 답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이란 JCPO 복원과 관련한 국제 동향이 이번 사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현재 주시 중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이란과의 핵 협상에 복귀하려고 하지 않느냐"며 "그런 전체적인 분위기도 봐야 하고 (한국 정부로서는)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새롭게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신(新) 행정부는 지난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탈퇴한 JCPO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정부가 당시 JCPO를 탈퇴하며 대(對)이란 제재가 모두 복원됐고 이에 따라 한국의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개설된 원화 계좌 역시 동결됐다.

결국 국내 은행에 동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란 자금 약 7조6000억원이 해제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이란 간 핵 협상이 수월히 진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양국 간 협상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비관이 뒤따른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바이든 정부는 우선 이란이 2015년 핵 합의로 돌아와야 미국도 복귀하고 그 후에 제재 해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그래서 (동결자금 해제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동결자금 해제를 위해선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철회하거나 예외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서 예외 조건을 만들기란 굉장히 까다롭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대이란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韓 통해 '미국 제재 해제' 압박

이처럼 미국과 이란이 JCPO 복귀와 관련해 샅바 싸움을 하는 가운데 이란이 한국을 압박해 미국의 제재 해제 양보를 얻어내려는 셈이다.

박 교수는 "이란 입장에서는 한국도 걸려있으니까 미국에 제재를 해제하라고 설득하라며 압박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이란 측이 한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거두고 대화에 나선 것 자체에 대해 긍적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장 센터장은 "어쨌든 이란 측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유화적 태도를 보인 것은 진전된 부분"이라며 "한국과 이란 간 급한 불은 끈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창 이란 현지 언론에서 한국에 대해 '도둑'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이제 합리적, 이성적으로 대화할 준비가 돼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 꽤 큰 변화"라고 거듭 평가했다.

더불어 이란 측의 태도 변화가 한국 선박 나포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나온다.

장 센터장은 "이란 당국에서 이 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실권을 쥔 이란 혁명수비대가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라며 "(동결자금 해제 문제는) 미국과 핵 합의를 복원하는 것에 달렸지, 한국 선박을 지렛대로 삼아봤자 별 소용 없다는 것은 (이란) 본인들도 안다. 배도 곧 풀려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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