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한국도 부유稅 논할때 됐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1-01-28 17:1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영국의 비영리단체인 옥스팜에서는 최근 충격적인 자료를 발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화된 지난 9개월 동안 세계 10대 부자들의 총자산이 무려 5400억 달러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피해를 입은 기업과 가계를 구제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금을 풀자 이 유동성이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 자산 가치를 급격히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디지털 경제가 대세로 자리 잡자 이 분야 선두 주자들이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바로 그들이다. 베이조스의 자산은 단 하루에 130억 달러가 늘어난 적도 있었다. 팬데믹 이후 이들 10명에게 굴러들어간 코로나 현금, 즉 코로나 캐시를 합하면 전 세계인 모두에게 코로나 백신을 제공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부유층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계층은 더욱 가난해지는 이러한 K자형 경기 곡선은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심각한 사회, 경제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울러 각국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이익공유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많은 다른 나라에서는 부유세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심화되는 양극화 때문에 부유세는 전에도 심심치 않게 거론이 되고 또 일부 시행되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절박하고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다.

먼저 남미에서는 벌써 진행 중에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연말 미화 230만 달러 이상 자산가 1만2000명에게 3.5에서 5.25퍼센트에 달하는 부유세를 부과해 34억 달러를 징수했다. 볼리비아도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영국도 최근 들어 부유세를 심각히 검토하는 중이다. 50만 파운드 이상 자산가에게 1퍼센트의 부유세를 5년 동안 징수하는 것이 한 방안이다. 총 800만명이 해당된다. 프랑스와 독일도 부유세 논의가 시작된 상황이다.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미국에서도 그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과거에 부유세에 반대한 바 있지만 미국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재개될 것이 분명하다. 근소하지만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부유세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월드뱅크의 블로거 짐 브룸비(Jim Brumby)는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팬데믹 와중에서 심화되는 불평등이다. 지난 1년간 부자가 더 부유해지는 상황에서 전 세계에서 1억명이 새로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두 번째는 정부의 부채 증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 후 전 세계의 정부는 총 12조 달러를 긴급 지원금으로 풀었는데 상당 부분이 공적 부채이다. 셋째는 폭등하는 주식시장인데 이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해외 조세 회피이다. 각 국의 규제가 심해지면서 해외로 자산을 숨기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부유세 징수가 쉬워졌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양극화, 극단화로 인한 사회 연대의 해체와 이로 인한 신뢰 추락인데 이는 대부분의 국가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 출범한 것도 부유세의 가능성과 효용성을 높여준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과 우방과의 협력을 강조한다. 무역, 안보뿐 아니라 조세 문제에 있어서도 타국과 협력을 추구할 수 있다. 사실 부유세를 신설하거나 증세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국가 간 협력이다. 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증세를 하면 기업이나 개인은 세금이 낮은 곳으로 피해가게 마련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 점에 있어 타국과 공동보조를 맞춘다면 보다 실효성있는 조세 정책이 가능하다. 특히 전 세계에서 막대한 이익을 내면서도 조세 회피처를 이용해 적은 세금만 내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다국적 기업에 대응하는 데 있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협력한다면 정부의 세수는 크게 증가하게 될 것이다. 현재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 회피 규모는 한 해에 2500억 달러에 달하는데 그만큼 정부의 곳간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는 부유세 논의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과거에는 동반성장론, 현재는 이익공유제라는 이름으로 자발적인 기업의 참여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낙연 대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크게 수혜를 입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서 피해를 입은 기업이나 개인에게 도움을 주자는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의 이상민 의원은 이익공유제가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 어렵고 잘못하면 기업에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그보다는 부유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거부감이 크다면 기간을 3년이나 5년으로 제한하고 대상도 최소화하자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과거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정부가 주도한 상생 프로그램이 대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는 부유세에 대한 논의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중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수혜 기업들이 기금을 모아 피해 기업이나 가계를 지원하기로 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순항하지 못했다. 또한 정부가 아무리 자발적인 참여를 요청해도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를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있다. 그보다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수준에서 증세를 하거나 부유세를 부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그래야만 코로나 캐시가 한국에서 K자형 경기 곡선을 심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