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대출시장 최고 이자율 통제, 서민에 毒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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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20-09-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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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금융소비자가 금융거래에서 가장 많은 제약과 교섭력의 열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자금 수요자로서 대출상품(대출성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경우일 것이다. 개인이나 가계의 부채 보유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데, 이는 어쩌면 언론보도 등을 통해 과다한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형성된 일종의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자금을 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자비용이 발생하고 언젠가 갚아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부채는 꼭 필요한 자산을 구입한다든지 또는 사업자금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등의 어떤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용한 지렛대로 쓰인다. 이와 같은 지렛대가 꼭 필요한데도 그것을 구하지 못해 결국 목표나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면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출시장은 우선 금융권역별로 쉽게 나누어볼 수 있는데, 이는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의 차이도 분명하지만 신용도에 따라서 자금의 수요자도 달라지는 서로 다른 시장들이다. 수요와 공급이 전혀 다르므로 시장마다 거래되는 자금 규모나 가격(이자율)도 다르다.

예컨대 어떤 개인의 신용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양호하다면 첫째 시장에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겠지만, 만일 신용도가 충분치 않다면 대출이 거절될 수 있고 이자율이 더 높게 형성되는 그 다음 시장을 이용해야 한다. 물론 그 다음 시장으로 가거나 안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지만 대부분 자금 조달이 절박한 상황임을 가정한다면, 그 다음 시장이 있느냐 없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대출시장은 중간 정도와 그 이상의 이자율 수준에서 거래되는 시장이 잘 발달돼 있지 않다. 수요자가 없어서가 아니다. 사실 위험을 감수하고 신용도가 낮은 자금 수요자와 거래를 하려는 공급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의 관점에서 본다면 신용도가 낮은 금융소비자들의 대출시장 접근성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정책금융이라는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정책금융이 복지와 혼동이 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금융은 자금을 빌려주면 반드시 그 대가와 함께 상환할 것을 요구하며,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크다면 그 대가도 커져야 한다. 정책금융이 금융 포용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장 기능의 활성화에 역점을 둬야 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말한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로서의 시장이 필요하다.

최근에 일부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법정 최고 이자율 상한을 낮추려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과연 그 법안에 제시될 숫자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의 삶과 경제활동에 깊숙이 연관돼 있는 시장을 통찰해서 나온 결과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을 이해한다면 그 시장이 결정하는 가격을 두고 인위적인 조정을 가하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이 가져왔던 결과를 보더라도 시장에 대한 무리한 직접적인 통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약자의 부담을 경감시키려는 취지라 하더라도 이자율의 직접적인 통제는 자칫 시장의 붕괴로 이어져 오히려 약자의 금융소외(financial exclusion)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새삼 떠오르는 '상선약수(上善若水)'는 겸허의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물과 같은 자생적 질서를 거스르는 데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사진=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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