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이 콜한 終戰블루스 왜 北도 UN도 시큰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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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20-10-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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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


[주재우의 프리즘]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해 정부는 종전선언의 구현을 다방면에서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에서부터 당국자와 실무급 인사까지 종전선언의 외침은 연일 이어졌다. 우리의 평화 호소에 국제사회는 냉담했다. 마크 내퍼 미국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는 우리 대통령의 종전선언 호소에 ‘남북관계와 비핵화가 불가분한 관계’라고 일침을 놨다. 6·25의 비극과 한반도의 분단을 청산하고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다는데 국제사회는 왜 냉담한가. 다른 전쟁은 어떤 형태로 종결되더라도 평화협정이 뒤따르는 것이 관례일 정도인데 한반도는 왜 유사한 결과를 보지 못하는 걸까. 강대국의 지정학적 전략이익의 첨예한 대치 때문이라는 설명은 이젠 진부할 뿐이다. 

이런 반응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전쟁 이후 체결된 정전협정의 속성과 구조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평화의 아름다움만을 부각하는 이상주의적 감성팔이로 국제사회의 호응을 기대하긴 어렵다. 평화를 원치 않는 나라는 없다. 특히 냉전시대의 마지막 잔재인 한반도의 분단 해결에 단초를 제공하는 것에 어느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이상적으론 그렇단 말이다. 현실은 그러나 냉혹하다. 정부가 이를 인지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을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구현해줄 수 있는 평화협정의 디딤돌로 생각한다. 수순은 맞다. 그러나 선언의 주체가 문제다.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우선시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북한, 중국과 유엔(UN)이다. 우리의 자리는 종전선언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들과 국제사회의 동의가 전제된다는 의미다. 우리가 전쟁을 벌인 실질적인 당사국임에도 말이다. 따라서 정부가 생각하듯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유엔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유엔이 대표성을 가지고 서명한 정전협정을 어떠한 식으로라도 대체하기 위해서는 유엔을 설득시켜야 한다. 유엔 총회가 되었든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가 되었든 이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유엔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 행위를 묵인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는 특히 북한의 핵개발과 핵실험에 대해 유엔이 취한 제재결의안으로 입증된다. 세계 평화 수호를 지상최고의 가치와 목표로 하는 유엔이 북한에 호의적이지 않다. 유엔사를 유엔이 아직도 유지하는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는 대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유엔사가 정전협정의 효력을 발휘하는 데 효과적인 기제로 작동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의 대체는 체결 측간의 상호합의를 전제한다. 협정의 5조는 협정의 정정과 내용 추가가 가능한 조건을 담고 있다. 상호합의로 정정이나 별도의 내용이 추가가 되지 않으면 기존의 협정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또한 평화정착(peace settlement)을 위한 적절한 합의문(an appropriate agreement)이 제공될 경우 대체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문구 때문에 우리 정부가 평화협정에 조급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도발행위가 멈추지 않는 사실에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의 내용만 보더라도 북한과의 평화협정 논의가 왜 요원한지 알 수 있다. 북한 핵개발과 핵실험,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때문에 제재가 채택되었다. 이를 북한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즉, 유엔 산하의 비확산조약(NPT)의 의무와 책임을 철저히 준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과 사찰에 적극 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준 태도는 비핵화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것은 핵을 챙기기 위한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북한의 본모습이다. 그래서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내걸고 있다. 북한의 꼼수는 이를 유엔이 아닌 미국과 양자 차원에서 합의를 보려는 데서 드러난다. 이런 북한의 입장과 결의는 오래된 사실이다. 1974년부터 북한은 이 문제를 꾸준히 미국 측에 제기해왔다. 북한의 목적과 의도는 한 가지다. 정권의 안정 보장을 빌미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포기를 유인하면서 북·미수교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있다.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 전략을 선호하는 이유다. 즉, 이렇게 단계별로 진전이 있을 때마다 비핵화를 조금씩 해나가겠다는 속셈이다.

따라서 북한은 정권의 안전을 위해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이 필요한데 유엔과 굳이 협력할 당위성을 찾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 대해 평화협정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필요도 없다. 주한미군의 주둔 용인은 중국이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구상에서 비롯하지도 않았다. 대미 타협용에 불과하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문제를 무마시키기 위한 전술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현혹되고 있다. 마치 북한이 평화협정의 최대 장애물인 주한미군의 주둔 문제를 해소해주는 것처럼 아량을 베풀어 주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문제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다자간 협상, 즉 정전체결 당사국 간에 이 문제를 논의할 때는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철수를 전제로 내세운다. 90년대의 4자회담과 2000년대의 6자회담에서 보여준 북한의 주장이 증거다. 그러나 북·미 양자 간에 평화협정을 거론할 때는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특히 핵개발이 시작된 1992년, 그리고 그 완성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2000년과 2018~2020년) 주한미군의 주둔이 정권 안전에 더 이상은 큰 위협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수교만 해주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있어 주한미군문제가 더 이상의 걸림돌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북한의 인식은 2018년 3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때 ‘미국과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북측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이상에서 우리는 북한이 더 이상 왜 우리와 평화협정이나 종전선언을 구체적으로 모색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북한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평화협정문제를 1963년 이후에 공식 제기한 이후 그 협의 대상은 줄곧 우리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그 대상을 미국으로 교체한 1974년 이후 2001년까지 우리에게 더 이상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이 우리에게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한 것은 2007년의 일이다. 2005년 6자회담의 동북아평화체제 실무그룹이 출범한 가운데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전체제의 종결과 종전선언 등의 문구가 공동성명서에 포함됐다. 이후 이들은 곧바로 종적을 감춘 후 2018년의 판문점 선언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우리 정부의 제안을 북한 측이 수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북한은 그럴 의도가 추호도 없다는 것이 후속 행동에서 역력히 드러났다. 북한의 계속된 군사적 도발과 ‘통미봉남’ 전술의 견지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국전쟁은 국제적인 전쟁이었다. 그 성격과 본질에 맞게 전쟁과 관련된 사안을 처리하는 것이 맞다. 더 나아가 70년이 지난 오늘날의 상황 변화도 무시 못할 요소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우리나라의 변화된 위상에 따라 문제를 접근하려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인지하지 못한다. 그 변화에 따라 상대방의 전략과 전술이 어떻게 변한지도 모른다. 결과는 메아리 없는 외침만 하는, 공허한 모습의 연출이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모두 북한의 뉘우침과 진정성을 전제한다. 북한에 대한 눈먼 사랑으로 우리의 국가적 위상과 신뢰가 추락하는 불상사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우리의 안보와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자충수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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