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훈의 중소기업 다녀요] 박영선 장관의 빛바랜 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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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훈 기자
입력 2020-11-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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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땅을 보고 걷는다. 시선이 아래로 향하면 바쁘게 걷고 있는 사람들의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문화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은 구두를 신는다. 검은색의 튀지 않는 디자인은 출근 전 신발장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존재감이 커진다. 부지런한 사람은 먼지를 털고, 광도 낸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구두의 쓰임새다.

스타트업계는 예외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창업자들은 불편한 구두를 잘 신지 않는다. 모자를 쓰고,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기도 한다. 직원들 또한 자연스레 운동화를 신는다. 인터뷰를 통해 스타트업 개발자를 만나면 그 자유로운 모습에 감탄할 때도 있다. 스타트업계에서 운동화와 청바지는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1일 서울 금천구 ‘지(G)-밸리’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스타트업100’ 출범식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얼굴을 마주했다. 박 장관은 현장에 마련된 기업 홍보 부스를 둘러보며 창업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 장면을 지켜보다 우연히 박 장관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스타트업 대표들조차 양복과 구두를 신고 올 정도로 무게감 있는 행사에 박 장관은 단화를 신고 있었다. 검은색 바탕에 둘러진 흰 밑창은 색이 바랬다. 장관의 신발은 평범했지만, 현장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그는 대표적인 '현장형 장관'으로 꼽힌다. 취임 초기에는 살인적인 현장 스케줄로 수행 공무원은 물론이고, 담당 기자들조차 따라다니기 힘들어 했다. 올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현장 행사가 줄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부터 다시 스케줄을 채우고 있다. 이날만 해도 을지로에서 ‘제21호 자상한기업’ 업무협약을 맺고, 금천구로 넘어와 참가한 행사였다. 점심은 샌드위치로 해결했다. 저녁에는 한중최고위과정 강연도 예정됐다. 모두 현장 일정이었다.

문득 ‘박 장관은 왜 이렇게 현장에 몸을 던질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현장 행사는 형식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장관이 참여하는 행사는 특히 더 그렇다. 대부분의 문제는 실무단에서 협의한 뒤, 얼굴마담 역할에 초점이 맞춰진다. 박 장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대신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현장에서 기업이 애로사항을 말하면 동행한 실‧국장들에게 검토를 지시하고, 다음 만남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민간 중심의 벤처인증제도 도입, 벤처투자법 제정, 유니콘 특별보증제도 신설 등은 벤처업계의 숙원사업이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협업모델을 구축하는 ‘자상한기업’은 21개나 선정했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위한 강소기업‧스타트업 선정 작업도 첫발을 뗐다.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신속 지급과 디지털 전환 지원 또한 발로 뛴 성과다.

해결책을 갖고 현장을 찾으니 박수는 저절로 따라온다. 소부장 스타트업 100 국민심사단장을 맡은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행사 시작 전 ‘박 장관이 큰일을 했다’며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청했다. 올해 초 개최된 한국벤처캐피탈(VC)협회 신년 행사에서도 박 장관은 입장과 동시에 환영의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7월 진행한 토크콘서트에서는 막힘없는 답변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제시한 뒤 박수를 받으니 또다른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에 나온다. 정책결정자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칭찬도 받는 바람직한 선순환이다.
 

[박영선 장관이 신고 있던 단화.(사진=신보훈 기자)]


기자들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다. 현장에 나가지 않고 기사를 쓰면 ‘뇌피셜’을 동원하거나 베껴 쓰기를 하기 쉽다. 기업 오너들도 입버릇처럼 직원들에게 현장에 나가라고 주문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야 하는 정책 결정권자야말로 현장이 중요하다. 정책이 결정권자 의지로만 채워지면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국민의 쓴 소리가 듣기 싫다고 현장을 멀리하면 괴리가 생기고, 탁상공론이 아우성을 키운다. 반면, 현장에 자주 나가면 척박한 현실을 목격하고, 올바른 개선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박수로 돌아온다. 선순환의 과정에 있는 지금, 그가 현장에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박 장관의 빛바랜 단화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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